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을 앞두고 밤 늦게 들어와 아들이 남겨놓은 메모.박철
"배고파요.
우리도 좀 먹고 살아요.
냉장고에 아무 것도 없음"
우리 집 큰 아들 녀석이 남겨놓은 메모였습니다.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치고 올해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는 녀석입니다. 정규학교를 안 다녀서 실력이 모자란 탓에 죽기 살기로 학원에 다니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아내가 싸준 도시락 두 개를 들고 마치 전쟁터에 나가듯이 학원에 갑니다.
요즘 수능시험이 코앞에 닥쳤다고 밤 12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옵니다. 그러니 아들 녀석의 얼굴 보기가 어렵습니다. 아침에는 내가 산행을 하기에 못 보고, 저녁에는 밤 9시만 조금 넘으면 일찍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볼 수가 없습니다.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날은 일요일밖에 없습니다.
아들 녀석이 써놓은 글을 읽고 아내처럼 박장대소를 하지는 않았지만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들이 남긴 메모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런 메모를 남겼을까?' 이 녀석은 체구도 크고 먹성도 좋습니다. 집에만 돌아오면 습관적으로 냉장고 문을 엽니다. 가끔 잠결에 한밤중 집에 돌아온 아들 녀석이 냉장고 문을 열고 닫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마음이 짠하지요.
새벽기도회를 다녀와서 옷을 갈아입고 아침 산행에 나섰습니다. 아침 산이 뿌연 안개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성큼성큼 산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얼마큼 가다가 갑자기 명치끝부터 울컥하더니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큰아들 녀석에 투정 삼아 써놓은 메모가 못난 아비의 가슴을 후려치는 것이었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뒤만 돌아서면 배가 고픈 나이에 젊음을 학원에 저당 잡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먹고 싶은 것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기껏 아침밥은 먹는 시늉만 하고 달랑 도시락 두 개로 점심과 저녁을 때워야 하는 아들 녀석의 처지가 참으로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처음에는 교대에 가려고 준비를 했었는데, 성적이 그만큼 되지 않자 자신이 남보다 뒤처졌다는 상실감이, 그리고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가 아들 녀석을 더 허기지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들하고 대화를 나눈 적이 요즈음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