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영화 뺨치는 K씨 체포 풀스토리

[국정원이 밝힌 산업스파이 전쟁②] 도피 3일 만에 공항 검색대서 '덜미'

등록 2006.11.02 12:30수정 2006.11.0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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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외장형 하드인 USB메모리와 노트북 등 외부 저장장치를 이용해 유출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외장형 하드인 USB메모리와 노트북 등 외부 저장장치를 이용해 유출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안홍기
추정 손실액 수조원에 달하는 첨단 기술을 해외에 빼돌리려 했던 전직 대기업 연구원 K씨가 국정원의 정보제공으로 검찰에 검거될 때까지의 과정은 한 편의 첩보영화를 방불케 했다.

K씨가 검거되는 데는 무엇보다 회사의 발빠른 대처가 한몫했다. 당시 K씨가 다니던 회사는 연말 두둑한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성과급이 지급되기 한 달 전 이들 3명이 일주일 간격으로 나란히 회사를 그만뒀다. 이를 의심한 회사 측이 이들이 쓰던 컴퓨터를 확인해 보니 중요 기술연구 자료가 삭제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회사 측은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상담을 요청했다. 국정원 담당관은 즉시 이 회사를 방문해 신고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꼬박 하루가 걸렸다. 회사 연구원들의 도움을 받아 필요한 내용을 조사한 결과 K씨가 중요 기술자료를 복사한 뒤 삭제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후 동료 연구원들에 대한 탐문을 통해 K씨가 대만의 T사와 연락을 취하고 며칠 뒤 대만으로 출국할 것 같다는 정황을 확보했다. 당시 담당관은 K씨가 전직을 위해 기술을 유출한 것으로 확신했다. 이 때부터 담당관의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K씨 체포에 나선 국정원 담당관은 "혹시라도 이미 기술을 T사에 보냈다면 상황이 180도 달라졌을 것"이라며 "기술은 물건과 달리 형체가 없어서 한 번 유출되면 되찾아 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담당관은 급히 검찰에 연락을 취했다. 평소 검찰과 공조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번 사건은 혐의점이 뚜렷하게 드러나 담당 검사도 적극성을 보였다. 그날 밤 늦은 시간 긴급체포영장이 발부됐으며 그 이튿날 오전에 K씨의 신병을 확보할 계획이라는 연락이 검찰로부터 왔다.

공항 검색대 빠져나가기 직전 검거


상하이 홍차우 국내공항 검색대 모습(자료사진)
상하이 홍차우 국내공항 검색대 모습(자료사진)유창하

다음날 오전 검찰 수사관은 K씨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이후 급하게 인천공항으로 연락을 취했다. 혹씨 K씨가 눈치를 채고 잠적하거나 아니면 이미 한국을 빠져나간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다행히 K씨는 한국에 머물러 있었다.

검찰 수사관이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시간, K씨 등은 007가방을 들고 대만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공항 검색대로 향하고 있었다. 먼저 연락을 받고 공항에서 대기 중이던 기관원들이 K씨를 확인했다. 그들은 K씨에게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으니 이리 좀 오시죠"라며 손짓을 했다. 무언가 일이 틀어졌다고 직감을 했지만 K씨는 도망가지 않고 순순히 검거됐다.


검찰 조사 결과 당시 K씨의 노트북에는 회사가 연구개발한 기술도면과 연구자료 화일 등이 수북이 담겨 있었다. K씨 사건의 경우 회사 측의 신고에서 검거까지 딱 3일이 걸렸다.

보통 길게는 산업스파이 검거까지 3개월이 소요되지만 이번 사건은 회사 측의 협조로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만일 당시 K씨 등이 긴급 체포되지 않았더라면 추종 손실만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산업스파이 70% "돈 때문에 범행"

ⓒ오마이뉴스 성주영
지난 2003년 초 설립된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는 현재 국내 산업보안업무의 최일선에 나선 장본인이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는 출법 이후 지난 9월 말까지 모두 81건의 해외 기술유출 사건을 적발, 91조8000억원 규모의 국부유출을 예방했다.

국정원이 적발한 사건을 분석해 보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 휴대폰·반도체 등 IT분야에서 전체의 73%인 59건이 발생했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 관계자는 "최근들어 자동차·조선 분야로 확대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또 기술 유출자는 전·현직 직원에 의한 이직, 기술판매 등 생계형 기술유출이 대부분이었으며 최근에는 협력업체에 의한 유출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대부분 금전적 유혹에 휘말려 기술을 빼돌리려 했다. 유출동기는 금전유혹·개인영리가 57건으로 전체의 70%를 차지했다. 또 처우·인사불만에 의한 유출도 18건에 달했다.

기술유출 방법도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문서로 된 중요 서류에 대한 복사·절취나 팩스·전화를 이용한 기술유출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외장형 하드인 USB메모리와 노트북 등 외부 저장장치를 이용해 유출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이메일이나 인터넷 파일관리시스템인 웹하드를 이용한 기술유출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 관계자는 "주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CEO의 보안의지가 미흡하고 예산부족으로 전반적인 보안관리가 취약한 실정"이라며 "무엇보다 기업 CEO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데 소요되는 비용보다 기술유출로 인한 손해비용이 더 크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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