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소멸'에 고민하는 '재중동포사회'

[700만 재외동포 아리랑-중국편②] 홍건영 <연변통신> 편집국장 기고

등록 2006.10.25 15:50수정 2006.10.2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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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재외동포NGO대회가 오는 24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장충동 성베네딕도회 피정의 집 등에서 열립니다. 지구촌동포연대(KIN)가 주최하고 <오마이뉴스>가 후원하는 이번 행사에서는 역사와 인권의 관점에서 각국 재외동포의 삶과 역사 그리고 미래상을 한국정부와 시민사회가 올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각국 재외동포 사회의 현안에 대한 문제해결의 청사진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와 지구촌동포연대는 이번 행사를 전후해 '7백만 재외동포 아리랑'이란 제목의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a 청도 빈하구 이촌 지역의 밀집한 조선족 상가들

청도 빈하구 이촌 지역의 밀집한 조선족 상가들 ⓒ 연변통신

간단한 통계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좋겠다. 2000년에 시행된 전 중국 인구통계조사에 따르면 재중동포의 수는 모두 189만명, 연변 자치주는 84만 명으로 10년 전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 수치에는 거품이 많다.

호구를 중국에 그대로 둔 채 한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기약없는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동포들이 상당수 되며 현재는 그 수가 40만명 가까이 된다. 게다가 40~50만명의 재중동포가 대대로 살아오던 중국 동북 3성 농촌지역을 떠나 중국 내 대도시와 연해도시로 이주했다.

간단히 말해, 중국의 개혁개방과 '코리안드림' 열풍이 불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5여 년 사이에 40% 이상의 동포들이 삶의 터전을 옮겼다는 이야기가 된다. 참으로 역동적이고 숨가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떠나는 동포들, 여성들의 '대탈출'

동포들의 삶의 터전은 농촌에서 도시로, 중국 동북 지역에서 대도시와 연해지역, 그리고 해외로 옮겨가고 있으며, 그에 따라 생업의 변화 역시 무척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공동체 해체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 됐다.

동포사회의 인구 변화 가운데 가장 심각한 부분은 젊은 여성들의 거대한 '공동체 엑소더스' 현상과 그로 인한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다. 한중수교 이래로 동포사회의 가임 여성 6만명 이상이 국제결혼을 해서 한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으며, 농촌지역에서는 이미 대탈출을 완료했다고 봐야 한다.

여기에 더해 한 자녀 갖기 풍조가 만연됨에 따라 신생아의 숫자가 10년 전에 비해 1/4 정도로 줄어들었다. 2002년경 연변 자치주 정부가 이를 '인구의 기형적인 감소 현상'으로 규정하고 특별 정책을 수립하기로 했다고는 하지만, 자치주 정부의 능력을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동포사회의 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동포사회 자체가 결코 완만하지 않은 속도로 소멸하고 있다는 엄연한 인구통계학적 사실 앞에서 동포사회의 고민은 깊다.

더 큰 시름은 인구 감소의 추세를 반전시킬 계기가 좀처럼 찾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젊은 여성과 아이가 없는 사회를 두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건 공허할 뿐이다.


아이가 없으니 학교가 문닫고, 학교가 없으니 한족학교로

a 청도 이촌2 : 청도 빈하구 이촌 지역의 직업소개소가 가득 들어찬 건물 내부 모습. 이곳에서 일상적으로 재중동포와 한국인 사이의 고용관계가 성사된다.

청도 이촌2 : 청도 빈하구 이촌 지역의 직업소개소가 가득 들어찬 건물 내부 모습. 이곳에서 일상적으로 재중동포와 한국인 사이의 고용관계가 성사된다. ⓒ 연변통신

a 중국 산해관 이남에서 유일한 조선족 정식 학교인 청도조선족학교(교장 김장웅)

중국 산해관 이남에서 유일한 조선족 정식 학교인 청도조선족학교(교장 김장웅) ⓒ 연변통신

민족 집단의 정체성 상실과 주류민족에 대한 동화는 곧 동포사회의 해체와 소멸을 뜻하기에 민족교육의 위기가 더 본질적일지 모른다. 민족의 역사와 언어 교육은 어떠할까?

중화민족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동포들로서 주체적인 민족역사 교육은 언감생심이라 쳐도 '중국조선족'의 역사교육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다 양보하더라도, 우리말 교육마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어 참으로 문제다.

농촌지역에 인구가 줄고 아이가 없으니 민족학교가 문을 닫고, 거꾸로 주변에 민족학교가 없으니 아이를 한족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는 악순환은 가속도가 붙어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

도시라고 해도 사정이 썩 좋은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살려면 중국말을 잘 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동포 사회 학부모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으면서, 동포사회의 대표적인 집거지인 연변에서마저도 민족학교 대신 한족학교로 진학하는 자녀들이 상당수 생겨났다.

심지어 우리말 교육의 진지 역할을 해오던 민족학교에서도 그러한 현실론에 밀려 '이중언어교육'이란 이름으로 우리말 교육의 기회를 한어 교육에 상당 부분 넘겨줄지도 모를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동포들의 새로운 집거구로 떠오르고 있는 대도시와 연해지구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수십만명 동포들이 이 지역에 살고 있지만 산해관 이남에 재중동포를 위한 정식학교는 청도조선족학교 한 군데 뿐이다. 동포 자녀들에게는 한족학교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따라서 민족교육은 전무한 형편이다.

이 지역에 민족학교를 세울 수 없는 이유는 중국의 소수민족자치제가 원래의 소수민족 집거지에 대해서만 소수민족의 권리를 허용하는 구역자치제이기 때문이다(청도학교는 예외적인 경우다).

정식학교는 아니더라도,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해 동포 자녀들에게 우리말만이라도 가르쳐주는 한글교실 수준의 학교라도 꼭 필요한 실정이다. 북경의 장백학교, 천진의 샛별학교 등이 그 때문에 설립되었지만, 그나마도 모두 운영난을 겪고 있다.

학교 대신 가정이 우리말 교육을 할 만한 사정도 못 된다. 우리말 교육을 등한시하는 부모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나가다간 동포사회와 고국을 이어주는 우리말이라는 유일한 끈마저 곧 끊어질지 모른다. 그나마 한국의 위성 TV 채널과 한류문화가 제한된 범위 내에서나마 어린 세대의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유지시켜주고 있는 정도랄까.

중국 진출 한국인 40만 명 넘어서

a 조선족소학교에서의 한글 교육의 실례

조선족소학교에서의 한글 교육의 실례 ⓒ 연변통신

@재중동포 사회의 젊은 여성들이 나서 자란 고향을 떠나고, 학부모들이 우리말 교육을 포기하는 것은 결국 중국의 개혁개방 시기의 변화된 사회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봐야 한다.

소수민족으로서 집단적인 자구 수단이 거의 없는 작은 규모의 동포사회는 더 이상 미래를 의탁할 수 없는 틀로 여겨졌을 수 있다. 동포들에게는 시장경제 사회에서 어떻게 각자도생(各自圖生)할 것인가가 일차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으며, 그 핵심은 물론 경제적인 활로이다. 어쩌면 민족 정체성 문제도 이런 실제 문제 앞에서는 부차적일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대체로 두 가지 선택이 있는 것 같다. 주류사회에 보다 적극적으로 적응하든가 아니면 '코리안드림'으로 승부를 걸어보든가 말이다(물론, 최근에는 미국·일본·호주 등 선진국으로의 출국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상대적으로 소수이지만 동포사회에서 어느 정도 안정된 지위와 배경을 갖춘 부류는 대개 첫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반면 대다수에 해당하는 농촌 출신자·실직자·도시 서민 계층은 주로 한국 등 선진 외국으로의 이주노동자가 되거나, 혹은 연해도시로 이주하여 중국 진출 한국 교민들과 어울려 코리안 타운을 형성해 살아가고 있는데, 이 경우도 넓은 의미의 코리안드림으로 봐도 되겠다.

한국이 재중동포 사회에 궁극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아직 합의된 인식에 이르지 못했지만, 동포사회의 경제적 활로를 위해 점점 더 필수불가결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재한 동포노무자들의 외화 송금이 직접 연변 경제를 떠받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40~50만 명에 달하는 동포들이 중국 내 대도시와 연해도시의 코리아타운에 삶의 기반을 두고 있다. 현재로서는 누가 한국을 도외시한 동포사회의 발전 전략을 내온다 하더라도, 그건 소설에 불과할 것이다.

중국 내 코리아타운에서 살아가는 두 민족집단 사이에 우여곡절과 불화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상호 의존성과 화학적 결합 역시 늘어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중국 진출 한국인의 수가 이미 40만 명을 넘어섰고, 2008년경에는 100만에 도달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도합 200만에 달하는 새로운 재중동포 사회(한국 교민과 원래의 재중동포로 구성되는)가 형성될 것이란 이야기인데, 이 민족집단이 현재 재중동포사회의 해체와 소멸 우려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건 현재로서는 두 민족집단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어떻게든 서로 민족적 결합을 이루어내고 실제상의 윈윈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꼭 필요하다.

새로운 시도, 집중촌 건설 운동

a 조선족 최대집중촌 만융촌 모습

조선족 최대집중촌 만융촌 모습 ⓒ 료녕조선문보

시장사회에 적응하고 민족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재중동포 사회가 자체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참으로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문제 해결을 위한 구심과 역량이 좀처럼 형성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 무척 답답하다.

원래 운신의 폭이 좁은 자치주 정부는 그렇다 쳐도, 민간의 엘리트들도 '조선족의 현실'을 공론화하고 힘을 모으는 데 왠지 문제의 절박성에 비해 굼뜬 모습이다. 아마도 그들의 역량에 큰 기대를 걸 수 없을 것 같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포사회에서 민족언어와 공동체 지키기·새로운 경제활로 모색과 같은 장원한 관점에서의 굵직굵직한 과제 해결은 둘째 치고, 개혁개방의 여파와 수많은 가정의 장기간의 파행적인 한국 나들이로 인한 가족 윤리의 붕괴·만연한 아노미 현상과 같은 시급한 사회문제 해결도 힘겨워 보인다.

무엇보다 가정 붕괴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 자녀가 될 수밖에 없어, 동포 사회의 미래에 더욱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a 민들레촌 방문객에게 생태종합단지 건설 구상을 설명하고 있는 리동춘 회장

민들레촌 방문객에게 생태종합단지 건설 구상을 설명하고 있는 리동춘 회장 ⓒ 연변통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노래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우직한 실천이 없는 건 아니다. 동포사회의 여론주도층 사이에 수년 전부터 논의가 활발하고 펼쳐지고 있고, 실제로도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집중촌 건설 운동'이 한 예다.

도시화와 산업화의 사회 변화에 따라 주류사회 속으로 점점이 흩어질 수밖에 없는 재중동포를 불러모아 경제단위로서 집중촌을 건설하겠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민족문화의 계승과 보존이라는 과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흑룡강성 해림시 신합촌과 목단강시 강남촌·길림성의 아라디촌·료녕성 심양시 근교의 만융촌과 화원신촌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만융촌의 경우 75만㎦ 면적에 상주인구 5만5천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단지를 이루고 있다.

집중촌 건설은 의욕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립경제의 성공적인 모델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만융촌의 경우 최근 한국 기업 유치를 목표로 '심양만융경제구'를 출범시키는 특별한 방안을 냈는데, 그 때문에 집중촌의 일반 모델이 되기엔 곤란한 점이 있다. 하지만, 어쨌든 집중촌 건설은 각기 특수한 조건에 따라 특수한 전술을 채택하여야 하는 만큼, 그 최종 성공 여부는 좀더 기다려 봐야 알 것 같다.

한국정부, 동포 포용 및 지원 정책 써야

a 민들레촌  입구

민들레촌 입구 ⓒ 연변통신

또다른 주목할 만한 시도는 코리안차이니즈 닷컴 리동춘 회장이 주도하고 있는 생태공동체 건설 운동이다. 작년부터 연길시 의란향 두레마을 옆에 민들레촌이라는 생태 연구단지를 앉힌 리동춘 회장은 생산·생활·문화오락·레저산업이 일체화한 생태산업기지를 건설하여 재중동포를 위한 생태공동체 모델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동포사회가 언제까지나 한국 노무송출에 의존하고 있을 수는 없으며, 한국에서 돈을 벌고 있는 동포들도 언젠가는 중국으로 되돌아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어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고부가가치를 낳는 생태농업을 통한 농업의 부흥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다소 이상주의적인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조상들이 피땀으로 일구어 놓은 농토와 고향을 지켜야 하는 민족사회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하는 동시에, 21세기형 동포사회의 새로운 생존모델을 창출하는 꿈도 실현하는 셈이다.

결국 동포사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지만, 옆에서 도울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동포들의 절박한 요구에 부응하는 정책, 구체적으로 자유로운 고국왕래 허용은 동포들의 국내 불법체류로 인한 동포사회의 온갖 부조리를 상당 부분 해결하는 동시에 동포사회의 경제를 일정하게 부축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중국 내 대도시, 연해도시의 코리아타운에서 한국교민사회와 재중동포사회가 적극적인 협력의 물꼬만 튼다면 동포들의 경제에 적잖은 도움이 되며, 동포 자녀들의 우리말 교육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길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한중관계 갈등이란 구실 뒤에 숨어 동포사회의 해체와 붕괴를 방관하지 않고 민간과 함께 적극적인 동포 포용 및 지원 정책을 쓴다면, 동포사회의 경제적인 활로 개척과 함께 민족 정체성 확립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지금은 상황이 암담해 보여도 재중동포사회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갑작스럽게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개방이 바로 그것인데, 여기다 한-러 철로 연결까지 성사되면 연변을 비롯한 동포사회는 그 지리적인 이점으로 인해 비약적인 경제발전의 혜택을 톡톡히 누릴 수 있게 된다.

사실 동포사회는 이 가능성에 적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다. 물론 새롭게 전개될 동북아시대를 대비해 동포사회 스스로 준비해야겠지만, 고국으로서도 장래의 특별한 동반자와 지금부터 협력의 연습을 해두는 게 현명한 준비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홍건영 편집국장이 썼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홍건영 편집국장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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