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릴적엔 명절에 상월정에 갔단다~

창평 용운동 풍경

등록 2006.10.29 16:37수정 2006.11.0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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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연휴에 시댁에서 명절을 쇠고 다음날 여동생네와 함께 고향인 담양군 창평면 용운동에 갔다. 이번에는 연휴가 길어서 남동생네를 만날 수 있었고 모처럼 고모 노릇도 하고 이야기를 조금 나누기도 했다. 미국 사는 막내 남동생은 전화로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고, 제부는 마침 일직이라 같이 가지 못했다.

친정 엄마는 집에 있을테니 상월정에 오르고 내려 오는 길에 할머니 산소에 다녀오라고 하신다. 역시 행여나 이 딸내미들이 할머니 산소에 안 갈까봐 미리 선수를 치신다. 엄마는 평소에 "할머니가 느그들을 어떻게 길렀는데 산소에도 안 가냐?" 하시며 불만을 토로하시기도 했다. 안 가면 우리들에게 망할년들이라고 욕을 해댈 것이다.

미리 준비한 간식을 차에 싣고 상월정 쪽으로 올랐다. 산길은 걸어야 제맛이라 차를 중간에 놔두고 걸었다. 저수지에서 걸어서 이삼십분을 올라야 한다.

a 상월정에 오르기 전에 동네에서 바라본 월봉산

상월정에 오르기 전에 동네에서 바라본 월봉산 ⓒ 고병하

a 월봉산아래에 있는 저수지에서 내려다본 창평 들녘

월봉산아래에 있는 저수지에서 내려다본 창평 들녘 ⓒ 고병하


누렇게 익은 황금들녘을 보고 용운동 노인네들이 지난 여름 얼마나 고생스럽게 일을 하셨을까 하고 생각하니 코끝이 찡했다. 용운동도 다른 마을과 전혀 다르지 않다. 동네에 젊은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a 상월정으로 오르는 월봉산 산길

상월정으로 오르는 월봉산 산길 ⓒ 고병하

저수지에서부터 걸어서 올랐다. 아이들이 씩씩하게 잘 올랐다. 숲길을 걷다보니 기분이 좋아져 모처럼 여동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쁘게 살다보니 근처에 사는 여동생도 자주 못 만나고 산다.

a 상월정

상월정 ⓒ 고병하

상월정은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7호로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용수리 월봉산 가운데 자락에 있다. 이 정자는 고려 경종(916년)때 창건된 대자암의 절터인데 훗날에 폐사되었다고 한다. 조선 세조 때인 1457년 언양인(彦陽人) 추제 김자수가 벼슬을 사임하고 고향인 이곳에 돌아와 대자암 터에 상월정을 창건하였다.

그 후 정자가 낡아 1808년 연재, 초정 두 명이 이를 고쳐 지었고 1851년 신해년의 수재로 또다시 고재준, 고광조 등이 이를 보수하였다. 1858년에 월헌장이 서까래와 보를 수리하는 등 몇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외형적인 모습은 최근에 건립된 것처럼 새롭다. 이 정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지금도 고시생들이 기거하며 공부를 하고 있다. 사진에 검정색 차가 추석 연휴인데도 공부를 하고 있는 고시생 차다. 소란스럽게 해서 미안했지만, 명절이니까 이해해 주시겠지, 하는 마음에 잠시 머물다 왔다.

a 상월정 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상월정 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고병하

어릴 적에 상월정은 많은 고시 준비생들이 공부를 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공부해 법관이 된 사람들이 상당했다고 한다. 그 때는 이곳을 대잠이라고 불렀는데 고시생들의 식사와 기타 관리를 해주시는 분들을 대잠 할머니, 대잠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대잠 할아버지(지난 1985년 작고)는 고정석이라는 분이셨는데 일본에서 대학 공부를 하셨고 독립운동을 하셨던 공적을 인정받아 사후에 독립 유공자가 되신 분이시다.

어릴 적에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고시생들과 같이 걸어서 집에 가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그 때 그분들은 승복 바지를 입고 하얀 얼굴에 옆구리엔 두꺼운 책과 볼펜을 항상 들고 있었다. 시골 아이인 내게는 흰 피부의 고시생들이 엄청 대단한 공부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a 같이 상월정에 오른 기념으로 기념 사진 한컷

같이 상월정에 오른 기념으로 기념 사진 한컷 ⓒ 고병하

상월정 주변은 땅이 침식되어 마당도 좁아지고 옆에 있던 산딸기 나무도 흔적도 없다. 소풍가서 친구들과 놀았던 자리는 잡풀로 덮여서 그 때 그 흔적들을 찾기란 힘들었다.

일직인 제부를 빼고 우리 가족과 여동생 가족이 함께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다.

a 고시생들이 공부했던 토담집

고시생들이 공부했던 토담집 ⓒ 고병하

어릴 적 이 토담집에서 공부하던 고시생들이 책을 보여주기도 했고 좋은 이야기를 해줬던 기억이 새롭다.

a 고시생 뒷바라지를 했던 살림집

고시생 뒷바라지를 했던 살림집 ⓒ 고병하

대잠 할머니, 할아버지가 기거하시며 고시생 뒷바라지를 했던 집이다.

a 상월정에서 내려오는 길에 찍은 창평 들녘

상월정에서 내려오는 길에 찍은 창평 들녘 ⓒ 고병하

상월정을 내려오며 할머니 산소에 들려서 성묘를 했다. 가신 지 오래 되셨지만 내게 할머니라는 단어는 늘상 눈물이 줄줄 흐르게 하는 단어다. 언젠가 꿈에서 만난 할머니께 나는 막 소리를 질렀다 "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갔어?" 하면서 말이다. 할머니는 깨끗한 한복을 입고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사라지셨다.

할머니(소내댁)는 할아버지가 징용 가셔서 돌아가신 뒤로 혼자서 아들 키우며 사셨다. 23세에 혼자 되신 뒤로 우리 남매들을 위해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주셨다. 특히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학교에 오셔서 복도에 아예 앉아서 기다리시곤 했다. 어찌 그런 할머니를 잊을 수 있겠는가? 삼복 더위에도 내가 먹고 싶다는 것이 있으면 할머니는 바로 다 해주셨던 분이시다. 평생 종부로 사시며 제사를 모시다가 추운 겨울날 갑자기 가셨다.

a 내려와서 올려다 본 월봉산

내려와서 올려다 본 월봉산 ⓒ 고병하

남동생들은 성묘를 가야 하는데 가기 싫으면 저수지 방죽에서 산을 향해 한번에 성묘를 마치곤 했다. 집안 산소들이 거의 월봉산에 있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길에 죽마고우인 남자친구를 만났다. 남편은 얼른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반가워서 악수를 하고 한참을 이야기 하다 내려왔다.

이처럼 용운동 사람들은 틈이 나면 월봉산에 오르고 상월정에 들르고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면서 놀았다. 조금 아쉬운 것은 예전에 상월정에 오르던 소나무 숲길이 없어져서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동차로 주로 오르다 보니 걸어서 오르던 길이 없어진 것이다.

내려와서 상추를 뜯고, 호박을 따고, 무 잎을 뜯어 챙겨서 집에 왔다. 딸들은 친정가면 싸오기 바쁘다.

** 지난 10월 7일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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