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분당 아파트 단지.오마이뉴스 권우성
우리나라에 신도시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50개로 두 배나 늘려놓은 오세훈의 서울 뉴타운도 아직 시작도 안했고, 송파신도시도 시작도 안했다. 게다가 경기도의 명품도시와 크고 작은 미니신도시도 줄줄이 늘어서 있는데, 다음 정권에서나 추진될 '분당급 신도시'를 맘 놓고 추진하는 정부는 마치 다음 정권은 한나라당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미리 정책을 추진하는 것처럼 아무런 눈치도 보지 않는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경우는 좀 너무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지만, 짧은 내 생각으로는 권력은 아직도 관료들에게 있다. 완전하게 시장 움직임대로 하면 정부가 나서서 신도시 짓겠다고 입지 선정하고, '토지 수용'을 동원해서 멀쩡히 살던 주민들 몰아내고, 여기에 택지공급까지 하면서 분양시장을 조성해주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사실상 '공영개발'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정부가 시장을 장악하고, 그 상태에서 무조건 밀어붙이는 현재의 상황은 최악이다. 원래 살던 사람들도 다 있는데, 이 사람들의 일부만 보상을 받지, 세입자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집 가진 사람들만 사는 것도 아니고, 집 가진 사람만 투표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경기도에 펼쳐진 이 '아파트 레이스'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도 다 국민이고, 헌법상 이들에게 행복추구권과 주거권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건설업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정부에서 바치는 동안, 지방거주자, 무주택자 그리고 '다음 세대'와 힘없는 사람들의 권익이 심하게 훼손된다.
공급과 수요는 주택시장에서 아주 적절한 용어는 아니지만, 이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으면서 한 나라의 국민경제가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건설업체와 건설주의자들의 힘이 너무 강력하다. 수도권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정책에서 배제되고 행복할 권리가 사라지는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될 가능성이 없다.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에서 장관은 투표로 선출된 정치인들이 한다. 그래서 지금처럼 사람들의 민심과 너무 동떨어진 이상한 정책을 하지 않고, 내부에서의 다양한 방식으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대통령이 임명한 지금의 우리나라의 장관과 총리들은 선출된 사람들도 아니면서 너무 많은 권력을 손에 쥐고 있다.
강남을 대체한다고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집값을 올려놓고, 이젠 다시 집값 잡는다고 '무한대 건설공급'을 결정했다. 이 모든 일들의 공통 분모는 마치 대형 건설사 기획실과 홍보실처럼 정부가 움직인다는 점이다. 건설업 말고도 경제에는 중요한 게 많고, 집장사 말고도 정부는 챙겨야 할 국민들이 많다.
그 앞에서 이걸 잠깐이라도 세울 수 있는 권력이 있는 사람은 한명숙 총리밖에 없는데, 이 사람이 지금 눈을 꼭 감고 "집이나 많이 지으라!"고 하는 중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중인데, 사실상 국내 정책에는 식물대통령과 비슷한 노무현 대통령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민주주의는 불편해도 절차를 만들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보라는 것인데, 이런 장치가 지금 우리나라에는 정지하고 작동하지 않는다. 건설사와의 머리 싸움에서 국민들이 졌고, 관료를 둘러싼 세 싸움에서 다시 국민들이 졌다. 총리마저 눈을 질끈 감아버린 상황에서 이제는 민주주의의 근간마저도 흔들릴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
국민 중에 몇 퍼센트나 경기도의 신도시 무한공급을 찬성하고, 또 실제로 경제적 혜택을 볼 수 있을까? 집 몇 채 더 짓거나 말거나가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지금은 도시 몇 개 만든다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근간까지 흔드는 경우가 되었다. 이제 이 절차의 마지막 균형자는 총리실이 아니라 기획예산처와 한국개발원이 되었다. 보통은 '예타'라고 줄여서 부르는 '예비타당성 평가'가 실정법상으로는 이 경우 거의 유일한 제어장치인 셈이다. 이 사업의 평가를 맡게 될 박사 몇 명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평가서가 실제로는 마지막 제어장치인 셈인데, 총리가 할 수 있던 균형역할을 포기하면서 공은 다시 실무자 손으로 넘어간 셈이다. 예산회계법 시행령이 마지막 안정장치인 상황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황당한 사건인가. 고급관료들의 횡포가 너무 심하다. 집권야당의 비호 아래 벌어지는 정책 농간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정부는 지금 통제불가능 상태인 것 같다. '로드맵'이니 '종합대책'이니 하는 것도 이미 다 던져버리고, 무조건 집짓겠다는 정부를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장관과 총리도 투표로 뽑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중심자의 레임덕과 '집권야당'에 무책임한 총리가 결합되고 나니, 정부가 건설사 기획실이 되어버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주택보급률 200%가 될 때까지 정부의 건설 레이스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과 관료들 사이에서 노무현은 '왕따'인 셈이고, 이 흐름의 반전의 계기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시대가 한나라당을 선택하는가? 그건 모르겠지만, 총리와 장관과 같은 고위직은 이미 한나라당을 선택한 것 같다. 정책 기조가 그렇다.
한명숙 총리, 정말 뜻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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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제, 환경-자원 문제에 대한 전문가.
경제학 전공.
기후변화협약 UNFCCC 기술이전 전문가그룹 아시아지역 대표 이사
현대환경연구원 연구위원, 에너지관리공단 팀장 역임
한국생태경제연구회 창립회원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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