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왕관도 쓰고, 시도 감상하고

[시와 사진]순천만 갈대숲에서 열린 시화전

등록 2006.10.17 10:43수정 2006.10.17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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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부터 오는 22일까지 '2006 순천만 갈대 축제'가 전남 순천시 주최로 열립니다.


'자연해설가가 들려주는 순천만 이야기'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약 15분 가량 자전거를 타고 들어간 외진 갈대숲에서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순천지부가 주관하는 시화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순천만을 소재로 한 시와 함께 그곳에서 만난 풍경 몇 장을 사진기에 담아보았습니다.

a 자전거 나들이

자전거 나들이 ⓒ 안준철

이제는
홀로 깊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

이제 너는 가서 다시 오지 않지만
까치놀 지는 포구에 서면
오늘은 홀로 지는
너의 긴 그림자가 눈부시구나

갈대꽃이여

너를 위하여
오늘 내가 기꺼이 바치는 것은
그리움으로 가슴 베이던
사랑이었다


갈대여
이제 다시는
찬 별빛 서러운 이별의 노래
다시는 부르지 말자 갈대꽃이여!

-정안면의 시, '갈대'


a 갈대밭의 연인들

갈대밭의 연인들 ⓒ 안준철

a 시를 감상하는 사람들

시를 감상하는 사람들 ⓒ 안준철

하도나 좋은 포구 이름

누울 와 따스 온

갯물은 덮어주고

갯벌은 품어주고

여기 무슨무슨무슨

잎 다문 조개들의

西山 해질녘

-서정춘의 시, '와온의 詩'

a 갈대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한 폭의 시

갈대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한 폭의 시 ⓒ 안준철

뻘밭에서 꽃이 피는구나
갯쑥조차 피지 않는
소금바람에도 그대는 피어나는구나

그리움보다 먼저 싸락눈이 쌓이고
천상에서 내려온
발가락이 예쁜 새떼들,
그대 붉은 입술을 쪼아대는구나

꽃이 피어서 세상이 아름다운 것인가
세상이 아름다워서 꽃은 피는 것인가

눈 내리는 새벽 바닷가
첫사랑 떨리는 손끝을 모은 채

눈길을 걸어가던 내 그리운 사람
그대 홀로 떠나간 화포나루,

갈대숲너머 새떼는 멀리 날아가고
뻘밭에서 꽃이 피는구나
뻘밭에서도 꽃은 피어나는구나.

-나종영의 시, '화포나루'

a 갈대왕관을 쓴 아이들

갈대왕관을 쓴 아이들 ⓒ 안준철

a 순천만 대대포구

순천만 대대포구 ⓒ 안준철

이 몸을 눕히지 않고는
빠져 나지 못하리.
이 맘을 죽이지 않고는
떠나지 못하리.

썩고 삭은 청상 세월
세상 더 잴 수 없는 빛의 무게로
흘러와 쌓인 어머니
이 따스한 체온

작은 부딪침에도 몸살 앓는 사람의 바다에
채울 것 하나 없는 바램으로
깊이 모를 파도를 보듬어
새들은 날개를 퍼득이네.
허우적이는 내 뼈를 타고 하늘로 오르네.

바람에 실려오네.
저 냇물에 실려오네.

이 몸을 버리지 않고는
거듭나지 못하리.
나아가지 못하리.
발빠진 남녘 갯벌에 속맘을 부리지 않고는
저 험한 길을
단 한 걸음도

-김기홍의 시, '사람의 바다'

a 용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만-붉은 색을 띤 것이 칠면초이다

용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만-붉은 색을 띤 것이 칠면초이다 ⓒ 안준철

새를 보러 왔다가 새 한 마리 못 보고
가실 끝난 들판
흩날리는 검부재기만 보다가
가물어 갈라 터진 개펄
끝없어 눈 근지러운 갈대밭 하얀
출렁이는 햇살만 보다가

꺾일 듯 성치 않은 발목
갈길 멀어 돌아가려는데
날아오르라고 하네
오래 누워 더럽혀진 몸뚱이
훌훌 털고 날아오르라고 하네
새똥같이 깔린 쑥부쟁이 꽃송이들

-김해화의 시, '새를 보러 왔다가'

a 갈대 왕관을 쓰고 '갈대미로여행'을 즐기는 부부의 다정한 모습

갈대 왕관을 쓰고 '갈대미로여행'을 즐기는 부부의 다정한 모습 ⓒ 안준철

a 무진기행열차-무진 갈대공원까지 가기 위해서는 자건거를 타든지 열차를 타든지 해야한다.

무진기행열차-무진 갈대공원까지 가기 위해서는 자건거를 타든지 열차를 타든지 해야한다. ⓒ 안준철

갯벌을 빠져나가지 못한 바다들은
갈대숲의 노을이 되어 반짝였다
멀리 도심의 불빛들이 흔들리고
빛의 잔해들이 부서져 내렸다
휘황한 도심으로부터 빠져나온
어둠의 깊은 절망들이 갈대숲으로 사라지고
포구의 외등 불빛이 혼자서 깜빡였다
어두운 수로를 거슬러 오는
늦은 고깃배 한 척의 대대포구
배를 정박하는 늙은 어부의 긴 그림자가
갈대숲의 어둠에 닿아 묻혔다

-박두규의 시, '大垈 포구'

a 순천만의 일몰-갯벌에 물이 차서 아쉽게도 S자 수로는 볼 수 없었다.

순천만의 일몰-갯벌에 물이 차서 아쉽게도 S자 수로는 볼 수 없었다. ⓒ 안준철

바다를 둘러싼 산줄기들이
뭍이여 물이여 경계도 없이
참선에 든 스님처럼
쪽빛 어둠 속으로 잦아들 때쯤
미처 산 날망을 넘어가지 못한
빛의 새끼들을
길게 드러누운 뻘밭이 거두어 주었다
지느러미들을 쓸어주고
여린 부리들을 간지러 주고
다시는 더 받아 줄 데 없는
세상의 온갖 잡동사니
구정물을 받았다가
갈대밭 사이로 퍼렇게 눈 뜨는
아침 바다를 낳기 위해
머리 풀어 헤치고 누워 있는 바다의 가슴
오는 것들 무엇하나 마다하지 않고
별빛 몇 점 머리 위에 빛나게도 하는
당신의 몸은 따뜻하다

-이학영의 시, '와온(臥溫) 갯벌에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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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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