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62회

등록 2006.11.01 08:08수정 2006.11.01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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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감께서는…, 부상을 당하신 상태였소."

경후였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고,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다. 시선 역시 허공에 던진 채 앉아있는 자세였다. 그는 그런 넋 나간 자세로 말을 잇고 있었다.


"어젯밤 보주의 거처에서 나와 이쪽으로 오는 도중에 누군가의 기습을 받았다고 했소. 그자는 기습이 실패하자 연무장 쪽으로 도망을 쳤는데…."

"상부호의 거처가 있는 곳으로 말이오?"

"그곳에 당도하기 전에 두 명이 더 나타나 공격을 했다고 하오. 한 명은 철담 어른의 애병인 철담과 비슷한 창을 사용했고, 또 한 명은 옥음지(玉音指)를 사용했다고 하오."

"옥음지…?"

풍철한은 나직하게 뇌까리며 신태감의 어깨와 가슴, 그리고 천정혈의 상처를 보았다. 옥음지가 과거 구룡 중 옥룡의 독문무공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이 옥음지의 흔적인가?)

마치 구슬이 파고 들어간 것 같은 흔적은 피가 굳어 메워져 있었지만 다른 지풍의 흔적과 그리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풍철한이 시선을 홱 돌리며 운중보주를 보았다. 보주가 먼저 와서 보았으니만큼 옥음지의 흔적을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더구나 옥음지의 흔적은 아마 보주만이 정확하게 알고 있을 터였다.


"혹시나 했는데…, 그것이었군."

운중보주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것은 일종의 확인이었다. 일이 더욱 심상치 않게 변하고 있었다. 옥음지라면 과거 구룡의 독문무공이 세 가지나 출현한 것이다. 운중보주는 풍철한 곁으로 다가오며 신태감의 시신을 다시 보고 있었다.

옥음지의 흔적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 같았는데 그의 시선은 번갈아가며 옥음지의 상처를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같은 옥음지인데…, 왜 흔적이 저리 다를까?"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풍철한과 함곡은 아무리 보아도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무엇이 다르시다고 하시는지…?"

결국 풍철한이 물었다. 운중보주는 여전히 신태감의 상처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오른쪽 어깨와 가슴에 난 흔적은 같지만 천정혈에 난 흔적은 아주 다른 것이네. 옥음지에 의한 상처는 모두 같지만 그 위력에 있어서는 천양지차라 할 수 있지."

"………?"

하지만 운중보주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옥음지에 의한 상처라면 그게 그거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흔적을 비교해 보아도 다른 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 주위에서 아무 말 없자 운중보주가 풍철한을 쳐다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옥음지에 대해 모르니 더 설명해 주어야 했다.

"어깨와 가슴에 상처를 준 자의 옥음지 수준은 겨우 흉내를 낼 정도이네. 기껏 사성(四成) 정도의 수준이지. 허나 천정혈에 낸 상처는 옥음지가 최소 팔성(八成) 이상의 수위에 올라있어야 가능한 것이지."

그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떻게 상처만 보고, 그것도 전혀 다를 것 없는 흔적으로 그 무공을 익힌 자의 무공수위까지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여전히 모르겠다는 풍철한의 표정에 운중보주는 천정혈에 난 상처를 가리켰다.

"잘 보게. 뚫린 구멍은 다른 상처와 달리 작지만 주위가 약간 부풀어 올라 있지 않은가?"

운중보주의 상세한(?) 지적에 풍철한은 어깨와 가슴에 난 상처와 천정혈에 난 상처를 자세하게 살피며 고개를 끄떡였다. 정말 운중보주의 지적대로였다.

"옥음지의 무서운 점은 정말 구슬이 몸에 박히는 것과 같다는 점이네. 진기를 손끝에 모아 하나의 기(氣)의 구슬을 만들어 발출하기 때문이네. 옥음지가 십성에 달한 경우에는 콩알보다 적은 구멍을 남기지만 내부에는 주먹만 한 구슬이 박힌 것과 같지. 관통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그 경우에도 역시 관통해 나온 곳은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린다네."

주먹만 한 구슬이 몸에 박히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상처보다는 박히는 충격으로 즉사할 터였다. 더구나 관통을 하게 된다면 남아날 게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제야 풍철한은 무슨 의미인지 겨우 알 수 있었다.

신태감의 어깨와 가슴에 난 상처는 천정혈의 상처보다 더 컸지만 내부에는 그 정도의 구멍이 뚫려 피가 뭉쳐 있을 것이고, 천정혈에 난 상처는 작지만 그 내부에는 그보다 큰 구멍이 파여 많은 피가 몰려 있을 터였다. 그래서 천정혈의 상처는 주위가 약간 부풀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깨와 가슴에 상처를 낸 자와 천정혈을 공격한 자는 다른 자이겠군요."

"그래서 이상하다는 말일세."

운중보주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 순간이었다. 넋을 잃은 듯 앉아있던 경후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래… 그것이야……!"

경후는 급히 신태감의 시신으로 다가들었다. 그는 천정혈에 난 상처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상처는 신태감이 돌아오셨을 때 없었소. 분명히 기억할 수 있소. 본관이 지혈을 시키고 금창약을 발랐기 때문에 확실하오. 어깨와 가슴의 상처에서 피가 계속 나와 지혈시키느라 애를 먹었소."

"그렇다면 신태감을 기습했던 자가 이곳까지 따라와 신태감을 살해한 것일까? 아니… 아니지 옥음지의 위력이 천양지차라면 다른 인물일 텐데…. 옥음지를 익힌 자가 최소한 두 명 이상이라는 말인데…."

풍철한이 중얼거리자 함곡이 다시 물었다.

"자리를 비운 적이 계셨소?"

험곡의 질문에 경후는 후회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리만 비우지 않았다면 어쩌면 신태감이 이리 허무하게 죽지 않았을 것을….

"일각도 안 되었을 것이오. 시녀들이 욕조를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서당두의 방에 잠시 다녀왔소."

자책하는 목소리였다. 그는 정말 후회막급이었다. 신태감과 이 운중보 내에 위험한 기류가 흐른다고 분명 대화를 했는데도 자리를 비우는 멍청스런 짓을 했던 것이다. 더구나 혼절한 듯 잠이 든 신태감을 홀로 남겨두고 말이다.

운중보주가 미간을 좁히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등을 폈다. 그의 얼굴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아주 불편한 심사가 떠올라 누구라도 입을 열기 어려웠다.

"신태감을 살해한 흉수는 적어도 네 명 이상이라는 말이군."

함곡이 운중보주를 조심스레 살피며 속삭이듯 말하자 풍철한이 동조하듯 역시 고개를 끄떡였다. 옥음지를 익힌 두 명의 흉수와 기이한 창을 쓰는 사내, 그리고 염화신공을 익힌 자까지 최소한 네 명이라는 말이었다.

"옥음지를 익힌 자와 염화신공을 익힌 자……, 허나 어쩌면 두 가지 무공을 한몸에 익힌 인물일지도 모르지…."

사실 구룡의 무공을 한 사람이 두 가지 이상 익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일반적인 것도 아니고 한 가지 무공만 익혀도 절정에 달하기 힘든 상황에서 두 가지 무공을 익히는 것은 낭비일 수도 있었고,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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