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에 만난 <서울의 예수>. 정광이가 보내 준 시집이 없다. 사진은 1991년판.민음사
그렇게 그 녀석을 대신해 다른 친구들이 자리를 잡아가던 어느 가을날, 학교로 한 통의 소포가 날아들었다.
"친구야, 잘 지내지? 가을 하늘이 무척이나 상쾌하다. 힘든 고등학교 시절이 되겠지만 가끔씩은 네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렴. 무언가에 쫓기듯 시험 점수에만 목을 매기에는 우리의 청춘이 너무 아깝잖아.
한번뿐인 인생, 네 청춘의 꿈을 잃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함께 <서울의 예수>를 찾아보자구나! 너의 벗, 남정광."
시가 익숙하지 않던 시절, '왜 <서울의 예수>를 보냈을까'하는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또 연애시라면 모를까 내용도 쉽게 와 닿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 읽다가 이해하기를 포기했을 즈음, 난 또 한 번 <서울의 예수>를 맞닥뜨렀다. 어느 날 국어 선생님이 "마음속으로 한 번 음미해봐, 아아, 시험에는 안 나오니까 적지 않아도 된다"며 시 한 편을 칠판에 적으셨다. 다른 친구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이었지만 나는 담담했다.
짜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짜장면보다 검은 밤이 또 올지라도
짜장면을 배달하고 가버린 소년처럼
밤비 오는 골목길을 돌아서 가야겠다.
짜장면을 먹으며 나누어 갖던
우리들의 사랑은 밤비에 젖고
젖은 담벼락에 바람처럼 기대어
사람들의 빈 가슴도 밤비에 젖는다.
내 한 개 소독저로 부러질지라도
비 젖어 꺼진 등불 흔들리는 이 세상
슬픔을 섞어서 침묵보다 맛있는
짜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서울의 예수> 중 '짜장면을 먹으며' 전문)
당시 선생님은 이 시에 대해 한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에 쫓기듯, 읽기가 무섭게 재빠르게 지우셨다. 정광이로 시작해 국어 선생님을 거치며 알 듯 모를 듯 조금 더 다가 온 <서울의 예수>.
궁금했다. 정광이나 선생님이나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그래서 그 해 겨울, 태어나 처음으로 시집을 샀다. 정호승의 <새벽편지>였다.
죽음보다 괴로운 것은
그리움이었다
사랑도 운명이라고
용기도 운명이라고
홀로 남아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오늘도 내 가엾은 발자국 소리는
네 창가에 머물다 돌아가고
별들도 강물 위에
몸을 던졌다.
(<새벽편지> 중 '새벽편지' 전문)
<새벽편지>는 쉽게 읽혔다. 그냥 서정적인 연애시라고 하면 딱 맞을 법했다. 이성에 눈을 뜨던 시기, 난 '사랑도 운명, 용기도 운명'이라며 <새벽편지>의 시들을 연애편지에 인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