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3세대 작가의 화폭

포스트 96 세대, 루하오, 류칭허, 쩡하오의 전시를 가다

등록 2006.10.28 15:44수정 2006.10.2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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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작가의 세대 분류

중국 작가는 보통 3세대로 구분된다. 1세대는 1940년~1950년에 출생한 작가군이다. 1979년 중국의 정치적 대외개방은 외국 사조의 빠른 유입을 가져왔고 1980년대의 급진적 아방가르드 운동을 확산시켰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나 '정치를 위한 미술'의 구호를 깨고 표현의 폭이 개방되었다. 미술 전시회와 관련 잡지, 단체 등의 전반적 활동이 폭넓게 일어났다. '85신조류'로 명명되기도 한다.


2세대는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부터 1996년까지의 작가군이다. 6.4 톈안먼 사건은 중국 인민군이 시위대 100여만 명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한 피의 일요일로 유명하다. 개혁론자 후야오방의 사망 이후 그의 명예회복과 민주화를 요구하며 베이징 대학을 중심으로 시위가 번졌다. 계엄을 선포한 이후에도 시위대가 톈안문 광장에 민주의 여신상을 세우는 등 물러나지 않자 덩샤오핑은 이를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며 발포를 명했다.

절대권력의 횡포 앞에 무력감을 체험한 중국 예술가들은 이상주의적 초기 아방가르드 운동 대신에 냉소와 허무를 다루게 되었다. 이 시기를 미술평론가 리 시엔팅은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이라고 명명한다.

a 텐안문 시위를 보도한 <인민일보>

텐안문 시위를 보도한 <인민일보>

1996년 6월에는 반체제 지식인들이 모여 살던 원명원이 중국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것이 3세대 작가의 분수령이다. 자본주의의 유입과 함께 중국 미술계에서 반체제 의식을 읽어내려던 서구 예술계는 이 사태를 중국 인권 탄압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외국 미술관의 주목은 중국 미술을 서구에 알려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뿔뿔이 흩어져 개인적인 작업을 한 포스트 96세대 작가군은 장르와 형식 면면에서 보다 다양해진 실험을 시도한다. 이에 더하여 중국 경제가 안정적인 고도성장으로 진입함에 따라 3세대 작가의 작품은 풍성하게 다원화되었다.

최근에 각종 비엔날레와 미술관에서 중국 미술은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다. 작품 가격의 최고치를 기록하던 1세대 작가군 대신에 2세대 작가인 장샤오강이 최근 소더비 경매에서 최고가(한화로 9억여 원)를 갱신했다. 이에 반해 3세대 작가는 폭이 넓은 잠재력을 가진 반면 아직 가격대는 낮은 편이다.


널리 소개된 1,2,3세대 작가는 모두 중국이 빠르게 자본주의를 흡수하며 사회주의와 충돌하며 공존하던 때에, 서구에 중점적으로 알려진 중국 아방가르드 작가군이다. 이는 중국 현대미술의 일부이며 서구 미술계의 틀로 읽어낸 분류이다.

중국 미술이 중국의 인권상황을 비난하며 서구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거품'이라고 하는 비평도 존재한다. 미술계 외부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성장한 중국 미술이 한계를 딛고 발전해야 할 지점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한국 미술계, 중국을 만나다

한국에 소개된 중국 미술도 위의 흐름을 따라 들어왔다. 1992년 50여년의 단절을 깨고 외교관계가 복원된 이래 한국에서는 기획전의 형식으로 몇 년 전부터 그 가능성을 타진했다. 최근에는 직접 중국 현지에 갤러리를 오픈하는 등 적극적인 진출이 엿보인다.

중국 현대 미술의 주요 거점은 베이징과 상하이의 폐공장 지구이다. 철수한 공장 지대에 작업실과 갤러리가 들어서 집단 예술촌을 이룬다. 베이징의 따샨즈구에 위치한 798지역과 과거 술공장 지역이었던 지우창 지역, 상하이의 모간샨 공장 지역이 대표적인 예이다. 약 10년 전부터 서구에 중국 미술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의 대부분의 갤러리가 중국 미술시장의 미래를 예견한 서구 딜러들 중심으로 채워지고 있다.

a 베이징의 798 따샨즈(Dashanzi). 공장지대가 현재 예술지구로 바뀌었다

베이징의 798 따샨즈(Dashanzi). 공장지대가 현재 예술지구로 바뀌었다 ⓒ 798space 갤러리

한국갤러리 중에서는 이음 갤러리가 지난 해 처음으로 베이징 따샨즈지구 798지역에 오픈했다. 지우창 지역은 12월 갤러리 아라리오 베이징을 시작으로 문갤러리, 표화랑 베이징 등 한국표 갤러리들이 개관해서 벌써 3개의 화랑이 들어서 있다.

올해 중국 현대 미술은 각종 기획전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울 송현동 이화익 갤러리에서 루 샤오팡 전을, 소격동 아라리오 서울에서는 양광이 전을, 관훈동 아트사이드에서는 저춘야와 리우웨이 2인전에 이은 마리우밍의 사진 영상전을 열었다.

소격동 학고재 화랑에서는 지아유푸의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화동의 pkm갤러리는 장샤오강, 위에민쥔 등의 단체전을 열었다. 사간동 갤러리 선컨템포러리는 7월에 천웬보, 왕찌위엔, 루샤오판 등과 한국작가 4명의 그룹전 '브러시아워2'를 기획했다.

봄과 여름에 중국 현대 미술 1세대와 2세대 작가들이 집중적으로 소개되었다면 가을 현재 열리고 있는 전시에서는 3세대 작가를 소개한다. 갤러리 아라리오와 갤러리 인, 동산방 화랑에서 중국 3세대 작가로 손꼽히는 작가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각각 독특한 개성을 지닌 루하오와 쩡하오, 류칭허의 작품이다.

지금 열리는 3세대 작가의 전시 루하오, 쩡하오, 류칭허

a "Flower, Birds, Insects and Fishes"연작 시리즈 중 1

"Flower, Birds, Insects and Fishes"연작 시리즈 중 1 ⓒ 아라리오 서울

베이징 태생인 루하오(37)는 중국화를 전공한 이후 유화와 설치 미술 작업을 해왔다. 98년 북경에서 첫 전시를 하고 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두 번째 전시를 했다. 아라리오 서울에서 10월 18일부터 11월 12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은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를 두루 모았다.

2001년 이스탄불 비엔날레의 출품작인 'Marriage Bed'는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제작했지만 전통적인 소재인 연꽃을 띄워놓았다. 1999년 베니스 베인날레 이후 제작해온 'Flower, Birds, Insects and Fishes' 연작은 전통적이자 서민적인 중국화의 소재를 전통적인 중국 건축물에 겹쳐 그렸다. 전통적인 소재가 상상적으로 겹쳐진 가운데 유화라는 서구적 질료가 끼어든다. 최근작 'the Lost Home'시리즈는 재개발지구의 황폐함을 담아낸다.

a 류칭허의 작품

류칭허의 작품 ⓒ 동산방 화랑

서울 관훈동 동산방화랑에서는 류칭허(45)의 개인전 '수묵의 여운'을 마련했다. 10월 18일에서부터 11월 1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에서는 '산들 바람', '암류', '황해' 등의 근작 30여 점을 모았다.

베이징 중앙 미술학원의 중국학과 교수이자 레드 케이트 전속작가인 류칭허는 수묵담채의 기법을 고집한다. 물과 여성의 누드 등을 소재로 택하여 부드럽게 번지는 조화를 추구하지만, 한편 그 안의 여성들이 지닌 당돌한 눈빛은 개방된 중국이 맞닥뜨리는 현실인식을 재현한다. 호기심과 당혹감을 동시에 지니고 전통과 현대가 조우하는 순간이다.

a 쩡하오_13:10 pm, 26 June, 2003_캔버스에 유채_200×260cm_2004

쩡하오_13:10 pm, 26 June, 2003_캔버스에 유채_200×260cm_2004 ⓒ 갤러리 인

윈난성 태생인 쩡하오(43)는 베이징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작가이다. 1992년 광저우 비엔날레, 1999년 시카고 대학 미술관, 2000년 밀란 현대 미술 센터, 2002년 쌍파울로 비엔날레와 각종 국제 전시에 참여해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12:04, 5, March, 1999', '30, June, 2003' 등으로 제목이 특이하다. 제작 과정 중의 한 순간을 택해 제목을 정한다는 쩡하오는 은연중에 분 단위로 분절되는 현대 중국인의 삭막함과 불안감을 재현하고 있다.

2m에 달하는 큰 화폭에 시선이 엇갈린 사람들, 먹다 버린 음식물, 가구와 일상 소품이 원근감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의 작은 크기로 점처럼 떨어져 있다. 푸른 색 화폭에 담겨진 소비품들은 인간을 위로하는 것인지 더 외롭게 하는 것인지 관람객을 고민하게 만든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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