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광화문 일민미술관 옥상을 기습적으로 점거, '비정규직 철폐' 구호를 외치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무엇보다 운동의 위기를 인식하는 사람들은 운동 내부에 대해 지금부터 나 자신을 포함하여 스스로, 그리고 서로에게 묻지 않으면 안된다. 그간 우리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는 사람에게 우리가 온전하게 그의 문제의식을 귀담아 들으려 했는지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대개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문제제기를 했다거나 지금은 운동의 현장에서 멀어진 사람이라거나, 버릇없는 후배들의 철없음이라거나 하는 비판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말하는 사람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우리 안의 파시즘에 대한 문부식의 비판이 그러하였고, 노동운동에 대한 박승옥의 비판이 그러하였으며, 민족주의에 대한 임지현의 비판이 그러하였으며 여성운동에 대한 내부비판이 그러하였다.
나는 정말 편견없이 논의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평등한 교육을 위해 고교평준화는 정말 변화할 수 없는 정책일까? 그것이 공교육을 강화하는 핵심적인 방안일까? 평준화가 유지되고 있는 동안에 더 높은 교육의 질, 혹은 다른 교육내용을 원하는 사람들은 특목고로 몰려가거나 대안학교로 건너가고 있지 않은가?
비정규직 해법은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면 되는 것인가? 이미 비정규직이 취업자의 절반을 넘었고, 변화하는 고용형태로 볼 때 비정규직 취업이 줄어들 것 같지 않다면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방향이 비정규직의 철폐가 아닌 다른 방향에서 모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시민운동이나 사회운동의 이러한 입장에 대한 문제제기와 도전에 대해 침묵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새로운 아젠다가 될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다름'과 '논쟁'을 인정해야만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생태와 평화, 인권, 젠더라는 다른 시각과 관점을 통해 세계를 보려고 하는 흐름과 기존의 사회운동이 부딪히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면 안 된다.
녹색평론 김종철 편집인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진보진영 내에서도 성장주의에 기초한 주장과 녹색의 주장이 다르지 않은가. 녹색? 젠더? 아 다 좋은 이야기잖아, 우리도 그렇게 생각해, 라는 이야기는 별로 논의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여전히 같은 견해를 유지하는 쪽도 있겠지만 다른 견해가 나오는 것을 막아서는 안된다. 설사 자신이 보기에 틀리더라도 사회운동내부에서 다른 견해가 나와서 '논쟁'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를 성찰할 수 없고,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변화를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인식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상태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 사회운동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예전 같지 않음에 대해 혹여 노무현 정부의 실정이 운동권 전체도 매도하게 만들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노무현 정부가 언론과 기득권 집단의 저항을 실정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것에 대해 최장집 교수가 자기의 무능을 가리는 일이라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운동권의 실력 없음을 가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민운동에 대한 사회적 잣대가 달라지고 있다
과연 90년대에 성장한 시민단체들의 활동방식과 과제에 대해 자신은 물론 서로에게 엄히 묻고 있는가? 시민단체를 둘러싼 기업으로부터의 모금문제 같은 논란이 내부에서 보자면 얼마든지 할 말이 있고, 또 단체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어야 하지만, 시민운동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기준과 잣대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이다.
시민운동 지도자들이 모두가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면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과 관계로 진출하면서 시민운동이 마치 정계나 관계진출의 정거장처럼 되어 버린 현실이 시민운동의 위상을 결국 특정 정치집단의 후위대처럼 인식하게 만든 것도 마찬가지로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은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가? 그렇지 않다. 90년대를 시민운동과 함께 살아 온 나 자신 역시 이러한 비판과 지금의 현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앞서 한 이야기들은 나 자신에게 고스란히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있다. 분명한 것은 90년대 운동이 이제 그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사회운동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화운동이 그 역사적 사명을 다하고 90년대의 시민운동에게 그 사회적 지위를 내어주듯이 이제 다른 성격의 운동들이 조직되어야 할 때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새롭게 생성되고 성장하고 있는 운동들을 보고 있다. 생태와 평화와 인권을 가치로 내걸고 2000년 이후 활동 폭을 넓혀 가고 있는 운동들과 지역에서 성장하고 있는 풀뿌리 운동이 그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운동은 싹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