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곳곳에 붙은 '어머님 전상서'

치매 어머니의 치약 세탁 사건과 메모 메들리

등록 2006.10.14 19:30수정 2006.10.1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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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제주도 여행 중 테디박물관에서.

제주도 여행 중 테디박물관에서. ⓒ 나관호

어머니에게 사라졌던 행동이 요즘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내복 찾아 입기'.


어머니는 여름에도 허전하신지 항상 내복을 입으려고 하셨다. 그래서 반복학습을 통해 고쳐드렸는데 다시 시작됐다. 요즘 새벽바람이 쌀쌀해져서 그러신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분홍색, 빨간색 내복이 다시 등장하면서 우리 집은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인공관절 수술 후에 사타구니의 구부러지는 각도가 깊으면 좋지 않다고 해서 바지 입으시는 행동도 조심하게 한다. 그래서 혼자서 내복을 입으시는 행동이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어머니, 내복 또 입으셨네요?"
"응. 좋아."
"덥지 않으세요? 벗고 반바지 입으세요."
"아냐. 좋아."
"내복은 겨울에 입으셔야죠. 지금은 가을입니다. 열도 많으신데요."

어머니가 가만히 있으시다가 손톱 깎을 가위를 찾으신다. 어머니는 그 옛날 가위로 손톱 발톱을 깎던 시절을 생각하신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 드렸다. 그랬더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호호호. 내가 받아 먹네, 받아 먹어. 내가 아들 이렇게 해줬는데."
"기억납니다. 어머니 덕에 손톱이 예뻐요."

치약으로 수건을 빤 우리 어머니


a 어머니 방 앞에 붙은 메모.

어머니 방 앞에 붙은 메모. ⓒ 나관호

그러고 나서 어머니의 발을 씻겨드렸다. 좋아하신다. 발이 따뜻해지니 몸에 열이 나시는지 내복을 벗겠다고 하신다. 어머니의 내복 벗기기 성공. 그래서 어머니에게 수건 몇 장을 빨아달라고 부탁드렸다. 손 운동도 하시고, 막 잘라낸 거친 손톱 끝부분을 달게 만들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면대에서 손빨래를 하시고 나오시는데 치약 냄새가 진동한다. 이를 닦으신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치약으로 수건을 빠신 것이다. 일단은 질책보다는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수건을 베란다에 널어 놓았다. 어머니에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 빨래는 가루비누로 하셔야죠."
"어, 그렇게 했는데. 몇 번 헹궜는지 몰라."
"그러셨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치약으로 하셨어요."
"아닌데. 내가 몇 번 헹궜는데."

그래서 어머니를 모시고 화장실로 들어가 반복학습과 시청각 교육을 다시 해드렸다.

"어머니, 이것으로 하셔야 해요."
"거로 했는데."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알고 있으니 그냥 인정해드렸다.

"참 잘하셨어요. 꼭 이것, 알지요? 어머니."
"응. 알았어. 내 손 좀 봐."
"어머니가 빨래를 잘 해주셔서 수건이 깨끗해요."
"호호호. 내가 빨래를 잘해."

a 출입문에 붙은 메모

출입문에 붙은 메모 ⓒ 나관호

어머니는 빨래 하나를 해도 야무지게 하신다. 힘 줘서 꼭꼭 짜고,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보통 사람보다 2배의 헹굼을 하고 나서야 빨래를 끝내시는 분이다. 어머니는 당신이 빨래를 했다는 생각에 흐뭇해 하신다.

"어머니, 기분 좋으세요?"
"암. 그렇고 말고. 나는 빨래하는 것이 좋아."

결국 어머니 눈을 피해 수건을 걷어 다시 세탁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 좋아하시는 초코파이와 초코우유를 드렸다. 맛있게 드시면서 반으로 나누더니 나 보고 먹으라고 하신다.

"이거 나눠 먹어."
"저는 방금 먹었어요. 드세요."
"이따가 먹을까?"
"아니에요. 지금 남기지 말고 다 드세요. 남기시면 아깝잖아요."
"그럼 먹어야지."

어머니에게 "아깝잖아요"라는 말은 언제나 특효약이다. 초코파이를 드시는 어머니를 보니 어린아이가 따로 없다. 손으로 조금씩 떼어 드시면서 옷에 떨어진 부스러기도 집어 드신다. 그리고 우유도 쪽쪽 소리가 날 정도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빨아 드신다. 그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실수하시는 모습도 귀엽게 느껴진다.

어머니와 나는 메모로 말해요

a 세면대 앞에 새로 붙인 메모

세면대 앞에 새로 붙인 메모 ⓒ 나관호

잠시 생각하다가 세면대 거울에 메모를 붙여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은 어머니를 위한 메모가 곳곳에 있다. 어머니 방, 출입문, 전화기 등등. 어머니를 위한 시청각 교육이다. 글을 읽으시고 행동을 자제하시기 때문에 효과적이다.

세면대용 메모는 이렇게 썼다.

"어머니!! 거울 보고 한 번 웃으세요. 치약으로 이를 닦고, 비누로 수건을 빨아주세요. 어머니 최고로 예뻐요.~~~~"

어머니 같은 분들은 의외로 단순하셔서 메모도 효과적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마음대로 행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하신다. 어머니에게 세면대용 메모를 붙이기 전에 몇 번 읽게 해드렸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호호호. 나보고 웃으라고. 이게 누구야."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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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과속운전은 살인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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