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를 포함한 3명은 금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회사가 100억원을 들여 개발한 PDP 기술도면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사진은 산업스파이의 기술유출 유형.국가정보원 제공
어느날 갑자기 날아온 경쟁사의 스카우트 제의
지난달 30일 밤 10시 서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부근의 한 입시학원 앞.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밤늦게까지 강의를 듣고 쏟아져 나오는 수험생들 틈바구니로 K씨(41)가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나타났다. 3년 전까지 대기업 전자회사 연구원이었던 K씨는 지금 후배가 운영하는 소형 입시학원의 강사로 일하고 있다.
K씨는 몇년 전 같은 회사 후배 2명과 함께 추정 손실 수조원대의 첨단 기술을 대만 기업에 유출하려다 적발돼 1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이날 밤 K씨의 후배 나모(37)씨와 함께 학원 앞 포장마차에서 그를 만났다.
K씨는 술잔을 기울이며 당시의 절망과 회한의 기억들을 담담하게 더듬어 나갔다.
"중국이나 대만으로 가면 연봉 2억원은 거뜬히 받는다. 또 그곳에서 실력을 발휘하면 미국의 일류 기업으로도 갈 수 있다."
모 대기업 전자회사의 7년차 연구원이었던 K씨에게 어느날 브로커가 접근했다. 2003년 가을 무렵이었다. 당시는 IT(정보기술) 부분에서 국내 연구원들의 기술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던 때. 이 분야의 웬만한 연구원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브로커의 접근을 직간접적으로 받았다.
K씨의 당시 연봉은 4000만원 남짓이었다. 이왕 똑같이 고생하는 거 좀 더 많은 돈을 주는 곳에서 일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K씨의 마음이 움직였다. K씨는 평소 친하게 알고 지내던 후배 2명도 끌어들였다. 그들은 대만으로 가서 구체적인 입사조건을 알아봤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산업스파이가 될 줄 꿈에도 몰랐어요"
"처음에는 제가 산업스파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입사할 당시 경쟁업체로의 전직을 금지하는 약정을 회사와 맺긴 했지만, 특별히 기술을 훔쳐 가져가지 않는 이상 이직을 해도 법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브로커의 이 같은 제안에는 으레 조건이 붙게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K씨를 대만의 T회사에 소개해 준 브로커는 그에게 "빈 손으로 와서는 안 된다"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연봉을 많이 주는 대신 '기술' 하나쯤을 손에 들고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 직장에서 얻은 기술을 바탕으로 사실상 산업스파이 역할을 하라는 제안이었다.
"무엇에 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넉넉하지는 못했어도 당시 월급으로 남들 못지않게 살았었는데 왜 그랬나 모르겠어요. 한 번 옮기겠다고 맘을 먹고 나니까 모든 게 그쪽으로만 움직여졌어요. 돌이켜보면 사람 욕망이란 게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결국 K씨를 포함한 3명은 금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회사가 100억원을 들여 개발한 첨단 PDP 제조공법 기술도면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들이 옮기기로 한 대만의 T사는 이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PDP제품 생산 공장 건설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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