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해냄에서 번역한 <체 게바라> 겉그림.
인효 녀석이 혁명가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그린 아름다운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보고 나서부터였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녀석에게 체 게바라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자신의 몸을 던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싸웠던 우리 시대의 가장 훌륭한 혁명가 중에 한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체 게바라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녀석에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아주 단편적인 사실 뿐이었다. 결국 녀석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매주 면 소재지로 찾아오는 이동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빌렸다.
그것은 체 게바라의 일생을 그린 수많은 책 중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쿠바에서 보내온 체 게바라 휴먼 다큐멘터리 <체 게바라>(도서출판 해냄/ 일다 바리오. 개리스 젠킨스 지음/ 윤길순 옮김)였다.
분명 초등학교 5학년인 인효 녀석에게는 쉽게 읽힐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린이들 앞에 침략자들을 영웅으로 둔갑시키고 돈과 명예와 권력을 얻어 성공했다는 별의별 시시껄렁한 인간들을 묶어 위인전이라 내놓는 세상에 <체 게바라>를 읽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녀석이 단 한 구절이라도 이해할 수 있길 바라며 서슴없이 그 책을 권했다. 화보집에 가까울 정도로 영화배우처럼 멋진 체 게바라의 사진이 곁들여 있어서인지 녀석은 생각보다 재미있게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녀석과 번갈아 가며 읽은 그 책에는 체 게바라의 단편적인 일생을 담은 사진과 함께 모두 5장으로 나눠 얘기하고 있었다. 제1장 아이, 학생, 여행자. 2장 게릴라 전사. 3장 정치가, 외교관, 남편, 아빠. 4장 국제적인 전사. 5장 전설.
60년대 '혁명영웅'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1928년 아르헨티나의 중류가정에서 5남매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의학을 공부했다. 의과 대학생이었던 게바라를 바꿔놓았던 것은 자전거에 모터를 단 모터사이클을 타고 남미 전역을 여행하면서부터다.
어려서부터 심하게 앓아왔던 천식을 극복해 나가면서 5천킬로미터에 달하는 여행길에 나섰던 것이다. 그는 그 길에서 가난한 민중들의 삶을 만났고 민중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명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된다.
1956년 그는 멕시코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게릴라 훈련을 받고 쿠바 혁명 길에 나선다. 쿠바는 189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였으나 얼마 안 되어 반식민지 상태인 미국의 보호령이 되는 바람에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누리지 못했다. 1950년대에는 미국의 대기업과 마피아 보스들이 쿠바 경제를 지배했고, 정부는 그들에게 기대고 있었다.
체 게바라, 카스트로 등을 비롯한 80여 명의 혁명 전사들은 쿠바에 상륙하자마자 독재자 바티스타 정부군에 발각돼 전멸하다시피 한다. 하지만 그는 카스트로 등의 몇몇 생존자들과 함께 마에스트라 산맥에 숨어 혁명군을 모아 수만 명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의 군인들을 상대로 게릴라 활동을 벌인다. 1959년, 드디어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입성, 전설적인 쿠바혁명의 신화를 창조해 낸다.
쿠바 혁명 정부에서 그는 문맹퇴치 운동을 벌였고 국립은행 총재를 비롯해 산업부 장관을 역임하며 공산권과 제3세계를 돌며 제국주의, 식민지주의에 반대하는 외교활동을 벌인다.
하지만 그는 1965년 4월 장관직을 버리고 당시 내전 중이었던 아프리카 콩고로 잠입해 콩고혁명을 위해 뛰어들었고, 그 다음해 자신의 아들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장을 하고 볼리비아로 잠입해 혁명의 불씨를 지핀다. 그러나 미국의 CIA 도움을 받고 있던 볼리비아 정부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였지만, 1967년 10월 8일 부상을 당하고 체포돼 처형된다. 당시 그의 나이 39세.
혁명의 길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떠났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