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열린우리당 '소리 없는 총성'

[분석] 명분 쥔 사수론 vs 세력 쥔 해체론... 최후의 승자는?

등록 2006.11.01 09:48수정 2006.11.0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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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2002년 12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민주당 선대위 회의에 참석해, 향후 정국운영방안에 대해 밝히고 있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과의 통합은 죽어도 안 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2년 12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민주당 선대위 회의에 참석해, 향후 정국운영방안에 대해 밝히고 있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과의 통합은 죽어도 안 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 '핑퐁 게임'이 시작됐다. 당의 진로를 둘러싼 입장차가 드러나고 있다. 아직은 완곡하지만 누가 먼저 치고 나올지, 시점의 문제다. 그 때를 향해 압력은 높아지고 있다.

[해체론-통합신당] "노 대통령은 빠지시라"

김한길 원내대표는 31일 오전 원내대책회의를 하면서 "북핵 이후 비상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안보·경제 위기관리 체제로서의 내각'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노 대통령은 널리 인재를 구해서 드림팀을 짜고 남은 임기 동안 여기에 집중해서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의미심장하다. 거칠게 풀이하면 '당의 진로는 당이 알아서 하니, 대통령은 경제·안보 문제나 잘 하시라'는 말로 들린다. 한 마디로 '정계개편 논의에서 대통령은 손을 떼라'다.

논란이 되자 노웅래 공보부대표는 보충 브리핑을 했다. '안보경제 위기관리 체제로서의 내각'이란 표현에 대해 '중립내각' '거국내각' 등으로 확대 해석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였다. 하지만 "안보와 경제에 집중해 달라"는 말은 재차 강조했다. 더 힘을 실었다. 노 부대표는 "사전에 당 의장과 지도부 그리고 당내 다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계개편 방향과 관련해, 당내 다수 견해는 '통합 신당론'이다. 허물고 다시 짓자는 것이다. 민주당, 고건 전 총리 등과 합쳐 지지층을 복원하자는 것. 평화민주세력이네, 중도개혁세력이네 표현만 달랐지 기실 '반(反)한나라당' 전선이다.

최대 걸림돌은 노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에 백의종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임기후 '당 고문'이라도 시켜달라며 통합론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노 대통령의 '반대' 의사는 굳건하다. 당 의원들, 노사모 회원 등을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과의 재통합에 대해 '지역정당의 부활, 역사적 퇴행'이라는 취지의 말을 한게 뒤늦게 공개되고 있다. 5·31 지방선거가 끝난 뒤 만난 한 전직 당의장에게 "민주당 통합에 맞서 투쟁하겠다"고 말했다는 전언도 들린다.

청와대쪽에서도 부인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이 지난 6월 노사모 핵심인사들과 만나 "민주당과의 통합은 죽어도 안 된다"는 발언(10월 31일 <경향신문> 보도)에 대해 윤태영 대변인은 "지역분할구도를 강화하는 정계개편에 반대한다는 평소 지론은 얘기했다"고 해명했다. 표현의 수위는 달라도 의미는 인정한 셈이다.


세력으론 소수지만 노 대통령과 친노 그룹의 '힘'은 적지 않다. 명분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다. 10·25 재보선 직후, 노 대통령은 자신과 가까운 의원을 청와대로 불러 "작은 꾀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며 "어려울 때 일수록 원칙을 지키며 나가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작은 꾀'와 '원칙'의 대결로 갈라 세웠다.

'작은 꾀'로 내몰린 신당 세력이 이를 부인할 근거는 부족하다. 열린우리당과 통합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 내 분당에 앞장섰던 핵심 세력들이 나 혼자 살겠다고 배에서 뛰어내리고 있다"며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비겁한 행위"(유종필 대변인)라고 비꼬는 상황이다.

'창당 주역이 슬그머니 해체 주장' '민주당을 구악으로 공격했던 건 뭐냐' '염치없는 여당 신장개업론' '화려한 속임수' '막 내린 100년 정당의 꿈' 등 보수언론의 공격에도 반박 논리가 없다.

[사수론-재창당] "지역 아닌 노선과 정책으로"

a 지난 2004년 민주당 연석회의장에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전의장이 새로 비유된 그림이 걸려 있다. 정동영 전의장은 당 진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지난 2004년 민주당 연석회의장에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전의장이 새로 비유된 그림이 걸려 있다. 정동영 전의장은 당 진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 한복판에 '정동영'이 있다. 참여정부 탄생과 창당의 주역이다. 하지만 그는 최근"열린우리당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원인이 빠져 있다. "민주세력의 분열"을 꼽았지만 그건 실패의 결과일 뿐이다.

민주당 틀로는 지역당의 벽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판단에서 분당을 주도했는데, 현재 시점에서 그 문제가 해소가 되었는지, 규명이 없다. '도로 민주당'이라는 역풍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래서일까? 여운을 남겼다. 앞으로 정치 행보에 대해 정 전 의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의사"라며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면 살 것이고 국민이 '이건 이합집산이다, 정략이다'라고 보면 헤어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 진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북핵' 이슈에 올인하고 있다. 당분간 그럴 모양이다.

먼저 치고 나간 천정배 의원과 그는 다른 처지다. 노 대통령과의 '정치적 결별'을 각오하고 '신당' 깃발을 든 천 의원은 맞아도 본전인 데뷔전 선수다. 하지만 정 전 의장은 열린우리당의 대표선수고 본선에 뛰어들 사람이다. 위상이 다른 만큼 계산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반면 노 대통령은 단순하다. 원칙을 위해 지는 싸움을 각오한 한 사람이다. 그의 정치인생이 그랬다. "정권재창출은 내 문제가 아니다" 식의 발언은 때만 되면 청와대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조기숙 전 홍보수석의 "야당 한 번 제대로 해보는 게 대통령의 소망"이라는 말, 유시민 의원의 "박근혜, 이명박 대통령 돼도 나라 안 망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에 만난 한 친노 인사는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구급 신호인 '싸이렌' 소리의 어원) 요정을 언급했다. 황홀한 소리로 뱃사람을 유혹, 스스로 바다에 빠지게 만드는 요정의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돗대에 몸을 묶은 영웅 얘기.

이 인사가 의미한 싸이렌 소리는 '여론'이었다. 낮은 지지도, 실패도 각오하고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확실히 퇴임 후, 고향(영남)으로 내려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뭐든 할 생각인 것 같다.

친노 세력의 한국정치에 대한 진단은 간명하다. '영남당' '호남당' 지역당 구조로 인해 정당 간 정책 경쟁, 노선 경쟁이 안 된다는 인식이다. 이미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이라는 실험도 해봤다. 전문가들은 공통되게 이번 대선의 관전 포인트의 하나로 이제까지 대통령 선거에는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영·호남 연대(통합) 카드를 들고 있다.

이에 반해, 신당파가 내세우는 노선과 가치는 불분명하다. '중도' '개혁' '실용' '민주' 등의 단어가 배열만 달리해 '세력'으로 둔갑한다는 인상이다. 최근 북핵 위기를 계기로 '평화번영세력'이란 용어가 하나 더 생겼지만 DJ표를 의식한 '햇볕정책 계승자' 경쟁으로 비친다.

[유보론] "정계개편, 서두를 이유 뭐 있나"

열린우리당의 분열은 예정된 바다. 문제는 범위와 방법이다. 친노 그룹에선 재창당을 위한 '전당대회'를 주장하고 있지만 신당파에선 반대한다. 통합 준비를 위한 '특별기구'를 두자고 한다. 당의 진로를 신당파가 주도하고 있는 현 지도부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의도다. '정치적 합의'가 없는 전당대회는 분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근태 의장은 줄곧 '분열 없는 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김 의장이든, 천정배 의원이든 표면적으론 노 대통령과 함께 가야 한다고 하지만 주도권은 당이 쥐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하다.

통합신당을 주장하면서 노 대통령과 함께 가자는 것은 양립할 수 없는 명제다. '아니면 말고' 식의 알리바이 성격이 짙다. 총대는 김한길 원내대표나 정대철 고문 등 '킹 메이커'들이 메는 모양새다. 정 고문은 "노 대통령은 빠지시라"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친노쪽은 이같은 '질서 있는 퇴각' 구도를 깨야할 처지다. 전당대회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제대로 붙어보자!' 공격 포인트인 명분을 쥐고 있다. 당원과 국민을 상대로 무엇과 무엇의 대립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자체 세력을 규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현재, 둘 세력 사이에는 '유보론'도 존재한다. 문희상·유인태·원혜영 등 중진들로 구성된 '광장파'는 중도를 표방하며 균형추 역할을 자임해 해왔다. 이들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한다. 정계개편 논의를 미루자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분열 변수, 열린우리당의 회생 변수, 노 대통령과의 관계 변수 등을 고려해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자는 쪽이다.

문희상 의원은 "지금은 당이 정기국회 잘 끝내서 신뢰를 얻어야 할 때다. 당을 수습해야지 괜히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한나라당이 먼저 (대선 후보를) 뽑은 다음에 (당 해체든, 노 대통령 배제든)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광장파의 또 다른 의원은 "노 대통령과도 가다가 도저히 안 되는 시점이 오면 그 때 판단해도 늦지 않다"며 "대선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눈앞에 불난 것만 끌줄 알았지, 더 큰 불을 지른 것은 보지 못한다"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해체론, 사수론… 결판이 나기까지 의외로 긴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a 너무 빨리 터트린 샴페인(?) 지난 2003년 통합신당 개소식에서 샴페인을 터트린 김원기 위원장과 창당 주역들.

너무 빨리 터트린 샴페인(?) 지난 2003년 통합신당 개소식에서 샴페인을 터트린 김원기 위원장과 창당 주역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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