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100포기 담그는 내 엄마 조 여사

평생을 우직하게 일해 온 조 여사, 9남매 김치 담그다

등록 2006.11.03 08:13수정 2006.11.0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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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지영

원래 지난 일요일(10월 29일)에는 내 엄마 조 여사한테 가기로 했다. 같이 국화꽃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목요일 밤에 오지 말라고 전화하셨다. 꽃구경보다는 하루 일하는 게 더 중요한 조 여사다운 판단이었다. 나는 토요일에 순창 강천산으로 단풍놀이를 갔다가 돌아와서 아이와 밤늦게까지 놀다 잠들었다.

일요일 오전, 잠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동생 지현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가 동생이라도 혼자 왔으면 한다고 하셨단다. 괜히 동생보고 "조 여사는 왜 그래? 오랬다 오지 말랬다, 하튼 변덕이야" 하면서 집을 나섰다. 아이가 배고파할까봐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몇 번이나 집으로,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도 받지 않으셨다.

엄마 집을 들어섰는데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당 가득, 소금에 절인 배추가 보였다. 그 옆에는 아직 다듬지 않은 갓과 무가 몇 다발씩 있었다.

"조 여사, 이게 다 뭐야?"

엄마 일터가 갑자기 이틀을 쉬게 됐다고 하셨다. 엄마는 홈쇼핑에 굴비를 납품하는 회사에서 굴비 엮는 일을 하신다. 그런데 전날, 프로야구 경기하고 굴비 파는 시간하고 겹쳐서 생각보다 굴비가 많이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속한 생산 팀은 이틀 휴가를 받게 됐다.

엄마는 '황금연휴'를 김치 담그는 일에 쓰겠다는 계획을 급하게 세우셨다. 아빠 친구 분한테 부탁해서 트럭을 얻어 타고 가셔서 배추 100포기와 갓과 무를 사와서 소금에 절이고 계셨다.

"조 여사, 뭔 통이 이렇게 크요?"
"뭣이 커라우? 들어갈 입이 몇 갠디. 군산 딸네 둘, 서울 딸, 작은할머니네 집, 내 막뚱이 동생까지 줄라고 그런디."

"엄마. 휴가면 쉬어야지. 김장 김치도 아니고, 100포기가 말이 돼? 휴가 사흘 줬으면 조 여사네 9남매 김치에다 동네 사람들 김치까지 담그겠네?"
"아따~ 김치 담그는 것이 뭔 일이요? 한 포기나 두 포기나 다 똑같은디."

동네 사람 결혼식에 갔다 와서 정장 차림인 아빠는 옷도 갈아입지 못 하고, 마늘을 까고 계셨다. 나는 위생 모자까지 갖춰 쓰고 배추 절이는 일을 하고 있는 엄마 사진을 몇 컷 찍으면서 말했다.

"엄마, 해 떨어지기 전에 우리 갈 거야."
"김치가 그렇게 쉽게 되가니? 자고 가야제."
"가야 해. 내일 제규도 학교 가고, 나도 일해야지."
"(웃으시면서) 오메~ 나는 나 쉰다고, 다 쉰 줄 알았네, 잉."

"조 여사, 오늘은 나라에서 정한 법정 공휴일이고, 내일부터는 온 국민이 다 일하거든. 조 여사 쉬면, 딸이랑 손주도 자동으로 쉬는 줄 알어?"
"어찐디야? 아무리 빨리 해도, 김치 물 빼고 버무리믄 새벽인디. 천상 내일 아침에나 가야 쓰것다."

부엌으로 마당으로 종종 걸음을 치는 조 여사를 내다보면서 남편한테 '조 여사한테 낚였다. 낼 아침에 갈게' 문자를 보냈다. 생각해 보니까 혼인하고 10년 동안 엄마가 보내 준 김치를 먹고 살았으면서도 엄마가 김치 담그는 모습을 본 것은 딱 한 번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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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간을 싱겁게 해서 배추 숨이 죽지 않아서 소금에 절이고 2시간이 지나면 통에 물을 받아서 배추 위에 올려놓으셨다. ⓒ 배지영


남동생이 중환자실에 오래 누워 있던 어느 해 여름이었다. 혼자서 교통사고를 내고 당한 동생 때문에 그해 여름은 식구 모두에게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었다. 병간호를 하러 주말에는 동생이 입원한 병원을 다녔다. 엄마는 딸들이랑 교대해서 하루쯤 집에 가서 주무셔도 될 텐데 꼭 우리 보고 집에 가서 자라고 하셨다.

선잠을 자다가 아빠 울음소리를 듣곤 했다. 엄마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오셔서 "어째서 내 딸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끄나? 우리 금자 불쌍해서 어찌그나?" 붙잡고 우셨어도 엄마는 '괜찮았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달래면서 말했다.

"엄마, 나 괜찮해라우. 저만항게 다행이제. 엄마, 창석이가 저르케만 있어도, 저것이 평생할 효도를 나한테 다 했응게. 엄마, 나는 진짜로 괜찮해라우. 암시랑토 안해라우."

엄마는 그 해 여름 내내 일터에 갔다가 중환자실에서 밤을 보내셨다. 아빠는 언제나 병실 앞까지만 왔을 뿐, 누워 있는 당신 자식의 망가진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초가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서 남동생은 의식을 찾고, 일반 병실로 옮겨 갈 수 있었다. 그 때서야 아빠는 동생 얼굴을 마주했다.

동생 얼굴은 예전 같지 않았다. 한 쪽 눈은 신경줄이 끊어져서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이빨만은 강철 이빨이어서 하나도 망가지지 않았다고, 별로 웃기지 않은 농담을 하고 엄마 집으로 갔다. 엄마는 어떤 특별한 약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그 밤 내내 동생 지현하고 나한테 줄 김치를 담그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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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담그는 게 절대 일이 아니라고 하시는 엄마 ⓒ 배지영


그 때부터 버릇이 되셨나? 엄마는 김치를 담글 적에는 잠을 안 주무신다. 서울 딸, 군산 딸 둘, 막내 여동생, 막내 남동생한테 보낼 김치를 밤새 담고, 막 바로 일터에 가도 별로 힘들지 않다고 하셨다. 엄마 말이 사실이라도 해도 내 눈에는 '옳지 않아' 보였다.

"엄마, 엄마는 자만심을 버려야 돼. 이 세상에 엄마 김치밖에 없는 줄 알아? 엄마가 안 담가줘도 다 먹고 살아. 이게 뭐야? 곧 있으면 환갑인 사람이."

엄마는 일거리를 앞에 두고 엄숙하기까지 하셔서 물도 잘 먹지 못하신다. 엄마가 고행하는 수도자처럼 소금에 절인 배추 물을 빼고, 김치에 들어갈 양념을 만드는 동안에 아빠와 나, 동생은 차례로 잠들었다가 일어났다. 엄마는 혼자 갓김치와 무김치를 다듬고, 딸들한테 보낼 생선을 다듬고, 이웃 시끄럽다고 몽당 빗자루로 숨죽여 마당을 쓰셨다.

새벽 2시 30분에 동생이 들어와 눕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엄마는 커다란 그릇에 양념을 다 버무린 다음에 동생 지현과 나한테 보낼 배추만 따로 골라내고 계셨다. 조금 있으면 동이 터 올 터인데 모자를 쓰고 계신 엄마가 답답해 보였다.

"조 여사, 뭣하러 모자는 쓰고 있소? 나이 먹응게 머리가 시리요?"
"아니제라우. 머리크락 하나라도 들어가면 안 된게 쓰제요. 근디 아까 위생 모자를 벗었다가 어따 뒀는지 생각이 안 나서 내가 등산 모자를 쓰고 있소. 보기에 괜찮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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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에 머리카락이 들어갈까 봐 모자를 쓰신 엄마. 위생 모자를 못 찾아아서 등산 모자를 쓰고 계셨다. ⓒ 배지영


나는 엄마가 버무린 김치를 김치통에 담는 거라도 도와주려고 했다. 엄마는 "지숙 아빠!" 를 낮게 불렀다. 아빠는 대기하고 있던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우리가 가져온 김치 통 열 개를 쭉 늘어놓으셨다. 두 분은 아무 말 없이도 김치 통에 김치를 넣고, 통에 묻은 국물을 닫고, 뚜껑을 닫아서 한켠으로 쌓아놓으셨다.

멀뚱하게 서 있는데 엄마 아빠가 나보고는 이따 깨운다고 들어가 자라고 해서 잠깐 눈 붙였더니 날이 밝아 있었다. 혹시 넘칠까 봐 비닐까지 한 겹씩 덧대서 트렁크 가득 실어놓은 김치와 함께 군산 집으로 돌아왔다.

내 엄마 조 여사는 평생을 우직하게 일해 오셨다. 어릴 때부터 하는 일마다 모두 야무지게 하느라 남들보다 더 고생하셨다. 그래서 당신 신조는 '한 번 일을 잘 하면, 평생 일만 하고 산다'이다. 당신 딸들은 조 여사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셨다. 우리 자매들은 엄마가 계실 때에는 밥도 안 차려먹고, 양말이나 속옷을 빨지 않고 컸다.

나는 그렇게 자라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혼인했다. 내세울만한 연봉도 아니고, 명성도 없는 일이지만 밥벌이 하나는 우직하게 한다. 그밖의 모든 일은 조 여사 바람대로 엉성하고 느리다. 그래서 내 삶은 백조와 같다. 여유 있게 떠다닌다. 나를 들여다보면, 우아함을 유지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버둥거리고 있는 발은, 내 발이 아니다. 내 엄마 조 여사의 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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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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