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53회

등록 2006.10.19 08:11수정 2006.10.19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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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검이 독사의 혀처럼 빠른 변화를 일으키며 용추의 지공을 차단하면서 옆으로 빠르게 돌았다. 어둠 속에서 그의 연검이 기이한 묵빛 기류를 일으키고 있었다.

따-- 당--!


연검을 쓰는 자는 매우 신중하게 옥음지의 공격을 비껴 막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용추가 옥음지를 익혔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고, 더구나 옥음지가 절대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무공이어서 그 역시 최대한 공력을 끌어올려 상대하고 있는 듯했다.

"으음…!"

연검을 가진 자는 간간이 용추를 당황스럽게 하며 밀리지 않으며 상대하는 듯했지만 흑영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의 신형이 약간 흔들리며 두어 걸음 뒤로 밀렸다. 기회였다. 용추는 빠르게 흑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일단 한 명부터 처리해야 했다. 기회를 잡은 이상 상대에게 시간을 줄 수 없었다. 그의 오른손이 쫙 펴지며 허공에 흩뿌려졌다.

띠리링---

예의 옥구슬이 부딪치는 영롱한 소리와 함께 다섯 줄기의 백색기류가 흑영의 전신을 파고들었다. 헌데 웬일일까? 상대는 옥음지를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몸으로 부닥쳐오는가 싶더니 검을 수평으로 뉘이며 그의 심장을 향해 검을 일직선으로 찔러오는 것이 아닌가? 동귀어진의 수법이었다.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상대만 죽이면 된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동시에 연검 역시 빠르게 용추의 허리를 베어오고 있었다.


"헛--!"

용추의 입에서 헛바람이 빠져나왔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흑영이 동귀어진의 수법과 같은 어리석은 짓을 서슴없이 할 줄 예상하지 못했던 용추는 급히 오른손에 들려있던 단도를 흑영에게 던지면서 양손을 급히 연검을 쓰는 자에게 떨쳐냈다.


슈욱-- 띠리리링----!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구슬이 굴러가는 영롱한 소리가 연속해서 허공을 울렸다. 백색기류가 어둠 속을 영롱하게 수놓는 것 같았다.

"허--억--!"

그의 오른손을 떠난 단도가 흑영의 몸에 박히는 것 같았다.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찔러오던 검날이 도중에 푹 꺾이며 흑영의 몸이 뒤로 주춤거리며 밀리고 있었다.

퍼퍽---!

뒤늦게 옥음지가 흑영의 몸에 스친 것 같았다. 뒤로 밀리는 흑영의 몸이 미세한 경련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연검을 쓰는 자는 빠르게 신형을 떠올리면서 가공할 검기를 뿜어냈다.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검영이 춤을 추며 용추를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용추는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느꼈다. 상대의 공격은 필살의 수였다. 이런 경우 피하려고만 하다가는 오히려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컸다. 용추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과감하게 양손을 교차시키며 자신의 공력을 모두 끌어올려 마주쳐갔다.

띠리리링--- 파아악---

다행히 용추의 생각은 적중하여 신형을 허공에 띄운 상대는 자신이 발출한 옥음지를 피하지 못한 것 같았다. 가공할 검기가 한풀 꺾인 듯했다. 헌데 이게 웬일인가?

"헉--!"

비명은 나중에 터져 나왔다. 연검을 사용하는 자의 나직한 신음은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온 용추의 비명에 삼켜졌고, 그로 인해 비명은 기이하게도 한 사람이 지른 것 같았다. 용추의 신형이 앞으로 꼬꾸라지며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퍼퍼---펑---!

용추의 등 짝을 갈긴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가죽 북 터지는 소리는 나중에야 어둠을 갈랐다. 큰 충격이 밀려왔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용추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선혈을 차라리 내뱉는 것과 동시에 아득해지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그는 바로 몸을 일으키지 않고 두 발을 허공에서 회전시키며 그 탄력으로 빠르게 옆으로 몸을 굴렀다. 기습이었다.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 자신의 등에 장력을 퍼부은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심상치 않은 내상을 입은 그로서는 상대를 확인할 여력이 없었다.

일단 물러나는 것이 최상책이었다. 병법에 있어서도 불리하면 물러나는 삼십육계(三十六計)가 모든 계략 중 첫째라 하지 않던가? 그는 일단 몸을 피하기로 작정하고 몸을 일으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빠르게 숲을 헤치며 달렸다. 기혈이 뒤집혔는지 자꾸 구토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도망을 쳤기 때문이었는지 추격해 오는 기색이 없었다.

'어떤 놈들일까? 운중보의 경계인원일까?'

운중보의 인원은 대부분 파악하고 있는 터였다. 그럼에도 두 명의 흑의인들의 내력을 짐작할 수 없었다. 더구나 운중보의 인물이라면 흑의에 복면까지 쓰고 있을 리 없었다. 그는 일단 나중에 알아보기로 했다. 운중보에 들어온 자는 빠져나가지 못한다. 뭍길이 없기 때문에 결국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 자신의 옥음지는 특이한 상처를 남기고 있을 것이므로 내일 은밀하게 조사하면 될 것이었다.

우선은 그의 몸을 추스르는 일이었다. 상대가 쫓아오지 않고 있다는 마음이 들자 등에 작렬한 장력으로 인하여 맹렬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더구나 불에 덴 듯 화끈한 느낌도 들었다. 점차 기혈이 역류하고 있었다. 자신이 맞은 장은 보통의 장력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일단 돌아가자.'

성곤 담자기를 찾아가는 일은 뒤로 미루어야 했다. 우선은 점차 험악해지고 있는 이 운중보 안에서 무사히 자신을 지키는 일이었다. 용추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상만천이 왜 직접 여기로 오자고 했는지 점차 이해가 되고 있었다. 분명 누군가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 장난을 막기 위해 상만천이 움직였을 가능성도 컸다.

상대는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절대적인 권력 앞에서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었다. 이러한 도박에서는 패하는 즉시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용추는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오늘 오후에 자신들이 세운 전각이 보이기 시작하자 울컥 치밀어 오르는 선혈을 또다시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뱉어 냈다. 그의 신형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정신도 아득해 왔다.

그런 반면에 드잡이질을 했던 장내에는 아직 세 명의 인물이 용추가 달아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좇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용추의 단검에 찔린 듯한 모습을 보였던 흑영은 옆구리에 끼었던 용추의 단도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아주 좋은 병기를 얻었군."

그는 용추의 단검에도, 옥음지에도 당한 적이 없었다. 단지 당한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연검을 쓰는 자 역시 호흡마저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돌아와 있어 조금 전의 급박한 상황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용추가 정말 옥음지를 익히고 있었을 줄이야…. 겨우 오성(五成) 정도의 수준이었으니 망정이지 구성 이상에 이르렀다면 일 처리하기 매우 까다로웠을 것이네."

"빼돌린 것이 확인된 셈이에요. 이제부터는 누가 그 나머지를 가지고 있는지, 누가 익혔는지를 확인해야겠지요."

마지막에 모습을 보였던 인물은 여자였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헐렁한 흑의무복으로 몸매를 가리고는 있었지만 왜소한 체격과 몸매가 분명 여자였고, 목소리나 말투 역시 분명 여자였다.

"자…, 마저 일을 처리해야지. 아무래도 그 친구 혼자서는 힘들 테니까…. 다 된 밥에 재 뿌리지 않으려면 우리가 서둘러 움직여야지…."

세 남녀는 소리 없이 몸을 날려 장내를 떠나고 있었다. 떠나는 그들의 입가에 어둠 속에서도 확연한 한줄기 하얀 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계획한 대로 일이 잘 풀려나가고 있다는 만족한 웃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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