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훈련 왜 하는지 짜증나 죽겠어요"

[체험기] 추위에 떨어야 했던 예비군 4년차의 동원훈련

등록 2006.10.26 15:10수정 2006.10.2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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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새벽 가방 하나 들고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10월의 새벽이라…. 단풍놀이 가느냐고? 땡! 아니다. 버스에 올라탄 사람들은 모두 남자. 그것도 칙칙한 군복을 입고, 얼굴 표정은 군복보다 몇 배 더 칙칙했다.

올해로 예비군 4년차. 지난달 어김없이 동원 예비군 훈련 통지서가 집으로 날아왔다. 지난번 동원훈련을 끝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동원만은 안 가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뭐 뾰족한 수가 없었다. 어디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회사에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는 수밖에.

변함없는 군대 내무반과 입에 안 맞는 짬밥

신병들의 사격 훈련 모습(자료사진). 국방홍보원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경기도 의정부 인근의 모 부대. 4백 여명의 예비군 아저씨들이 연병장에 가득했다. "비는 왜 그치고 XX이야" 전날까지만 오고 그쳐버린 비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XX 춥다", "바람 XX 부네" 뚝 떨어진 기온에 칼바람이 부는 날씨를 걱정하는 정겨운(?) 이야기 소리도 흘러나왔다.

우선 총을 받고 내무반 배정을 받았다. 변함없는 우리 내무반. 침상은 두 개. 열 댓명씩 옹기종기 모여서 자야하는 침상에는 벌써 '전우'들이 시체처럼 뻗어 있었다. "우리나라 군대 내무반은 특허 받았나봐, 바뀌지도 않네." 누운 채로 투덜대는 한 아저씨 옆에 나도 누웠다. 막사 지을 돈이 없는 건가, 개인 생활 없는 단체 내무반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2중대 식사 집합 하십시오."

빨간 모자를 쓴 조교가 내무반에 들어와서 외쳤다. 흐느적 거리면서 일어난 우리 예비군들은 식판을 들고 식당으로 향했다. 힘차게 식당으로 들어갔지만 모두들 금방 나온다. 찐밥에 대량으로 만든 반찬이 입에 맞을 리가 없다. '짬밥'을 과감히 '짬'시키고 식당을 나온 예비군들은 식판을 들고 PX로 향했다. 아저씨들은 식판에 소시지, 육포, 과자, 음료수를 가득 담고 내무반으로 돌아와 허기진 배를 채웠다.

입소식을 마치고 시작된 본격적인 훈련. 첫 교육은 사격이다. 각자의 총으로 9발을 쏜다. 2박 3일 받는 훈련 중 제일 훈련다운 훈련이다. 교관의 명령에 맞춰 20~30m 앞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탄피 수거와 안전검사는 조교들이 도와준다. 하지만 흠이 있다면 한 번의 사격을 위해 2시간 정도를 멍하니 앉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휴대폰에 재미있는 게임이 깔려 있지 않은 예비군, 비흡연자 예비군, 아는 사람 없는 예비군에게는 고통의 시간이다. 불행히도 나는 이 세 가지에 다 해당됐다. 이 법칙은 훈련 기간 내내 적용됐다.

저녁에는 안보교육이 있었다. 지붕만 있는 야외 강의장에서 30인치 정도 되는 TV 두 개로 안보 관련 비디오를 틀어 주는 것이 전부다. 뒤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TV 화면에는 지난해, 지지난해에 봤던 비디오가 또다시 방영되고 있었다. 정말 철저한 '반복식' 안보교육이다.

칼바람에 매트리스와 모포 두 장... "감기 걸리지 않게 유의해서 훈련에 임하시길"

군대 내무실 모습(자료사진). 국방홍보원


밤이 되자 바람이 더 세졌다. 기온은 예비군 체감 온도로는 영하인 게 분명했다. 침상에 배정된 것은 매트리스와 모포 두 장. 한 아저씨가 조교를 급히 찾았다.

"야, 여기 침낭 없냐?", "없습니다."
"얼어 죽으라는 거야?", "원래 침낭 안 나옵니다."
"여기 난방도 안 되잖아." "예."

예비군의 고함에도 쫄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하는 조교. 정말 그랬다. 가을 훈련에 침낭은 초대받지 못했고, 슬레이트로 만들어진 내무반 건물에는 난방시설이 낄 자리는 안 보였다. TV도 없는 내무반에 더 이상 기대할 건 없어 보였다. 야외에서 지하수로 해야하는 세수는 뒷전으로 미루고 모두들 옷을 껴입기 시작했다. 운동복 위에 군복을 입고 양말을 신고 모포를 뒤집어썼다.

그래도 추웠다. "XX 얼어 죽겠네", "XX 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욕설이 여기 저기서 들렸다. 아까 입소식에서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감기 걸리지 않게 유의해서 훈련에 임하시길 바랍니다"라는 연대장의 인사말이 떠올랐다. 감기 걸리지 않게 유의하는 것은 어쨌든 예비군들의 몫이었다.

아무리 웅크려도 사라지지 않는 한기에 깨기를 몇 차례. 조교의 "선배님들 기상하십시오"라는 앙칼진 목소리가 오히려 반가웠다. 막힌 코를 들여마시고 굳은 어깨를 펴봤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저씨들의 얼굴도 죽을 상이다. 콧물을 훌쩍거리며 식판을 들고 식당으로 향하는 우리 모습이 측은했다.

하루 종일 각개전투, 수색, 매복 교육을 차례대로 받았다. 교육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무의미한 시간이었다. 이름만 다를 뿐 총을 메고 뒷산 한 번 올라갔다 내려오면 끝인 교육이다. 아니, 끝은 아니다. 다른 중대 예비군들이 내려올 때까지 안보교육 비디오를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생산적인 교육 없는 예비군 훈련은 없애는 게 낫다

예비군들이 쓰는 전역마크가 달린 전투모. 사진 박주형


또 하룻밤을 떨면서 지새운 예비군들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집에 가는 날을 맞았다. 총을 반납하고 짐을 쌌다. 옆에 있던 한 아저씨가 몇 년차냐고 물어봤다. 4년차라고 대답했더니 무척 부러워했다. 자기는 내년에 또 와야 한다면서.

"예비군 훈련 왜 하는지 짜증 나 죽겠어요, 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고 노는 것도 아니고…."

옆에서 코를 훌쩍거리며 빵을 먹고 있던 아저씨도 거들었다.

"인내심 키우는 거지 뭐, 담배만 XX 피고 가네."

퇴소식이 끝나자 우리 예비군 아저씨들은 재빠르게 버스에 올라탔다.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우리 아저씨들. 지난날이 악몽 같았을까. 다들 눈을 감고 있었다.

버스에서 조교들만 남은 연병장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져봤다. 예비군 훈련을 왜 하는 것일까?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등 수많은 대답이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훈련이 수많은 대답의 정답은 아닐 것이다. 가족과 일터를 떠나온 대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안까운 시간이다. 좀 더 효율적이고 준비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2박 3일 동안 한 훈련은 불과 한나절이면 가능한 것이었다. 생산적인 교육이 불가능하다면 예비군 훈련은 없애는 게 낫다.

이번 훈련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감기와 간접흡연으로 생긴 두통뿐. 지금 군대에 있는 동생들, 앞으로 군대에 가야할 아들들이 또다시 우리와 같은 예비군 훈련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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