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불면 생각나는 매운탕

등록 2006.10.20 15:59수정 2006.10.2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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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안개가 낀 신봉 저수지에서 물고기를 잡는 안찬수 사장
새벽 안개가 낀 신봉 저수지에서 물고기를 잡는 안찬수 사장오창경
"요즘 도시에 김치를 직접 담그거나 요리를 하는 주부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 집도 처갓집에서 가져다 먹거나 사먹는데요."

우리 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던 거래처 사람이 한 말이다. 시골에 살다보니 요리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주위에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서 요리 정보도 쉽게 얻어듣다 보니, 어지간한 음식은 직접 하는 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대견하다.


지난 추석에도 두부며 묵 등을 직접 쑤고 봄에 얼려둔 쑥으로 송편까지 빚었다. 그렇다고 내가 요리에 일가견이 있거나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는 결코 아니다. 시골살이 7년차에 접어들다 보니 환경에 어지간히 적응해나가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아직도 음식만큼은 사먹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게 시골의 정서이고, 철에 따라서 반찬 재료들을 저장하고 만드는 사람들이 많은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편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뭄 탓에 잘 영글지 않은 들깨 송이를 보면 속이 타지만, 어느새 시골 마을의 어머니들은 들깻잎을 따다가 깻잎지를 담가놓았다. 요즘은 끝물 풋고추를 따서 고추 밑반찬을 만들 궁리에 여념이 없다. 이런 시골 정서와 접하며 살다보니 콩나물도 직접 기르고 여러 가지 밑반찬 만드는 기술이 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아직도 어렵고 자신이 없는 요리 중 하나가 각종 매운탕과 찌개 요리다. 재료의 특성을 살리면서 국물 맛을 내려면 어떤 노하우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여러 번 시도해보아도 전문 음식점에서 먹는 맛이 나질 않았다.

우리 동네는 10만평의 큰 저수지를 끼고 있어 민물고기를 접할 기회는 많다. 그러나 그동안은 비린내가 심할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피해왔다. 더구나 우리 동네에는 수질 보호를 위해 음식점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마땅히 민물고기 요리를 맛보거나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붕어 요리가 제철이라는 음력 8월인 요즘, 우리 옆 동네인 서천군에 이름난 매운탕 집에 원정을 가서 매운탕 요리를 맛보고 요리법까지 배워왔다.

푸른 생명력으로 펄떡이는 물고기들
푸른 생명력으로 펄떡이는 물고기들오창경
바다 생선과 달리 민물고기는 냉동 상태일 때보다 활어를 써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서천군 마산면에 있는 매운탕집 '물고기 세상'의 안찬수 사장은 항상 집 앞 신봉 저수지에서 직접 잡은 붕어와 메기, 배가사리, 가물치 등만 사용한다고 한다. 이 사실은 그가 그물을 걷으러 가는 새벽 시간에 동행해서 내가 직접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두었다.

매운탕에는 각 음식점마다 비법인 육수와 양념이 있기 마련이다. 그동안 내가 수집한 정보 중엔 매운탕 육수로 콩나물과 무를 푹 끓인 물을 쓰면 한층 시원한 맛이 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물고기 세상'의 매운탕의 비법은 얼큰한 양념 맛에 있다고 했다.


싱싱한 민물고기 등 재료가 준비됐으면 된장, 고추장, 간장, 고춧가루, 마늘, 양파, 대파 등의 양념에 물을 붓고 끓인다. '물고기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한약재와 비법 양념 달인 것을 한 숟가락 넣어서 끓이지만, 보통 가정에서 매운탕을 끓일 때는 굳이 비법 양념을 쓰지 않아도 불 조절만 잘 하면 된다고 한다.

고춧가루는 좀 매운 것을 쓰고, 된장과 고추장은 너무 많이 넣으면 걸쭉해지거나 원재료의 맛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항상 유의해서 찻숟가락 하나 정도만 써야 한다. 그리고 한소끔 끓이고 난 다음에는 약한 불로 줄이되 너무 오래 끓여서 살코기가 물러지지 않을 만큼만 끓이라고 했다.


매운탕
매운탕오창경
붕어는 매운탕보다 찜으로 많이 쓰이는데 기력을 보해주는 효과가 있고 깊은 맛이 있다고 한다. 붕어들이 살이 오르는 이맘때에는 수험생들이나 운동선수들의 보양식으로 인기가 있다. 신봉 저수지에선 자연산 메기도 잘 잡히는데, 메기 매운탕은 가시가 없고 살코기가 많아서 어린아이들을 동반했을 때 먹기 좋은 음식이다. 흔히 '빠가사리'라는 억센 발음으로 불리는 배가사리 매운탕은 가시가 많아서 먹을 것은 별로 없지만 가시에서 우러나오는 국물 맛이 시원하고 담백해서 소주 안주나 해장용으로 먹으면 좋다고 한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민물고기 매운탕에는 냄비 바닥에 삶은 시래기를 쓰는 경우가 많다. 양념이 적당히 배어 들어간 시래기는 살코기를 먹는 재미를 배가한다. 그리고 얼큰한 국물 맛에 적당히 입맛이 길들여진 다음에는 수제비를 떠 넣어서 감칠맛도 느끼게 해주기 마련이다.

안 사장은 거의 모든 매운탕에 수제비를 넣지만, 붕어 매운탕에는 잔가시가 많아서 수제비가 들어가면 위험할 수가 있다며 넣지 않는 것이 좋다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가정에서 특별한 비법 없이 쉽게 매운탕을 끓여 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 묵은 김치를 넣고 끓이는 방법을 추천해 주었다.

요즘은 김치 냉장고 덕택에 작년에 담은 김장 김치를 여전히 먹는 집들이 많을 것이다. 다시 김장철이 다가오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맘때에 혹시 민물낚시하러 떠난다면, 여러 가지 양념을 챙길 필요 없이 묵은 김치만 가져가서 냄비에 김치를 깔고 그 위에 매운탕 거리를 놓고 물만 부어서 끓여 주면서 간만 맞추면 얼큰한 매운탕을 시원하게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이 방법은 나도 당장 써먹어 봤는데 남편에게서 친구들 불러서 소주 한 잔 하고 싶을 정도는 된다는 평을 들었다.

소문난 맛집을 소개하는 방송프로그램에서 어느 집이든 '비법 양념'이 있다면서 그것만은 공개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봤을 것이다. '쇼맨쉽'인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호기심을 증폭시켜 기어이 한 번 먹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데는 충분한 효과가 있다.

안 사장한테 매운탕 요리에 대해 한바탕 강의를 듣는 동안 나도 그 '비법 양념'이 궁금해졌다. 차마 그 비법까지 가르쳐 달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아줌마 정신으로 안 사장을 졸라 그 '비법 양념'을 한 통 얻어 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비법 양념'을 안고 의기양양하게 돌아 왔지만,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 매운탕은 아직 선보이지 못했다.

매운탕 상차림
매운탕 상차림오창경

덧붙이는 글 | 전원주택 라이프 11월호에 송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전원주택 라이프 11월호에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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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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