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른 손가락 편지에 동봉... 일본 우익 테러 극심

[현장-재외동포 NGO대회]"지난 세월 인정해달라" 한목소리

등록 2006.10.26 15:56수정 2006.10.26 16:01
0
원고료로 응원
a 26일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에서 열린 제3회 재외동포 NGO대회.

26일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에서 열린 제3회 재외동포 NGO대회. ⓒ 나영준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 인간답게 살고 싶은 겁니다."

현순임(81·재일동포·재일코리안 고령자의 연근재판 원고단)씨.

사연을 읽어 내려가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했다. 지구촌동포연대(KIN, Korean International Network)가 주최하고 <오마이뉴스>가 후원하는 '제3회 재외동포NGO대회'(25~27일)의 첫 날. 중국, 러시아, 일본, 동남아, 유럽 등지에서 40여명의 동포 NGO 활동가들이 모여 들었다.

이들은 각 동포 사회의 형성 역사와 해외체류자로서 살아가는 실체적 삶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25일 오후 5시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에서 열린 '재일조선인 고령자, 장애인 무연금 문제' 발표장에서 마이크를 잡은 현순임씨의 삶은 '질곡의 강' 그 자체다.

고령자 제외 연금지금은 사실상 과거사 회피

a 현순임씨가 울먹이며 사연을 읽고 있다. 오른쪽은 '재일 무연금 문제를 생각하는 관동 네트워크 사무국'의 시바타 후미에씨.

현순임씨가 울먹이며 사연을 읽고 있다. 오른쪽은 '재일 무연금 문제를 생각하는 관동 네트워크 사무국'의 시바타 후미에씨. ⓒ 나영준

토지를 빼앗기고 세금까지 징수당해 온가족이 쫓기듯 일본으로 건너온 것은 그의 나이 1살 때였다. 석탄 운반작업을 하시던 아버지는 도둑이란 누명을 쓰고 회사에서 쫓겨났다. 결국 리어카에서 구운 감자를 팔았고, 그는 학교는 꿈도 꾸어보지 못하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어머니마저 공사장 막노동에 시달리다 일찍 돌아가셨다.

현씨의 남편 역시 다르지 않았다. 징용통지를 받고 현해탄을 건넜다. 무휴, 무월급에 늘 하늘이 노랄 정도로 배곯이를 했다고 한다.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이들끼리 고개를 기대고 결혼을 했지만 가난은 결코 그들을 떠나지 않았다.


현씨는 81살인 지금도 집에 기계를 들여놓고 허리띠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 때부터 해 온 일이다. "힘에 부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래도 그간 가족을 굶기지 않았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단다. 현씨는 지금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바로 연금 때문이다.

일본은 1959년부터 연금제도를 시행했다. 처음엔 국적조항이 있어서 재일외국인은 가입이 불가능했다. 82년 개정을 통해 국적조항을 철폐했다. 하지만 20세 미만의 이들에게만 연금을 지급했다.


86년에도 개정을 했지만 60세 이상 고령의 재일외국인은 또다시 무연금 이었다. 사실상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인들, 그중 1세대 고령자들을 의식한 것이다. 이는 결국 "과거사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태도라고 현씨는 말한다.

현씨는 일평생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살아왔는데도 왜 연금을 받을 수 없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울먹였다.

"한때는 '원래 그랬으니까'라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물러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억울합니다. 언제 어떻게 사라져도 사실상 아무 미련 없는 나이가 됐습니다. 돈 때문이 아닙니다.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오늘 내 민족, 내나라, 같은 동포들 앞에서 이런 심정을 말할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현씨를 비롯 소아마비 증세를 가진 이행굉씨등 재일동포들은 '그 나라에 사는 외국인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국제인권조약을 내세우며 "많은 일본 시민들조차 지지하는 우리의 요구를 일본정부는 외면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가락까지 잘라 보낸 일본 우익들의 테러

a 핵실험 이후 더욱 거세진 재일조선인에 핍박에 대해 설명하는 재일조선인역사연구소의 오규상 연구부장.

핵실험 이후 더욱 거세진 재일조선인에 핍박에 대해 설명하는 재일조선인역사연구소의 오규상 연구부장. ⓒ 나영준

한편 앞서 열린 발표회에서는 재일조선인역사연구소의 오규상 연구부장(58·재일교포 2세)이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 우익세력의 충격적인 행위에 대해 증언했다.

지난 16일, 일본 도쿄의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중앙본부에 편지가 한 통 배달됐다고 한다. 수신자는 총련 중앙상임위원회 서만술 의장. 무언가 이상한 감을 느낀 관계자들은 경찰 입회하에 편지를 개봉했고, 놀랍게도 그 안에는 잘려진 사람의 손가락이 들어 있었고 '天誅'(텐추: 하늘을 대신해 벌을 내린다)라는 글이 적힌 종이가 동봉되었다고 한다.

더욱 경악할 일은 그 당사자가 버젓이 편지에 자신의 집 주소를 써 놓았다는 것. 그간 조선인학교의 기물이 파손되거나 총련 지부 건물에 방화사건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누구의 소행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이번처럼 자신의 신원을 당당히 드러낸 일은 없었다고 한다.

오규상씨는 "이제는 재일조선인을 감싸는 발언을 한 정치권 인사들마저 보수우익으로부터 '좌파'로 내몰리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들은 "민단과 총련의 화합마저도 드러내놓고 방해한다, 도대체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분간이 안 가는 판국"이라고 털어 놓았다.

이외 조선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 대한 폭행과 폭언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라며 일본정부는 앞으로 북한에 보내는 소포까지 일일이 개봉하겠다고 공공연히 공언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이런 압박 상황은 북의 핵실험 이후 더욱 노골적이 됐지만 이 문제는 북·일간 수교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며 말을 맺었다.

"사실상 부시정부가 등장한 이후 일본의 우익들이 기세등등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조일수교를 하여야 일본도 아시아에서 발언권이 생기며 동북아시아에서 제자리를 차지하게 된다고 본다. 이와 함께 재일조선인이 당하는 여러 불이익은 일본헌법 정신으로 보나 국제법상으로 보나 심각한 문제가 많다. 국가적 차원, 민간차원 그리고 재일동포자신의 힘과 일본인들의 협력을 통해 다각적, 입체적 노력을 기울여 반드시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