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정치와 폭로저널리즘이 뭉치면?

[지역언론 별곡-152] 정치인 발언에 일희일비하는 국감의제 ‘백태’

등록 2006.10.22 14:43수정 2006.10.2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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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감에서 폭로된 지역실상을 특집으로 다룬 <강원도민일보> 21일자 1면

국감에서 폭로된 지역실상을 특집으로 다룬 <강원도민일보> 21일자 1면 ⓒ 강원도민일보

'자살률 전국 1위'
'조폭수 전국 1위'
'긴급체포 전국 1위'

바야흐로 폭로의 계절이다. 국감시즌, 최강을 가리는 폭로리그전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국감 열풍은 전 지역을 고루 달구고 있다. 폭로정치인들이 그 주인공이다. 가장 신바람난 건 역시 언론사들이다.

메달경쟁을 벌이는 전국체전 소식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국감에 귀를 쫑긋 세우며 의제를 쫓는 지역 언론사들은 끊임없이 정치적 스펙터클을 만들어 내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통계나 수치임에도 '위기', '지도력 부재' 등에 버무려 끊임없이 재구성하고 있다.

60년대 중반 미국의 정치학자 머레이 에델만이 '정치의 상징적 의미'에서 강조한 '정치와 언론의 합일'의 실체를 보는 듯하다. 국감정치와 국감저널리즘의 합일과정은 눈여겨 볼만 하다. 이러한 합일이 대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실망, 불안, 좌절을 일차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치와 언론의 호흡은 척척 맞는다.

언론과 호흡 척척 맞는 국감정치

a <전북일보>는 인구당 조폭수가 가장 많은 지역임을 부각시켰다. (왼쪽 사진) <한라일보>는 21일 사설에서 조폭수가 많은 데 대한 우려감을 표했다.

<전북일보>는 인구당 조폭수가 가장 많은 지역임을 부각시켰다. (왼쪽 사진) <한라일보>는 21일 사설에서 조폭수가 많은 데 대한 우려감을 표했다.

온통 핵우산에 신경 쓰며 불안해하는 중앙언론과 마찬가지로 지역언론 역시 '불안해서 살 수 없는 지경'이라는 전달 메시지는 동일하다. '우리지역이 가장 꼴찌', 또는 '전국 최고'라는 선정적인 제목과 기사에서 묻어난다. 1면, 정치면, 사회면 헤드라인의 단골메뉴는 호전적 매파의 성격이 짙다.

지역마다 위기와 불안의 시계가 다르지만 지역별 자살률과 조직폭력배수, 각종 경제지표가 주된 스포트라이트 대상이다. 그 중 조직폭력배 지역별 수치는 뜬금없다.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조직폭력배 검거율이 낮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형태는 지역별 순위에 초점을 모으고 있다. '폭력배가 가장 많이 활동하고 있는 지역은 바로 우리지역'이라며 경쟁적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인구대비 조폭이 가장 많은 곳', '치안력에 비해 조폭이 가장 많은 곳' 등 해석이 제각각이다.

19일 강창일 열린우리당 의원이 밝힌 자료지만 지역별로 의제설정이 다르다. 경기도가 가장 많은 지역이라고 발표했지만, 전북지역은 인구당 조직폭력배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이라고 보도됐다.


'인구당 조폭수 1위'란 제목에서 보듯이 기어코 '최고지역'임을 도출해 내고야 만다. '고교생 비만율 전국 1위'라는 전날 국감발표자료도 사회면에서 요긴하게 활용됐다. 국감저널리즘은 제목들이 매우 선정적이다. 제주지역 언론사들도 조직폭력배 문제를 큰 이슈로 삼았다. 인구대비 전국 3위지만 '제주 조직폭력배 천국?'이란 제목에선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사설에서도 국감자료는 좋은 메뉴다. <한라일보>는 21일 사설 '평화의 섬인가, 범죄의 소굴인가'에서 "도둑·대문·거지가 없는 평화로웠던 삼무(三無)의 고장이 조직폭력배가 우글거리는 범죄 소굴로 등장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고 표현했다.

국감 때 매 맞는 단골메뉴 '경찰, 검찰'

a <매일신문>은 국감자료를 인용해 불안한 민생치안 실상을 꼬집었다.

<매일신문>은 국감자료를 인용해 불안한 민생치안 실상을 꼬집었다. ⓒ 매일신문

대구·경북지역 언론사들은 민생치안 문제에 스포트라이트를 가했다. 경찰과 검찰의 긴급체포 남발을 부각시켰다. 국감자료대로 전국 최고지역임을 내세웠다. '이래선 안 된다'는 의도가 엿보였지만 사법당국에 대한 불신감 또한 커보였다.

'기는 경찰 불안하다. 미제사건 전국 최다', '영장신청 남발 전국 최고...불안한 인권보호' 등의 제목엔 서릿발이 묻어난다. 평소와는 다르게 국감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이 검찰과 경찰에 포문을 열곤 하는 현상은 이 지역뿐만이 아니다.

민생경제 역시 지면을 크게 차지하는 분야다. 국감자료를 인용한 수치가 해당 지역과의 관련성 유무에 따라 상호작용 한다. '임금수준 최하위'. '청년 실업률 최하위', '인구감소율 전국 최고', '고속철 빨대효과로 지역경제 죽는다' 등 제목만 보아도 국감현장에서 느끼는 메시지 강도 못지않다.

a <경기일보>는 국감서 공방을 벌인 대수도론을  철폐할 것을 사설에서 촉구했다.

<경기일보>는 국감서 공방을 벌인 대수도론을 철폐할 것을 사설에서 촉구했다. ⓒ 경기일보

그러나 국감자료에서 비롯된 자살률에 관한 지역 언론보도는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모호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불안감만 더 부추기는 폭로정치와 폭로저널리즘의 대표적 사례로 보고 있다. 경제수준이 열악한 지역일수록 자살률이 높다는 자료발표와 보도는 가뜩이나 경제지표가 타지역에 비해 열세한 지역 민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대수도론' 공방도 초미의 관심거리 중 하나. 정치권과 언론이 구성하는 '적'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음에 시선을 끈다. 민선 4기 출범과 함께 '수도권 규제완화' 문제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편을 갈랐기 때문이다. 경기지역 언론들은 김문수 지사의 대수도론을 옹호하는 듯했다. 그러나 국감 중 비난의 화살 방향이 돌려졌다.

<경기일보> 18일자 사설 '김지사, 독불장군의 대수론을 철폐하라'에서 드러났다. "국회 건설교통위 국감도중 집중타를 맞은 건 김문수 도지사였다"는 이 사설은 "대수도론은 비수도권의 반발만 키워 역기능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누가 마음의 개를 혼란시키나?

a <중도일보>는  산업자금 충청 푸대접에 관한 국감자료 인용기사를 1면에 부각시켰다.

<중도일보>는 산업자금 충청 푸대접에 관한 국감자료 인용기사를 1면에 부각시켰다. ⓒ 중도일보

비수도권 지역국회의원들의 반발을 크게 의식한 때문일까. "비수도권의 대수도권 집중 맹타의 불씨를 만들어준 불착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 사설 말미에선 "독불장군의 대수도론 철폐를 공식 선언하는 것이 뒤늦게나마 책임을 지는 길"이라고 했다.

다른 지역신문들도 "'대수도론'이 국감의 단골메뉴가 됐다"며 비수도권의 거센 반발을 의식한 정치적 발언에 무게를 둔 경기지역 국감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이 밖에 지역의 신문·방송사들은 국회의원들이 자료를 내세워 '꼴찌' 또는 '일등'이란 발표에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며 발언내용을 지면과 화면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사실 확인, 원인 분석, 대안 제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이 와중에 피감기관 증인의 욕설 파문은 또 다른 핫이슈를 제공했다. 국감장 발언이 여과 없이 전달되는 메시지임을 입증하는 사례가 됐다.

a 올 국감서 또 다른 핫 이슈를 제공해 준 광주발 욕설파문은 결국   검찰고발로 이어졌다.

올 국감서 또 다른 핫 이슈를 제공해 준 광주발 욕설파문은 결국 검찰고발로 이어졌다. ⓒ 전남일보

19일 전남도교육청에서 열린 교육위 국감에서 불거진 욕설파문은 결국 국회 교육위원가 20일 당사자인 윤영월 광주 서부교육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는 속보기사까지 여과 없이 전달됐다.

애초 제기된 납품비리나 비자금 등의 본질적인 문제보다 욕설에 초점이 맞춰졌다.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모습도 조명됐지만 올 광주발 욕설파문은 지난해 국감 중 대구발 술자리 파문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일부 지역 언론들은 현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진행된 수박 겉핥기식 지역 국감이라며 비판하기도 했지만 국감현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정치적 스펙터클은 스펀지처럼 여과 없이 전달되고 있다.

정치인 발언, 즉 국감자료가 곧 메시지가 되는 국내 현실에서 '미디어가 곧 메시지'라고 한 마샬 맥루한은 어떤 명제를 내릴 수 있을까. '미디어의 내용은 도둑이 마음의 개를 혼란시키게 만들기 위해 던져주는 고기덩어리와 같다'고 했던 그의 말대로라면 도둑은 누구고, 개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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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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