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혁명가 되면 모가지 날아간대"

혁명가를 꿈꾸는 아들과 함께 읽는 <체 게바라>

등록 2006.10.23 15:09수정 2006.10.2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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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서 정부군과 맞서 전투를 벌일 당시의 체 게바라(1958년). (이 사진은 도서출판 해냄에서 번역한 책 <체 게바라> 안에 있는 사진을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쿠바에서 정부군과 맞서 전투를 벌일 당시의 체 게바라(1958년). (이 사진은 도서출판 해냄에서 번역한 책 <체 게바라> 안에 있는 사진을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아빠, 혁명가가 되면 모가지가 날아간대."
"모가지? 누가? 누가 그런 소릴 혀!"
"교장선생님이, 혁명가 되면 큰일이 난대, 그런 거 하지 말래 모가지 날아간다구…."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우리 집 큰아이 인효에게 교장선생님이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었던 모양이다. 녀석은 당돌하게도 거침없이 '혁명가요'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교장선생님은 혁명가가 얼마나 끔찍했으면, 또 얼마나 당황했으면 어린 제자에게 모가지가 날아간다고 했을까? 정년퇴임을 1년 앞두고 있다는 교장 선생님은 아마 '혁명가'와 '빨갱이'를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총부리를 겨누고 피 터지게 싸워 뒤집어엎는 그 모든 것을 혁명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다음에 교장선생님이 또다시 묻거들랑 안중근 의사도 윤봉근 의사도 모두 민족해방을 위해 싸웠던 혁명가였다고 대답해라, 그리고 아빠가 생각할 때 혁명이라는 게 따로 없다고 봐, 어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일이 혁명인겨, 만약 니들 반 모두에게 부당하게 따돌림당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를 사랑으로 감싸 주는 것도 역시 혁명이라면 혁명인겨."

혁명가를 꿈꾸는 아들

도서출판 해냄에서 번역한 <체 게바라> 겉그림.
도서출판 해냄에서 번역한 <체 게바라> 겉그림.
인효 녀석이 혁명가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그린 아름다운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보고 나서부터였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녀석에게 체 게바라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자신의 몸을 던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싸웠던 우리 시대의 가장 훌륭한 혁명가 중에 한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체 게바라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녀석에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아주 단편적인 사실 뿐이었다. 결국 녀석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매주 면 소재지로 찾아오는 이동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빌렸다.


그것은 체 게바라의 일생을 그린 수많은 책 중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쿠바에서 보내온 체 게바라 휴먼 다큐멘터리 <체 게바라>(도서출판 해냄/ 일다 바리오. 개리스 젠킨스 지음/ 윤길순 옮김)였다.

분명 초등학교 5학년인 인효 녀석에게는 쉽게 읽힐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린이들 앞에 침략자들을 영웅으로 둔갑시키고 돈과 명예와 권력을 얻어 성공했다는 별의별 시시껄렁한 인간들을 묶어 위인전이라 내놓는 세상에 <체 게바라>를 읽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녀석이 단 한 구절이라도 이해할 수 있길 바라며 서슴없이 그 책을 권했다. 화보집에 가까울 정도로 영화배우처럼 멋진 체 게바라의 사진이 곁들여 있어서인지 녀석은 생각보다 재미있게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녀석과 번갈아 가며 읽은 그 책에는 체 게바라의 단편적인 일생을 담은 사진과 함께 모두 5장으로 나눠 얘기하고 있었다. 제1장 아이, 학생, 여행자. 2장 게릴라 전사. 3장 정치가, 외교관, 남편, 아빠. 4장 국제적인 전사. 5장 전설.

60년대 '혁명영웅'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1928년 아르헨티나의 중류가정에서 5남매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의학을 공부했다. 의과 대학생이었던 게바라를 바꿔놓았던 것은 자전거에 모터를 단 모터사이클을 타고 남미 전역을 여행하면서부터다.

어려서부터 심하게 앓아왔던 천식을 극복해 나가면서 5천킬로미터에 달하는 여행길에 나섰던 것이다. 그는 그 길에서 가난한 민중들의 삶을 만났고 민중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명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된다.

1956년 그는 멕시코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게릴라 훈련을 받고 쿠바 혁명 길에 나선다. 쿠바는 189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였으나 얼마 안 되어 반식민지 상태인 미국의 보호령이 되는 바람에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누리지 못했다. 1950년대에는 미국의 대기업과 마피아 보스들이 쿠바 경제를 지배했고, 정부는 그들에게 기대고 있었다.

체 게바라, 카스트로 등을 비롯한 80여 명의 혁명 전사들은 쿠바에 상륙하자마자 독재자 바티스타 정부군에 발각돼 전멸하다시피 한다. 하지만 그는 카스트로 등의 몇몇 생존자들과 함께 마에스트라 산맥에 숨어 혁명군을 모아 수만 명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의 군인들을 상대로 게릴라 활동을 벌인다. 1959년, 드디어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입성, 전설적인 쿠바혁명의 신화를 창조해 낸다.

쿠바 혁명 정부에서 그는 문맹퇴치 운동을 벌였고 국립은행 총재를 비롯해 산업부 장관을 역임하며 공산권과 제3세계를 돌며 제국주의, 식민지주의에 반대하는 외교활동을 벌인다.

하지만 그는 1965년 4월 장관직을 버리고 당시 내전 중이었던 아프리카 콩고로 잠입해 콩고혁명을 위해 뛰어들었고, 그 다음해 자신의 아들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장을 하고 볼리비아로 잠입해 혁명의 불씨를 지핀다. 그러나 미국의 CIA 도움을 받고 있던 볼리비아 정부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였지만, 1967년 10월 8일 부상을 당하고 체포돼 처형된다. 당시 그의 나이 39세.

혁명의 길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떠났던 사람

모터 달린 자전거를 타고 아르헨티나를 탐험하던 의과 대학생 시절의 게바라(1950년).
모터 달린 자전거를 타고 아르헨티나를 탐험하던 의과 대학생 시절의 게바라(1950년).
1966년 제국주의 지배에 맞서 싸우는 제3세계 나라들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바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연대를 위한 조직(OSPAAAL)이다. OSPAAAL에서 발간한 잡지 <트리콘티넨탈> 창간호에 체 게바라는 '두 개, 세 개, 네 개의 베트남을 만들어라'라는 제목의 메시지에서 '인류의 가장 큰 적인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민중들이 힘을 하나로 합칠 것'을 요청했다. 이것은 사실상 체의 유언이 되었다. (본문 430쪽)

체 게바라의 위대함은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그가 성공한 혁명가여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용기를 선택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모든 속박을 끊고, 그 어떤 두려움 없이 혁명의 길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떠났던 사람이었다.

"나를 이끄는 유일한 열정은 진리에 대한 열정이다. …나는 모든 것을 이런 관점에서 본다." (체 게바라)

예수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기보다는 적을 무찌르기 위해 총을 든 게릴라였지만, 그는 이상주의자였고 예술을 사랑했던 낭만주의자였다.

"우리는 삶을 사랑하며 따라서 그것을 지킬 것이다. …만일 우리가 낭만주의자라고 도저히 구제할 길 없는 이상주의자라고, 불가능한 것을 생각한다고 말한다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맞는 말이다. 우리는 '그렇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체 게바라)

이 책에는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 혁명에 참여했던 몇몇 사람들의 인터뷰 기사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 중 하나인 '오스카르 페르난데스 멜' 박사는 체 게바라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비평가였고 예술을 사랑했다. 그는 어떤 도시에 있거나 그곳에 있는 박물관에 가곤 했으며, 인류가 성취한 가장 위대한 것들에 대해 아는 게 많았다."

"그는 가장 매혹적이고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그는 많은 여성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는 달콤하면서도 우수에 젖은 미소를 지니고 있다. 체는 냉정할 정도로 빈틈없는 정신과 비범한 능력, 높은 지성,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쿠바를 뒤흔들고 있다."
(1960년 8월 8일 타임지)

시를 좋아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작가이자 언론인이었고, 웅변가였던 체 게바라는 박학다식했다. 하지만 그는 자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단점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 단점은 어찌나 뚜렷이 보이는지 도대체 종잡을 수 없을 정도다." (체 게바라)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것은 어떤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는 용기가 부족한 것이다. 그것은 경제적인 현실이 될 수도 있고 정치적인 현실이 될 수도 있지만 특히 경제적인 현실이 그렇다. 때로 우리는 궁지에 몰리면 모래 속에 머리만 처박는 타조와 같은 정책을 따르는 동지들을 본다. 경제 문제에서 우리는 늘 가뭄 탓만 하고 제국주의 탓만 했다.…" (체 게바라)

체는 늘 모범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주중에 장관으로서 일을 마친 뒤나 주말에 자주 자발적인 육체노동을 했다.

체 게바라와 동지가 돼 버린 아들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는 체 게바라. 그는 장관 일을 마친 뒤나 주말에 자주 자발적인 육체노동을 했다.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는 체 게바라. 그는 장관 일을 마친 뒤나 주말에 자주 자발적인 육체노동을 했다.
다음은 사랑수수밭에서 추수를 거들며 운전사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체: "어이 동지 당신 칼은 어디 있어?"
운전사: 난 여기 추수하러 온 게 아니에요. 난 운전사라구요.
체: 이 사람아, 운전사는 누구나 될 수 있어. 어서 칼 찾아서 다른 사람들처럼 일하러 와. 아니면 지금 당장 떠나고. 트럭은 걱정 마. 필요하다면 내가 직접 운전해서 돌아갈테니.

책을 다 읽고 나서 인효 녀석에게 물었다.

"너 정말로 그 책 다 읽었어?"
"응 다 읽었어."
"그 책 이해할 수 있겠어."
"아니, 이해 못 하는 게 더 많았어."

"어떤 부분이 제일 인상 깊데?"
"세계 어디서든 불의가 저질러지면 그것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
"그게 무슨 뜻인데?'
"미국이 이라크 침략할 때 우리가 분노했던 것처럼 그런 거 아녀?"


인효 녀석은 체 게바라가 콩고 혁명 전선으로 떠나면서 자신의 자식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글을 인용하고 있었다.

"세계 어디서든 불의가 저질러지면 그것에 깊이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어떤 불의이건 어떤 사람에게 저질러진 불의이건 상관없이 이게 혁명가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다." (체 게바라)

인효 녀석은 "만약 당신이 세상에서 불의가 저질러질 때마다 분노에 떨 수 있다면 우리는 동지다(체 게바라)"라고 했던 체 게바라와 어느새 '동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나는 녀석의 어린 가슴에 분노를 키우게 될까봐 그것이 두려웠다.

"그런데 인효야, 체 게바라가 사랑이 없으면 위대한 혁명가가 될 수 없다고 했는데 그 거 읽었어?"
"그려? 그건 못 본 거 같은디…."
"니가 미국에 대해 분노한 것은 이라크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잖어, 체 게바라도 그랬거든 '진정한 혁명가를 이끄는 것은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이다. 이런 감정이 없는 위대한 혁명가란 생각할 수 없다'라고 했지."


체 게바라를 읽고 난 녀석의 가장 큰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아빠 나 있잖어, 이담에 커서 통일이 되면 자전거에 모터를 달고 북한을 거쳐 중국·러시아·유럽까지 여행할껴, 체 게바라처럼 의사가 돼서 가난한 사람들 병 고쳐줘가며 여행을 떠날 껴."

학교에서 돌아오면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 타는데 온통 시간을 보내고 있는 녀석이 체 게바라를 읽고 가장 큰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자전거에 모터를 달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기나긴 여행길에서 만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병을 고쳐줘가며.

앞으로 녀석의 꿈이, 장래희망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녀석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쿠바에서 보내온 휴먼 다큐멘터리 <체 게바라>는 분명 녀석의 장래 희망에 크나큰 영향을 주고도 남을 책이었다. 체 게바라를 통해 녀석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하겠다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을 갖게 되지 않았던가.

미국의 큰 바위 얼굴 따위들을 위인으로 삼아왔던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면 체 게바라에 대해 올바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엄청난 '사건'인 셈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미군이 진을 치고 있는 대한민국 땅에서 내 자식에게 미 제국주의와 싸웠던 체 게바라를 진정한 위인이라고 말해 줄 수 있다는 것이.

덧붙이는 글 | <당신의 책,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응모글 
사진은 책 본문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당신의 책,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응모글 
사진은 책 본문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실천문학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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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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