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광장을 바삐 지나는 시민들 사이로 한 노숙자가 배회하고 있다(자료사진).
남소연
그 때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취재원(news source)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데 있었다.
첫 순간, 행색만 보고 상대를 의심했던 것도 잘못이었지만, 그걸 극복한답시고 전폭적인 믿음을 걸고 모든 기사를 그에게 내맡긴 것이 더 큰 잘못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취재원을 의심하고 뒤집어보는 일을 생략한 것이다.
이른바 '불량기사'의 상당 부분은 기자-취재원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어떤 취재원을 얼마나 만나 무엇을 물어보고, 그 대답을 제한된 텍스트에 어떻게 담을 지가 기사의 내용을 결정한다.
앞으로는 언론 환경과 취재 관행이 나아지긴 하겠지만, 여전히 기자 노동은 '시간 싸움'이다. 5분 안에 기사를 보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 30분 안에 기사를 다 써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한 시간 안에 취재를 마쳐야 하는 식이다.
그렇게 반나절을 씨름하고 다시 다음 반나절을 준비하는 '하루살이'가 기자들이 미쳐 돌아가는 이 바닥의 대강이다. 어떻게 하면,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취재원을 가급적 최소한(최대한이 아니라) 만나 기사가 갖춰야할 그럴듯한 모양새를 꾸며 제 시간에 마감할 수 있을지가 기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한국 언론이 양산하는 기사의 대부분은 그래서 '패스트푸드-저널리즘'에 비유할 수 있겠다. 준비된 재료만 들어간다. 모든 재료는 순식간에 요리되거나, 이미 요리돼있다. 그래도 몸에 좋고 맛도 좋다고 선전한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그런 음식들을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먹는다. 그래서 또다시 '준비된 재료'를 다시 챙겨 내일 장사를 준비한다. 가끔 그 음식에 파리 날개, 쥐꼬리, 바퀴벌레 더듬이 등이 들어가 항의를 받기도 하지만, 어찌됐건 사람들은 계속 이 식당을 찾을 테고, 나는 계속 음식을 팔아 해치울 것이다.
'사실'은 '진실'을 드러낸다는 조건 하에서만 존귀하다
최근 '피디 저널리즘'이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 역시 한정된 취재원에 대한 무비판적 의존이라는 기자들의 관행과 관련이 있다. 바쁘기로 따지자면 피디 역시 기자 못지않겠지만, 여하튼 그들은 작가 등 스태프를 동원해 다각도로 취재할 인력을 갖추고, 적어도 일주일 이상의 호흡을 갖고 프로그램을 만든다. 자연스럽게 여러 취재원을 두루 만나 복잡한 사실관계의 풍부한 이면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기자는 '사실'에 목숨을 건다. 이 말은 백번 천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다만 전제가 필요하다. 그 사실이 '진실'을 드러낸다는 조건 하에서만 사실은 존귀하다. 사실은 취재원으로부터 나오는데, 이 취재원의 성격과 숫자에 따라 진실은 다른 모습을 띤다. 때로는 '명백한 사실'이 '진실'을 가리기도 한다.
사회부 경찰기자 시절, 종로경찰서를 출입했다. 시위와 집회가 끊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귀찮을 정도로 많았다. 써야할 기사는 쌓여 있는데,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집회를 모두 추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자들은 이럴 때, 경찰을 활용한다.
"얼마나 와 있어요? 그럴 줄 알았다니까. 몇 명 안 되죠? 근데 언제까지 한대요? 뭐, 굳이 해산시키고 그런 일은 없겠죠? 하하. 그럼요. 경비과장님 고생하시는 거야,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 근데 주로 어떤 구호를 외치던가요? 그 단체 대표 이름이 뭐였더라. 과장님은 알고 계시죠?"
어지간한 경우라면, 현장에 나간 경찰의 정보는 '사실'이다. 여기에 중대한 거짓은 없다. 잘못 꾸며 말했다가 기자들에게 괴롭힘당하고 싶은 경찰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이 제공하는 사실에 의존하는 한 그 집회의 '진실'은 온전히 밝혀지지 않는다.
경찰서 기자실에 앉아 취재한 집회는 귀찮고 시끄럽고 가망 없는 짓거리일 뿐이다. 평일 오후, 지역 주민들이 몰려와 청와대를 항의방문 하겠다고 기를 쓰는 일은 이제 기사 속에서 '도심 소음 공해의 하나'로 취급된다.
만일 그 기사의 취재원에 집회 참가자가 추가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알고 보니, 미군 사격 훈련 때문에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한 지역 농민들의 시위다. 마감에 쫓기느라 이 사실을 모르고 지나가면, 그게 불량기사가 된다. 사회의 악성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패스트푸드-저널리즘이다.
'도제식 교육'을 받는 기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