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땅에 '조선학교' 일궈냈지만

[700만 재외동포 아리랑-일본편②] 민족학교 만든 동포들

등록 2006.10.18 12:09수정 2006.10.2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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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가다와 조선학교 문제 대책회의

지난 8월 30일, 2016년 올림픽 유치를 위한 일본 국내후보지가 도쿄로 결정됐다. 같은 날 이시하라 도쿄 도지사는 내년(2007년) 봄에 있을 차기 지사 선거에도 출마 할 것을 선언했다. 출마 이유는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1964년 도쿄에서 올림픽이 개최된 바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그러나 1940년에도 올림픽 개최 예정지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IOC총회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이은 다음 올림픽 개최지를 도쿄로 결정했다.

일본은 이런 IOC의 결정을 받아 도쿄의 한 해안지역을 올림픽 대회 장소로 결정했는데, 그 곳에선 가난한 조선 사람들이 오두막을 짓고 부락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이후 도쿄도는 그 곳에 살고 있던 1000명 이상의 조선인들을 '에다가와'란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켜 화장실과 부엌·방을 구분할 수 없는 간이주택을 짓고 수용시켰다. 1941년의 일이다.

당시 1940년 도쿄 올림픽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취소됐다. 하지만 도쿄도는 에다가와로의 조선인 강제이주를 그대로 집행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척박한 '에다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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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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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현

에다가와 지역은 도쿄도만의 매립지이며 쓰레기소각장과 소독장 밖에 없는 황무지였다. 큰 비가 내릴 때면 주택은 항상 침수됐고 공동화장실의 오수가 길가로 흘러 넘쳤다. 식사를 할 때는 파리가 모여들어 밥이 파리로 덮여 새까맣게 됐다고 한다. 즉, 에다가와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해방 후 도쿄도는 에다가와 지역의 행정관리를 포기한다. 행정상 방치 상태가 지속된 에다가와 지역에서 조선인들은 힘을 합쳐 길과 하수도·도시가스 등의 주택환경을 개선해 왔다. 물론 교육도 마찬가지.

해방이 되자마자 에다가와에 사는 동포들은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쳐야 한다는 일념으로 민족교육에 모든 힘을 쏟기 시작했다.


장소는 식민지시기 간이주택에 사는 조선 사람들을 감시하고 동시에 황국신민화정책을 실시하기 위한 거점이었던 '림보관'.

림보관은 유화단체인 '협화회(協和會)'가 운영했던 시설이다. 동포들은 황국신민화 정책의 상징적 시설을 이용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했던 것이다. 이것이 에다가와 조선학교(정식 명칭은 도쿄제2조선초급학교)이다.   

에다가와 지역의 동포사회와 에다가와 조선학교는 이러한 역사적인 경위로 탄생했다. 이는 다시 말해 에다가와 지역이 해방 후 일정한 기간 동안 조선인자치구와 같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등기상 토지의 소유는 도쿄도의 것이었다.

2003년 가을, 돌연 태도를 바꾼 '도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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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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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현

오랜 기간에 걸친 토지에 대한 교섭결과 1990년대 후반, 주민들은 주택 등으로 쓰고 있던 땅을 도쿄도로부터 싼 값에 불하받았다. 이는 도쿄도도 그 지역에 역사적 경위를 무시하지 못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주민들의 토지 문제가 해결된 후 협상을 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던 학교에 대해 도쿄도가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다. 2003년말의 일이다.

에다가와 학교는 1970년대 초 당시 도쿄도지사였던 이노베씨가 무료로 운동장 일부를 빌려주는 것을 결정, 도쿄도와 학교 사이에 계약이 맺어지게 된 것.

동 계약에서는 행정 측의 사정으로 일단 20년 동안 무상으로 임대해주고 계약기간이 만료된 후에도 '계속 사용할 필요가 있을 경우 협의, 선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편의상 20년이라고 했을 뿐 실제로는 학교가 있는 한 무료로 빌려준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맺어진 약속이었다.

이에 학교 측은 계약기간이 일단 만료된 1990년대 이후에도 계속 무료로 임대를 받던가 아니면 싸게 매각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도 있었으며 도쿄도 또한 처음부터 싼 값에매각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인식을 기본 바탕으로 서로가 교섭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3년 가을, 도쿄도가 돌연 태도를 바꿨다. 무조건 임대료를 지불하던가 아니면 땅을 반환하라는 것. 도저히 학교측에선 받아들일 순 없는 요구를 해왔던 것이다. 여기에 임대료도 도가 일반회사나 공장에 빌려주는 것과 동일한 금액을 요구했으며, 일본의 정규학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학교로서의 감면조치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태도 돌변, 도민 한 명의 '행정감사청구'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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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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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현

도쿄도는 에다가와 조선학교에 특별대우를 한다고 어떤 도민이 문제 제기한 '행정감사청구'가 있었다는 것이 소송의 이유라고 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에다가와 지역과 학교의 역사적 관계 그리고 학교측과의 교섭 경위를 잘 아는 도쿄도가 하나의 감사청구를 이유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에다가와 조선학교에 대한 재판은 일본사회의 우경화, 특히 망언을 거듭하는 이시하라 지사가 군림하는 도쿄도의 정책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그만큼 에다가와 조선학교 문제는 심각하다. 하지만 조선학교 관계자, 에다가와 주민들은 절망감에만 쌓여 있지는 않다. 재판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에다가와 조선학교에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만큼 에다가와 조선학교 재판 문제가 일본 사회를 보여주는 중요한 하나의 상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적지 않은 일본사람들은 에다가와 조선학교 재판문제는 일본사회의 가치가 추궁당하는 문제라고 생각해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들은 2004년 '에다가와 학교지원연락회'를 결성해 에다가와 콘서트 등의 문화공연, 학교지원과 여론 환기를 위한 각종 행사를 조직해 올해 6월에는 1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참가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응원하는 모임'을 기획, 성공시켰다. 또 2005년부터는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 도민기금'을 만들어 올해 9월에는 도민기금에서 모은 돈으로 학교버스용 자동차를 기증하기도 하였다.

일본의 신문, TV 등도 에다가와 조선학교 재판 문제를 상세하게 취재했으며 내용도 호의적이었다. 그리고 일본 못지않게 한국의 매스컴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주요 방송국의 뉴스·시사 프로그램을 포함 신문·잡지 등에서 많이 보도했는데, 그 효과 때문인지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찾아오고 있다.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송현진 교장에 의하면 그 인원수가 이제 1200명을 넘었다고 한다. 불과 60여명의 학생들이 다니는 작은 학교에 그 20배가 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찾아왔다는 것이다.

한국의 관심으로 힘을 얻고 있는 에다가와 조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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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현

한국에서 이만큼 조선학교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것은 10년 전까지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회가 학교 관계자와 주민들에게는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고 꼭 통일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현실적으로 접하는 계기가 된 듯하다. 이는 한국에서 조선학교를 방문한 많은 사람들도 느끼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한국에서 에다가와 조선학교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작년 7월 서울에서 결성된 '에다가와 조선학교 문제 대책회의'이다. 이 지원단체가 한국사회에서 에다가와 조선학교문제에 대해서 정렬적인 홍보사업을 해준 결과로서 이렇게 관심이 높아졌다.

송현진 교장은 "한국에서의 지원은 정말 뜻밖이었다"며 "그만큼 기쁘게 생각하고 있으며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정말 기쁘게 여기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도 재판심의가 계속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도쿄도 측에서는 '조선학교는 정규 학교가 아니기에 운동장은 필요없다'는 주장까지 서면으로 제출해 놓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일본국립대학들도 조선학교에 입학자격을 인정하고 있듯, 조선학교가 일본학교와 동등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단, 일본학교교육법상 정규학교가 되려면 현행법상 '일본교과서를 사용해야 하며 일본어로 교육을 해야 한다'고 명시되어있어 우리말과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존재하는 조선학교로써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 재판은 에다가와 지역에 상징되는 쓰라린 우리 민족의 역사, 그리고 우리 민족교육의 권리를 일본 사법이 어떻게 판단하는가가 결정되는 만큼 주목할 만 하다.

재판소는 양심에 어긋나는 판단을 해서는 안 되며 도쿄도는 소송을 하루빨리 취하해야 한다. 그리고 올림픽 유치와 관련해서 생긴 조선인 거주구의 작은 민족학교마저 없애려는 도쿄도와 이시하라 도지사가 평화적이며 국제적 행사인 올림픽 유치를 운운할 자격이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일본 내 인권단체에 관계하는 김모씨가 썼습니다. 기고자의 실명을 밝히는 데 어려움이 있어 익명 처리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일본 내 인권단체에 관계하는 김모씨가 썼습니다. 기고자의 실명을 밝히는 데 어려움이 있어 익명 처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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