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두레 '자원봉사은행' 들어보셨나요?

훈훈한 동작구 사랑나누미들, 서울사랑 시민상 수상

등록 2006.11.05 12:50수정 2006.11.0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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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동작 자원봉사 은행'에는 조금 특별한 '부자'들이 모여 있다. 자신의 따뜻한 체온을 이웃과 나누어 번 '가치'를 통장에 가득 예치해 놓은 '마음의 부자들'이다. 1년 이상 이곳에서 꾸준히 자원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는 한 봉사자는 "우리가 열심히 저축한 사랑이 나라 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았겠느냐?"며 빙긋이 웃어 보였다.

전통적 두레 제도와 현대식 은행 제도의 결합

올해로 문을 연지 일곱 돌을 맞는 '동작 자원 봉사 은행'은 1999년 자원 봉사에 뜻이 있는 민간인들이 모여 구성한 순수 민간사회단체로 시작하였다. '지역사회 문제를 지역 주민간의 자원봉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취지로 설립된 이 단체의 최고 히트 상품은 단연 '자원 봉사 사랑 나눔 통장'이다.

지정된 두 시간의 기본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발급받을 수 있는 이 통장의 사용법은 간단하다. 봉사자가 자신이 봉사한 시간을 봉사은행에 저축하고 통장에 기록해 두었다가 후일 봉사자 본인 혹은 가족, 친지 등이 자원봉사를 필요로 할 때 언제든 저축된 시간만큼을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두레 제도와 일반 시중은행의 자유 입/출금제도를 결합하여 만들어진 이 작품으로 '동작 자원 봉사 은행'은 올해 '서울 사랑 시민상 (봉사부문) 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a <동작자원봉사 사랑나눔 통장>- 이를 이용하여 봉사자로 하여금 봉사한 시간과 봉사내역을 관리 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봉사자가 자원봉사를 받고자 할 때 자유롭게 입,출 이 가능하도록 지원한다.

<동작자원봉사 사랑나눔 통장>- 이를 이용하여 봉사자로 하여금 봉사한 시간과 봉사내역을 관리 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봉사자가 자원봉사를 받고자 할 때 자유롭게 입,출 이 가능하도록 지원한다. ⓒ 동작자원봉사은행

10대부터 60대까지...사랑 나눔에는 경계가 없어요

'동작 자원 봉사 은행'에 등록되어 있는 활동인원은 2만6000여명. 이들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최근에는 10대-20대 젊은 층의 참여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대학 진학 시 혹은 입사 시 봉사활동 경력을 중시하는 사회분위기가 자리잡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봉사자의 상당수는 50~60대 주부들이다. 자식 뒷바라지로부터 벗어난 장년층의 많은 주부들이 자유 시간을 보람있게 활용하기 위하여 봉사 은행을 찾고 있다. 처음 봉사은행에 발을 들여놓을 때 이들은 대부분 '내가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봉사 행위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경우가 많다. 동작 자원 봉사은행 지원팀의 유서옥 팀장은 "도움을 받은 분들이 고마움을 표할 때 보람을 느끼지만 봉사자가 무력감을 털어내고 자신감을 얻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매우 뿌듯하다"고 말했다.

도시락 배달 봉사를 하고 있는 정순천(여, 62)씨는 "봉사활동을 하기 전에는 운동삼아 일부러 산에 오르곤 했는데 배달 봉사 일을 시작한 후에는 배달을 하러가는 길에 많이 걷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운동이 되어 좋다"고 밝히며 "남는 시간을 사회 속에서 이웃과 함께 공유하면 모두가 조금씩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a 동작 자원봉사 은행 소속 자원봉사원들이 이발 봉사를 하고 있는 모습

동작 자원봉사 은행 소속 자원봉사원들이 이발 봉사를 하고 있는 모습 ⓒ 동작자원봉사은행

봉사 수혜자 선정에 있어 융통성을 발휘했으면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제도이지만, 채워야할 '허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봉사 은행 '사랑도시락 프로그램'에서 조리 봉사를 하고 있는 도재향(여, 60)씨는 "자식이 있어 수혜 대상자가 되지 못하였지만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반면에 기준에 의해 수혜 대상자로 선정되었지만 사정이 넉넉하여 딱히 도움을 필요치 않아 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봉사 수혜 대상자 선정 기준의 경직성을 꼬집었다. 또한 그녀는 "봉사자 중 나왔다 안나왔다 하는 사람들이 있는 데 이럴 경우 꾸준히 활동을 하는 봉사자가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유 팀장은 "기준에 의하여 선정된 수혜 대상자가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지 실사 작업을 통하여 알아보고 있다"며 "간헐적으로 나오는 봉사자의 경우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경우가 많아 뭐라 말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제도적 보완을 통하여 성실한 봉사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 팀장은 "우리 나라 사람들은 봉사활동을 단순히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이라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러나 그런 일 외에도 사회 곳곳에는 봉사활동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원봉사은행 활동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서 '봉사 개념'의 폭을 넓히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봉사 구직자'와 '중개업자'가 모여있는 은행. 그 곳에서 퍼져나온 빛이 세상을 조금씩 밝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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