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사극들, 왜 흔들리나?

[포커스] 설득력 떨어지는 에피소드, 지나친 늘리기로 빈축

등록 2006.10.25 14:33수정 2006.10.25 17:26
0
원고료로 응원
a MBC <주몽>

MBC <주몽> ⓒ iMBC

안방극장의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 잡은 '고구려 사극'들이 최근 들어 뒷심 부족으로 흔들리고 있다.

여전히 시청률 수치에서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최근 인기 사극들의 행보를 바라보는 시청자와 네티즌들의 반응은 예전만큼 열광적이지 않다. 오히려 높아진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부실한 완성도와 역사인식으로 인해 공공연하게 실망을 안겨주는 경우가 늘고 있다.

최근 인기 사극들이 지적받고 있는 공통적인 요인은 바로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한없이 늘어지고 있는 극 전개와 설득력 없는 에피소드의 남발, 대작에 걸맞지 않는 부실한 스케일, 몇몇 젊은 배우들의 연기력 부족 등에 있다.

<주몽>, 초반 긴장감과 흥미 사라진 지 오래

현재 안방극장 시청률 선두를 고수하고 있는 MBC <주몽>의 경우, 극 초반 빠르고 경쾌한 극 전개와 개성 뚜렷한 캐릭터들의 조화로 인기를 모았으나, 최근에는 초기의 장점이 거의 사라진 채 극 전개가 답보상태에 놓여 빈축을 사고 있다.

초반 <주몽>은 주인공 주몽(송일국)의 성장드라마라는 테두리 속에 멜로와 액션, 권력 투쟁의 정치드라마라는 다양한 장르들을 효과적으로 녹여내며 시청자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중반부를 넘어서며 주몽과 소서노(한혜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충분히 무르익기도 전에 극 전개에 밀려 흐지부지되면서 멜로 구도가 설득력을 잃었고, 태자 경합-소금산 원행-한나라와의 전쟁-대소의 난 등으로 이어지는 굵직한 에피소드들이 모두 예산 부족과 시간에 쫓겨 스케일이 빈약해지면서 시청자들의 눈을 만족시키는데 실패했다.

최근에야 산만하던 주변 에피소드를 정리하고 고구려 건국을 앞두고 있는 주몽의 활약상에 스포트라이트를 맞추어 속도감을 회복했지만 초반만큼의 긴장감과 흥미는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드라마가 높은 인기를 끌자 60부작으로 예정된 기획을 무리하게 연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연개소문>, 주인공이 '연개소문' 맞아?

a SBS <연개소문>

SBS <연개소문> ⓒ SBS

'정통사극'을 표방한 SBS <연개소문>의 경우는 사정이 더 심각하다. 고구려 말기의 전쟁영웅 연개소문의 일대기를 다룬 이 작품은 제작 초기부터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민족주의' 정서를 내세운 사극을 표방했다고 하지만, 최근 <연개소문>의 극적 전개의 설득력이나 고증은 '정통 사극'이라는 간판이 민망할 정도다.


방대한 역사적 배경을 다룬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한반도와 중국을 쉴 새 없이 넘나들며 너무 많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한꺼번에 다루고 있어 방영 30회를 넘어선 지금도 산만한 느낌을 준다. 정작 극을 이끌어가야 할 청년 연개소문(이태곤)이 전혀 주인공 같지 않을 정도다.

시대극이라고는 해도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장된 인물 묘사나 역사 고증의 편향성도 문제다. 고구려에서 태어나 신라를 거쳐 중국을 넘나드는 연개소문의 파란만장한 청춘 무용담이 이제 역사적 재해석을 넘어서 환타지의 단계로 들어선 것은 오래된 일이다. 또 수나라 쪽 에피소드를 이끌고 있는 수 문제(김성겸)나 양제(김갑수), 독고황후(정동숙) 등은 하나같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희화화된 인물로만 그려진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고구려 쪽의 인물들이 대체로 영웅적이고 진지한 '어른'의 모습이라면, 그 반대편에 놓여있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좀 미숙하거나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철없는 '아이'같다는 인상을 줄 정도다.

캐릭터간의 지나친 양극화,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에피소드들, 부실한 멜로 라인과 젊은 배우들의 미흡한 연기 등은 전혀 다른 성격의 드라마들을 마구잡이로 붙여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오히려 극 초반에 보여줬던 안시성 전투 장면의 집중력이나 유동근-서인석같은 중견배우들의 카리스마가 더 그립다.

인기사극들, 초심으로 돌아가야

이것은 비단 <주몽>과 <연개소문>뿐만이 아니라 최근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고 있는 '사극붐'에서 필연적으로 극복하고 넘어가야할 부분이기도 한다. 후발주자인 KBS <대조영>이나 내년 방영을 앞두고 있는 <태왕사신기>도 이런 문제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대극의 경우 역사적 고증이나 스케일에서 좀더 정교한 완성도를 필요로 한다. 눈앞의 시청률에 밀려 널뛰기를 반복하는 극 전개와 촉박한 제작일정의 어려움은 사전제작제도의 비중을 높여야하는 필요성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드라마가 초기의 기획의도대로 마지막까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에 달려있다. 좋은 기획의도로 공들여 만든 작품들이 한순간에 '역사 코미디'나 '시트콤 사극'으로 전락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