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의 차밭. 여기는 여전히 녹색이다.백유선
나는 차(茶)를 잘 모른다. 물론 즐겨 하지도 않는다. 그저 차라고 하면 커피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것도 자판기 커피. 그러니 차를 안다고 하기 어려울 수밖에….
지난해 이른 봄, 서산의 한 선원(禪院)에 들른 적이 있다. 겨울 참선 수행기간이 끝나고 스님들이 떠나버린 큰 선원. 혼자서 선원을 지키고 있던 스님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유난히 차를 좋아하는 이 스님은 직접 물을 데워 차를 끓여준다. 마시는 법도 익숙지 않아서 스님이 하는 대로 따라 마셨다.
한 잔 마시고 나니 스님은 다시 빈 잔을 채워준다. 또 마시고 나면 채워주고. 찻잔이라고 해야 양이 겨우 한 입 정도밖에 안 되어서 대여섯 잔정도 마신 것 같다. 그제야 나는 차는 이렇게 계속 채워가며 마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화가 즐거워서인지 차 맛은 생각나지 않는다. 스님이 좋은 차임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정성스러운 대접이 고마워서 그저 맛있나 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렇게 난 차를 모른다.
가끔 즐기는 차도 있다. 다름 아닌 '곡차'. 불가의 고승들 중에는 술을 곡차라고 부르며 즐기는 분들도 있었다. '곡식을 빚어 만든 차'라는 뜻이니 곡차라는 말은 스님들의 재치가 느껴지는 단어다. 깨달음을 추구하며 수행을 생활로 하는 스님들의 여유라고나 할까. 물론 스님들은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계율에 어긋나는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