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싸운다, 조국이 뒤에서 지켜달라"

[700만동포 아리랑-인터뷰] 사할린 한인정의복권재단 김복곤 회장

등록 2006.10.31 23:03수정 2006.11.0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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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재외동포NGO대회가 오는 24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장충동 성베네딕도회 피정의 집 등에서 열립니다. 지구촌동포연대(KIN)가 주최하고 <오마이뉴스>가 후원하는 이번 행사에서는 역사와 인권의 관점에서 각국 재외동포의 삶과 역사, 그리고 미래상을 한국정부와 시민사회가 올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각국 재외동포 사회의 현안에 대한 문제해결의 청사진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160여 민족이 살고 있다는 다민족 국가 러시아. 그 곳 사할린에는 한인들이 살고 있다. 바로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되거나 먹고 살기 위해 일시 이주했던 사할린 재외동포들.

일제가 패망하고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됐지만 그들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현재 파악된 사할린 동포는 4만3천여명 정도. 직접적인 가해자인 일본은 물론 우리 정부에게도 외면 받고 있는 상태다.

지난 27일 폐막한 제3회 재외동포NGO대회에 참가한 '사할린한인정의복권재단' 김복곤(61·한인 2세) 회장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사할린 재외동포 문제와 싸우고 있다. 그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싸움은 우리가 하겠다. 우리정부는 뒤에서 지켜만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6일 서울 장충동에 위치한 성베네딕도회 피정의 집에서 김복곤 회장을 만났다.

"누군가 죽어야 들어갈 수 있는 사할린 마을"

a 사할린한인정의복권재단 김복곤 회장.

사할린한인정의복권재단 김복곤 회장. ⓒ 나영준

- 사할린 한인들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1930년대부터 1945년까지 사할린으로 이주한 남부 지방 출신자들이 대다수다. 문제는 최초 이주시에는 사할린의 주인이 일본이었지만 1945년 이후에는 러시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귀환이 늦어지고 있는 근본 원인이며, 정체성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대부분 사할린 한인들은 탄광이나 국영농장, 건설노무자 등으로 일을 하며 어렵게 살아왔다."

- 사할린에는 한국어 방송도 있다고 들었다.
"러시아에 살고 있는 140여 민족 중 처음으로 모국어 방송인 KTV(Korean TV)가 생겼다. 고국을 그리워하는 노인들의 향수를 달래주고, 2·3세들에게는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재정난으로 2007년 이후에는 중단될 위기에 빠져 있다.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상황이다."


- '사할린한인정의복권재단'은 어떤 단체인가.
"일본은 종전 후 사할린 재외동포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지만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자신들은 법적 책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법적인 책임은 없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경기도 안산에 사할린 동포마을을 만들어줬다고 말하고 있다. 법적인 책임이 없는데 왜 그런 일을 하는가? 책임이 없다면 하지 말란 말이다.

정의복권재단은 현재 사할린의 한인 2·3세를 대상으로 고소장을 받고 있다. 궁극적으로 일본 정부가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 때문이다."


- 경기도 안산에 있는 사할린 마을 상황은 어떤가?
"2000년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500세대 규모인데 지금 그 곳에 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분들만 수천명을 헤아린다. 모두 30년대 전후에 태어난 1세대들이다. 이런 표현은 그렇지만, 누군가가 죽어야만 입주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같은 동포가 죽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 사할린 마을에 입주해도 가족과 떨어져 있어 외로움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사할린 마을에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은 1세대로 한정되어 있다.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결국 다시 한 번 가족들과 생이별하는 것이다. 노년에 그런 결정을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 분들 목적은 단 하나, 고국에 묻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할린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그리워 다시 돌아가거나 혹은 혼자 남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시는 분도 생겨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온전한 가족과의 영구귀국이 필요한 이유다."

- 사할린에 남아있는 1세대 한인 및 동포들의 상황은 어떤가.
"아무래도 고령이기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다. 그럼에도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텃밭에 야채를 가꾸고 그것을 시장에 내다팔고 있다. 사할린엔 일자리 부족이 심각하고 한인들에게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 때문에 자손들 보호 아래 편히 사는 것도 어렵다. 2·3세들은 친지방문비자를 받아 불법으로 한국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불법이기 때문에 낮은 임금을 감수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갈수록 뻔뻔해지고 있다"

a 재외동포들이 어울림 한마당을 가지며 모처럼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재외동포들이 어울림 한마당을 가지며 모처럼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 나영준

- 그간 일본을 상대로 벌인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1995년 사할린 한인 귀환 문제 등을 담은 21건의 고소장을 도쿄 최고재판소에 제기했다. 그러자 일본정부는 그 사실이 밖으로 알려질까봐 부랴부랴 '종전 50주년 기념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동안 사할린 한인문제를 연구해 오던 '국민간담회'라는 단체의 도움을 얻어 만들었기 때문에 내용이 충실했다. 거기에는 배상금 문제 등 우리가 원하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그 내용으로 사할린 한인대표단에게 재판을 초기할 것을 설득했기에 당시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이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일본이 갈수록 우익화되고 있어 사할린 재외동포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최근 일본의 한 간행물에 '안산의 사할린 마을에 북조선 동포들이 살고 있다'며 '왜 그런 일을 했느냐'고 일본 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이 실렸다. 일본은 시간이 지날수록 반성은커녕 오히려 뻔뻔해지고 있다. 때문에 법적인 절차를 밟아 지난 책임을 묻고 과거사를 정리해야 한다. 더 이상 늦출 수가 없다."

- 2005년 12월 30일 현 총리인 한명숙 의원이 사할린 동포관련 제정 법률안을 발의한 것으로 안다.
"영구귀국을 원하는 이들에 대해 귀환을 추진, 국내 정착에 도움을 주고 일본정부에 피해보상의 교섭추진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법안이다. 러시아 정부가 강제동원 보상 등 사할린 한인 문제를 일본에 직접 요구하기 힘든 현실에서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다."

- 한국 정부에 섭섭한 점은 없는지.
"정부도 나름대로 고민 중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모든 책임의 근원은 일본 정부에 있다. 현재 정의복권재단은 재판심리에 착수했다. 한인들의 고소장을 받아 정식 고소장을 작성하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험이 많은 일본 국제법률가가 필요하다.

또 재판을 하려면 자금도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십시일반으로 동포들이 모금운동에 동참해 주었다. 한국정부에서 도와준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어찌 됐건 앞에서 싸우는 것은 우리다. 조국은 뒤에서 동포들을 든든하게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사할린 한인영주귀국 및 보상문제에 관한 9개 항목 기본요구

'사할린 한인영주귀국 및 보상문제에 관한 9개 항목 기본요구'는 지난 1994년 5월 사할린 동포들이 일본 외부성에 보낸 것이다. 김복곤 회장은 작은 입장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사할린 동포들의 기본적인 요구라고 밝혔다.

- 1945년까지의 출생자들을 1세로 취급 보상할 것, 1946년 이후 출생자들은 2세로 취급해 보상할 것.

- 한국으로의 영주귀국은 연령을 기준으로 단계적으로 실시, 1938년 이전 출생자들을 우선적으로 귀국시켜 희망하는 가족과 동반 귀국할 수 있도록 조건을 조성할 것.

- 거주지는 본인이 희망하는 곳으로 개인소유의 주택을 보상하고 1세들에게는 사망할 때까지 생활비(치료비 포함)를 보상할 것, 이후 단계적으로 귀국하는 1938년 이후 출생자들에게도 같은 조건으로 생활을 보상할 것.

- 영주귀국자들의 소유재산을 모두 한국으로 가져가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고 연금생활자의 연금은 한국으로 보내도록 러시아정부에게 요구하는 것.

- 한국으로 영주귀국하지 않고 사할린에 계속 남는 것을 희망하는 한인들에게는 1인 1천만엔씩 보상할 것, 사할린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민족문화 재생을 위해 주 중앙도시에 민족학교와 문화센터를 건설하는 것을 러시아정부에게 요구할 것.

- 사할린 거주 한인들이 이중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러시아와 한국정부에게 요구할 것, 일제시대 강제 연행되어 사할린에 거주했지만 생활사정으로 러시아 본토에 이주한 한인들에게도 사할린한인들과 같은 조건으로 보상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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