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는 계절에 잊히지 않는 사람

어머니 묻힌 묘지에 국화를 심고 돌아서며...

등록 2006.11.01 08:58수정 2006.11.0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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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도 끝났습니다. 2006년이 시작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시월이 끝나네요. 가는 세월을 한탄하며 술잔을 비우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겠지요. 그리고 이루지 못한 꿈에 절망을 겪을 것이고, 다가오는 미래에는 더 알찬 꿈을 세우고 실행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세월과 이별할 것이고, 사람들과도 이별을 할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이별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이 있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세월과 이별이 있고, 또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이별도 있습니다. 그러한 이별이 있기에 앞서 만남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그렇게 연인으로, 가족으로, 시간으로 만나 함께 사랑을 합니다. 어느 누구도 떼어놓지 못하는 그런 애절한 사랑을 하지만, 운명이라는 신은 우리네 삶이 희극으로만 끝나는 것을 허락해 주지 않습니다.

지난해, 시월의 끝자락에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평생을 흙과 함께 살아오신 어머니는 흙으로 돌아가서야 무거운 삶의 무게에서 벗어났습니다.

음력 9월 9일. 삼짇날에 따듯한 봄을 맞아 왔던 제비가 강남으로 떠난다는 날입니다. 홀수인 숫자 9가 겹쳤다고 하여 중양(重陽) 또는 중구(重九)라고 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언제 죽었는지 모르는 혼백들을 모아 제사를 지내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떡집이 몹시 바쁜 날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제비처럼 떠나갔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들어서면 "엄마아∼∼" 하고 크게 외쳤습니다. 조용한 시골에서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어머니께 들렸습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장독대에서, 또는 방에서 대답을 하며 아들을 맞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늦은 점심을 챙겨 주셨습니다.

어린 아들은 맛나게 밥을 먹고 숙제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어머니 곁으로 갑니다. 밭으로, 논으로, 때로는 김치를 담그는 어머니 곁에서 일을 배우고, 또 놀았습니다. 그렇게 자란 아들이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면서 어머니로부터 멀어졌습니다. 날마다 부르는 "엄마아∼∼" 소리는 일주일에 한 번에서 한 달에 한 번으로 멀어져 갔습니다. 그러다 두어달에 한 번이 될 때도 있었습니다.


a 내 사랑하는 어머니가 계신 곳입니다. 어머니를 만나러 가면 어머니 곁에 누워 잠을 자기도 합니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드는 잠속에서 어머니를 만나기도 합니다.

내 사랑하는 어머니가 계신 곳입니다. 어머니를 만나러 가면 어머니 곁에 누워 잠을 자기도 합니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드는 잠속에서 어머니를 만나기도 합니다. ⓒ 배만호

어머니 묻힌 그곳은 잔디가 힘들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는 엉성한 묘지의 모습에 추운 겨울이 더 춥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무성한 잔디를 보니 올해 겨울은 조금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 됩니다.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한 계절, 그런 가을에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며 노란 국화를 어머니 가까운 곳에 심었습니다. 어머니는 마당 구석에 아들이 조그맣게 만들어 둔 화단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꾸만 꽃을 심고 키웠습니다. 여름이면 물을 뿌리고, 겨울이면 땅이 얼지 않도록 낙엽을 두텁게 깔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국화를 제가 살고 있는 곳에도 심었습니다. 어머니가 계신 곳을 자주 갈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볼까 하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텅 비었습니다.

"엄마아∼∼"하고 크게 부르면 어디선가 대답하며 달려올 것 같아 어머니가 일하시던 밭에서, 논에서 크게 불러도 보았습니다. 혹시 방에서 나올까 하여 빈집만 덩그러니 있는 곳에 가서 불러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작은 메아리만 울릴 뿐입니다.

흘러가는 세월에 묻혀 잊혀 가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생긴 기쁜 일도 잊을 것이고 슬픈 일도 잊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기억 가운데 잊히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억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추억은 바로 내 어머니에 관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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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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