지자체 예산에 '여성'은 없다

10일, 성인지예산네트워크 발표

등록 2006.10.13 15:29수정 2006.10.1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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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희 기자] 지자체 여성정책이 '빛 좋은 개살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된 지 11년이 지났는데도 광역 지자체 16곳 중 3개 지역에 여성발전기본조례가 아예 없고, 있다 해도 단순히 선언적 수준에 그치거나 급기야 조항 신설을 회피하는 경우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

경기·인천·수원·충북·대전·전북·광주·대구·울산·경남·제주 등 11개 지역 12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성 인지 예산 네트워크'가 1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성 인지 정책을 위해 필수적인 성별분리통계 조항의 경우 모든 지자체가 명시는 하고 있지만 실제로 실시하고 있는 곳은 서울시 정도에 불과하고, 성별영향평가 조항도 대다수 지자체가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고만 할 뿐 '결과를 정책 개선에 반영해야 한다'는 실질적 조치는 전무한 실정이다. 4개 지역은 아예 성별영향평가 조항이 없다.

여성정책 수립을 위해 지역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정보 제공, 공청회 개최) 또 받는(의견수렴창구 개설) 상호 소통구조 관련 조항에 대해서도 울산·강원·경남·충북을 제외한 9개 지역이 아예 신설을 거부하기도 했다.

예산도 문제다. 각 지자체의 여성정책 전담기구 예산 가운데 아동보육예산은 전체 예산의 88.1%를 차지한 반면, 여성의 지위 향상이나 경제활동 참여, 성 평등 실현 등을 위한 순수 여성예산은 8.73%에 불과한 것.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아동보육예산이 증가 일로를 걷고 있는 것과 비교해 순수 여성예산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여성가족부와 국가청소년위원회 통합 추진에 대해 순수 여성정책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수지역'으로 꼽힌 곳은 울산과 부산 2곳에 불과하다. 이들 지역은 '중장기 지방재정계획을 수립할 때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여성정책을 적극 반영한다'거나 '실질적인 양성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장과 기관장, 투자기관장이 적극적으로 행정적·재정적 지원 등을 해야 한다'는 등 구체적인 조항을 두고 있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대전시의 경우 성별영향평가 조항이 없는데도 올해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지자체 성별영향평가에서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됐다.


전국 최초로 공무원 대상 성별영향평가 교육과정을 40시간 이상 실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조례라는 '형식'보다는 공무원들의 양성평등의식 수준이라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그러나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다.

김희경 경남여성단체연합 성인지예산위원장은 "정책은 담당 공무원의 인식 수준과 지자체장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대전시도 지금은 '모범'으로 꼽을 만하지만 향후 담당 공무원이나 선출직 지자체장이 교체될 경우 어떻게 바뀔지 알 수가 없다"며 일관성 있고 지속적인 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조례 제정이라는 제도적 기반 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공무원 대상 양성평등 교육을 더욱 강화함과 동시에 조례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 여성단체 등이 적극적으로 지방의회를 견제하고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례교 인천여성노동자회 부회장도 "지금의 여성정책 전담부서만으로는 여성들의 현실적 요구를 담아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에 모든 부서가 해당 분야에서 성평등 정책을 집행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하고, '성평등과' 등을 신설해 여성정책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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