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금지 안내문. 영어, 독일어와 함께 한국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한대일
일반적으로 독일은 규칙을 매우 철저히 지키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윗사람에 대한 반항없는 순종적인 스타일이며, 이런 독일인의 국민성은 양차 대전을 일으킨 원인인 동시에 '라인강의 기적'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으로 볼 때 독일인들이 '무조건' '끊임없이' 윗사람의 말을 따른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이 프리드리히 2세라는 절대왕정의 시대를 겪었고, 또한 프랑스로부터 불어온 혁명도 독일 내에서 거친 태풍을 몰고 왔다.
30년 전쟁으로 수백 개의 조그만 영주국으로 갈라져 버린 독일의 통일에 대한 염원과 함께, 프랑스에서 불어온 자유·평등과 같은 근대적 이념은 독일의 대학생들을 비롯한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슈타인을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은 농민해방과 책임내각제와 같은 근대적 개혁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주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보수파 세력 '융커'의 배척과 내각제에 대한 프로이센 군주의 두려움, 그리고 민족주의로 흘려갈 것을 염려한 나폴레옹에 의해 슈타인은 파면당한다.
하지만 독일 대학생들은 이런 슈타인의 개혁정책에 환호했고, 프랑스 혁명정신의 계승, 독일 통일을 위해 다방면에서 민족주의적 운동을 펼친다. 이런 대학생들에게 기존의 반동적 생각으로 똘똘 뭉쳐있던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심은 대단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