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꼽으라면? 막상 그런 질문을 받으면 대략 난감해지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평소에는 너무 많아 손에 꼽으라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었는데, 말이다. 이래서 '멍석을 깔아주면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아주 자랑스럽게 어떻게 보면 뻔뻔할 수도 있게, 자신이 좋아는 55가지를 모아 책을 만든 이가 있다. 그림도 되고 글도 되는 작가 이우일. 평소 자유분방하며, 재기발랄한 이우일 다운 책 한 권을 내놓았다.
이 책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다시 보다가 착안했다고 한다.
"장미 위의 빗방울, 아기 고양이의 수염/반짝이는 구리 주전자, 따뜻한 울 벙어리장갑… 개에게 물렸을 때/벌에게 쏘였을 때/기분이 나쁠 때/난 내가 좋아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그럼 난 금세 기분이 좋아져"
이 책은 이렇게 해서 '마이 페이버릿 싱스(My Favorite Things)'라는 부제를 달고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담긴 이 책은 그러한 한계를 가지고도 충분히 독자들로 하여금 몰입할 수 있게 만든 이 책은 <옥수수빵파랑>. 제목부터 뭔가 구린 냄새가 나지 않는가? 도통 읽기 전까지 무엇을 지칭하는지 알 수없는 이 외계어는 딱! 시선부터 고정시키게 만든다.
이 책은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과 취향에 대해 이야기 하며, 서로 이해하며 공감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쩌면 이우일 자신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자, 삶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 첫 번째 페이버릿 싱스가 바로 '옥수수빵파랑'. 이 정체불명의 말은 파랑색을 일컫는다.
"코발트블루와 스카이블루 사이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그런" 색인 옥수수빵파랑이다. 어렸을 적 자신의 어머니가 "넌 파랑이야!"라고 문득 내뱉은 이후 그는 자신의 파랑이 무슨 색일까 찾아 헤맸다고 한다. 그렇게 발견한 색이 바로 '옥수수빵파랑'. 자신만의 색이다.
이것은 그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어떤 것일 수도 있으며, 독자들에게는 삶의 활력소로 작용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삶을 사는데 있어 나만의 방식이 있고, 그 유용성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저자처럼 자신만의 색을 발견하고, 온몸으로 그것을 느낄 수만 있다면 "살만한 세상이네."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저자는 '옥수수빵파랑'으로 자신의 삶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다.
이것이 책의 전반에 깔린 주된 하고 싶은 이야기라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그의 재기발랄한 엽기적인 모습과 조금은 남들과 다른 독특함이다. 평소 그림도 규약을 무시하는 듯, 일명 '대충 그린 듯한 그림'으로 보이는 것을 그리는 이기에 그런 면모가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그가 요목조목 정리한 페이버릿 싱스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동감하거나, 웃음을 지을지도 모른다. 대략 그가 좋아하는 것은 이렇다.
자기 만화를 스스로 즐기고 대학생이 되어서 동화를 만화로 그린 <이상한 나라 엘리스>, 심의를 걱정해야 할 정도인 <빨간 스타킹 반란>도 그가 자신의 삶을 즐긴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페이버릿 싱스 목록에 버젓이 올려져 있다.
또한 홍대 앞 놀이터, 포스트 잇, 수첩, 남들이 전혀 보기엔 쓸모없을 것 같은 좀 스코프, 맥가이버칼, 플라스틱 고무 장난감, 너무나도 허접한 멕시코산 장난감 등이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역시나 독창적인 그의 모습이다. 유독 물건에 집착한다는 그는 읽지도 않은 잡지도 한아름 쌓아놓고 있단다. 뭐랄까, 정석에 맞게 떨어지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혹은 법정 스님이라면 그에게 이렇게 충고할지도 모른다.
"무소유는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하지만 그의 삶의 모습을 누구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는 담배를 끊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하니 말이다.
"중독 현상 때문일 수도 있지만 조금은 중독되고 타락한 모습으로 살고 싶기 때문"에 담배를 끊지 못한다."
결국 그는 그가 원하는 삶을 살 것이다. 아니, 인간 모두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삶을 살아갈 것이다. 다만 그 속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살아가는 이와 모르고 살아가는 이,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들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한 번쯤 노트에 쭉 나열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살아가는 편이 훨씬 더 좋기 때문이 아닐까?
옥수수빵파랑 - My Favorite Things
이우일 글.그림,
마음산책,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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