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쥐락펴락 하는 김대중·김정일

[초점] 여야 대선주자들의 어지러운 '북핵' 셈법

등록 2006.10.22 21:05수정 2006.10.2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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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통령을 원하는가' 여론조사를 하면 매번 '경제대통령'이란 답이 압도적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경제는 항상 중요했지만 정작 대선 뚜껑이 열리면 경제 이슈는 그닥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운명은 남북관계와 외교에 놓여 있다. 평상시엔 잠잠하다가도 위기상황이 극대화된 속에서는 이 두 문제가 경제를 위협하는 요소로 급부상하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의 분위기도 그렇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저마다의 처지에 따라 북핵 사태 주판알을 튕긴다.

정치 전문가들 역시 이번 대선의 '북핵 전선'을 주목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북핵 문제가 더 이상 소강상태로 이어질 국면이 아니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해법이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고, 이에 따라 국민 여론이 어디로 튈 지 모른다"고 말했다. 북핵 사태가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 동력을 제공한 꼴이다.

[이명박-박근혜] 격차 더 벌려... '위기관리능력' 요인 부상

a 이명박 전 서울시장.

이명박 전 서울시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22일 유럽으로 출국했다. 독일은 '통일', 네덜란드에선 '운하', 스위스에선 '과학기술' 등 정책탐사 차원이라고 밝혔다.

특히 최근 국내 정세와 관련해 그의 독일 방문에 관심이 쏠렸다. 이 전 시장은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통일 이전에 어떠한 정책을 폈는지, 우리의 햇볕정책과 유사한 것이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당시 이 일을 맡았던 동독과 서독의 양 수상들을 만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통일 비용과 관련해 경제부장관을 만날 계획이다.

최근 지지율 상승과 관련 이 전 시장은 "조금 올라갔다고 해서 크게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다만 그동안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만들기에 관심을 갖다 보니 국민들이 지지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명박 지지도는 최근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를 2위를 따돌린 데 이어 격차를 더 벌리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전 시장은 북핵 사태 이후 매우 전략적 행보를 보였다. 사태 초기, 대북정책 재검토와 전작권 환수 논의 중단이라는 입장을 내놨지만 더 진도가 나가진 않았다.

한 측근은 "상황이 유동적이라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가 최근 호남을 찾아선 "북은 핵 무장을 하고, 남은 핵 분열을 하고 있다"며 여야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했다. '국론통합'을 강조하는 선에서 시간을 벌고 있다.


이 전 시장이 박 전 대표에 비해 '안보 정체성'이 선명치 않다는 점도 최근 그에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북핵 위기론도 경제와의 연관성을 들어, 이념적 색채를 드리우지 않고 있다. 진보-보수, 중간지대에 어필할 수 있는 요인이다. 아울러 '이명박식 추진력'이 위기 관리능력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a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초조한 처지다. 특히 당내 장악력면에서 압도적이었지만 이마저 위태롭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민심이 당심에 영향을 미친 현상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한길리서치가 발표한 한나라당 대의원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박근혜-이명박 지지도는 2%포인트차. 박 전 대표가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는 정도다.

홍형식 한길리서치소장은 "핵실험 이전과 이후의 평가는 다르다"고 전제한 뒤 "핵실험이 미래의 문제였을 땐 안보나 이념에 있어 선명성을 지닌 박근혜가 유리하지만, 이미 북이 핵실험을 해버리고 현실의 문제가 되었을 땐 '경제'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이명박이 유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는 북핵 위기의 책임을 철저하게 현 정권에 돌리고 있다. 햇볕정책의 창시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분리 대응하는 방식이다. 해남·진도 재보선 지원유세를 위해 호남을 방문한 박 전 대표는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매 정권마다 추진해왔던 포용정책의 정신과 기조는 찬성해왔다"면서도 "북한으로 하여금 오판을 할 수 있도록, 방조 내지 조장을 해왔다"고 현 정권의 실패로 단정했다.

세간에 '김대중-박근혜 연대설'이 나올 정도로 박 전 대표는 호남에 공을 들여왔다. 동교동을 방문해 아버지 시절 과오에 대해 사과했고, 대표 시절 미국을 방문해 북미 양자회담과 포괄적인 방법론을 제기해 전향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대응력은 달랐다. 박 전 대표는 "정치지도자로서 모호한 태도를 보여선 안된다"며 지원 중단 등 '제재'쪽에 무게를 실었다. 인도적 지원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정형근 의원보다도 한발 나간 입장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면, 국민 절반 이상은 제재 보다는 대화,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보수측은 이를 '안보불감증'이라 공격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별정책의 성과"라며 높아진 민도라 평가하는 상황.

북핵 문제가 내년 대선까지 경색국면이 유지된다면 국가정체성에 있어 확고한 이미지를 구축해온 박 전 대표가 유리할 수도 있지만, 대화가 시작되는 등 유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면 일순간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김근태-정동영] 호남 겨냥, '햇볕정책' 수호자 경쟁

a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북핵 사태가 여권에 미치는 영향은 성격이 좀 다르다. 햇볕정책에 대한 재검토 여론이 높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의 차기주자들 사이에선 햇볕정책 수호자 경쟁이 치열하다. 당장의 지지도를 의식하지 않는 행보다.

이는 향후 대선을 겨냥, 호남이라는 지역 기반 지키기와 정체성을 둘러싼 노선투쟁의 성격이 강하다. 그 주도권 다툼이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같은 처지는 김근태 의장의 개성공단 방북을 전후로 가시화되고 있다. 중도보수 성향의 의원들은 당초 김 의장의 방북을 반대했고, '춤 논란'이 불거지자 책임론을 제기하며 이슈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의장은 시종일관 단호하다. 개인 자격을 불사하며 방북을 결행했고, 다녀온 이후 견제세력의 딴죽에도 기세를 꺽지 않았다.

한 측근은 "엉뚱하게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지만 개성공단 방문 자체에 대한 평가는 없다"며 "문제제기를 하려거든 방문은 잘못된 것이고, '빨갱이'라고 말을 하는 게 차라리 솔직하다"고 말했다. 해프닝에 불과할 뿐 '사과' 할 일도 아니라는 판단이다.

동행한 천정배 의원도 "개성공단 방문을 준비하는 김 의장에게서 과거 백범의 결기를 느낄 수 있었다"며 적극 옹호에 나섰다.

북핵 사태가 터진 이후, 분명하면서도 발빠르게 대처해온 김근태 의장과 달리 정동영 전 의장의 초기 행보는 신중했다. 참여정부 대북정책의 주무장관으로서 책임론이 제기될 수 있는 처지였다. 반면 차제에 현 정부와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기회라는 인식도 있었다.

a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래선지 정 전 의장은 차기주자들 중에 가장 늦게 자기 입장을 내놨다. "포용정책의 근간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이 "정부가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 어렵게 된 것 아니냐"며 재검토를 시사한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이 무슨 죄냐, 햇볕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은 해괴한 논리"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것 사이에서, 후자에 힘을 싣는 행보다.

김근태·정동영, 여당의 두 경쟁자는 일단 '햇볕정책 지키기'라는 차원에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사업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정동영 전 의장측은 이번 김 의장 방북에 대해서도 반대하진 않았지만 '시기'에 대해선 신중론을 견지했다. 아울러 '대권 행보 아니냐'는 점에선 견제의식도 감지된다.

김정일 위원장의 '2차 핵실험 계획 없다'는 발언이 타전되면서 북핵 위기는 일단 한숨을 고르는 양상이지만 여권 내 '북핵 갈등'은 그 긴장감을 더해가는 양상이다. 한 여당 관계자는 "지금이야말로 양김(兩金) 시대 아니냐"며 "북쪽의 김정일 위원장과 남쪽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판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농반진반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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