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문수원에선 신선이 된다

강원도 춘성군 오봉산 청평사에 다녀와서

등록 2006.11.07 20:23수정 2006.11.0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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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청평사 입구, 입구에 큰 수나무 두그루로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다. 오봉산을 배경으로 얌전히 자리잡은 청평사가 멋있다.

청평사 입구, 입구에 큰 수나무 두그루로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다. 오봉산을 배경으로 얌전히 자리잡은 청평사가 멋있다. ⓒ 신병철

문화는 살아가는 방식을 말한다. 가치로운 것을 추구하는 경향을 담고 있기도 하다. 시대마다 문화는 변해왔다. 시대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고려시대는 현재 우리에게는 제법 이질적인 구석이 많다. 고려청자의 신비한 모양과 색깔로 그 이상향 추구경향을 조금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고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정원이 하나 있다. 강원도 춘성군 오봉산 계곡과 산에 펼쳐져 있는 문수원이 바로 그것이다.


a 구송폭포, 문수원입구에 있는 폭포로 이 일대에서는 가장 장엄하다. 문수원에는 자연폭포 인공폭포 등 폭포가 수없이 많다.

구송폭포, 문수원입구에 있는 폭포로 이 일대에서는 가장 장엄하다. 문수원에는 자연폭포 인공폭포 등 폭포가 수없이 많다. ⓒ 신병철

문수원은 거북바위와 구송폭포부터 시작한다. 구송(九松)폭포라 이름붙인 것으로 보아 주위에 소나무가 많았나 보다. 안내판에는 구성폭포라 표기해놓았다. 자료에는 왼쪽 물줄기를 따라가면 남원(南苑)이 있다고 했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말았다. 구송폭포를 지나면 바로 중원(中苑)이다.

구송폭포 아래에도 폭포가 하나 있다. 사실 문수원은 수많은 폭포를 가지고 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자연이 만들고 혹은 인공으로 조성한 자그마한 폭포들이 수없이 나타난다. 구송폭포가 이중에서 가장 크다. 그래서 멋있다.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위에서 흘러내려와 물위에 떠있는 단풍진 낙엽들이 푸르고 맑은 물과 만나 멋을 부리고 있다.

a 문수원 평면도, 문수원은 크게 중원, 남원 북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의 건축(윤장섭 저)>에서 옮긴 평면도.

문수원 평면도, 문수원은 크게 중원, 남원 북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의 건축(윤장섭 저)>에서 옮긴 평면도. ⓒ 윤장섭

문수암은 고려 중기에 이자현이 조성하였다. 아마도 당시 최고의 문벌이었던 인주이씨로 이자겸과 같은 집권층 상층부에 속한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 이자현은 정토신앙이나 관음신앙 대신 도교에 가까운 거사(居士) 불교를 일으켰고, 그래서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신봉했다. 그래서 그 문수 신앙을 펼치는 도량을 이곳에 조성하고 이름을 문수원이라고 했다.

문수원은 중원(中苑)을 중심으로 남원(南苑)과 北苑(북원)을 남북으로 배치하였다. 선원(禪苑)의 규모는 총 4만3200㎡으로 800m 가량 되는 오봉산(원래 이름은 경운산)이 지금의 소양호 쪽으로 뻗친 계곡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아래쪽에서는 계곡을 중심으로 선원을 만들다가 위로 올라가면서 조그만 능선을 끌어들여 좌선과 수련에 매진할 수 있는 자리들을 만들었다. 자연이 자리를 내어주었고, 사람이 조금씩 손질을 더하여 도량을 닦았다. 자연과 인공이 하나가 되어 이상 세계를 만나는 자리가 되었다.


a 문수원 영지. 오봉산 꼭대기가 비칠 수 있도록 못을 만들었다.

문수원 영지. 오봉산 꼭대기가 비칠 수 있도록 못을 만들었다. ⓒ 신병철

구송폭포에서 조금 올라가면 조그만 못이 나타난다. 북쪽이 조금 넓어 남쪽에서 보면 정확한 네모로 보인다. 오봉산(경운산) 꼭대기 봉우리들이 잘 비치는 곳에 못을 조영하고 영지(影池)라 했다. 그래서 산꼭대기가 잘 비칠려면 못물이 잠잠해야 한다. 못 안에 큼직한 돌덩이를 몇 개 넣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섬 모양을 축소해놓은 것 같기도 하다. 영지에 비친 산그림자를 보고 무엇을 깨달으려 했을까? 시작과 끝, 앞과 뒤, 이쪽과 저쪽, 차이와 동일과 같은 개성이었을까? 아니면 성품을 보고 도를 깨닫는다(見性悟道)고 했는데, 도를 깨우쳤을까?


a 중원의 거북모양 돌들. 돌들을 소밀을 염두에 두고 주변 자연과 조화롭게 배치했다.

중원의 거북모양 돌들. 돌들을 소밀을 염두에 두고 주변 자연과 조화롭게 배치했다. ⓒ 신병철

영지 바로 위에는 모정(茅亭)터가 있다고 하지만 찾을 길이 없다. 다만 계곡 쪽에 돌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어 그것이 아마도 거북모양의 돌들이 아닐까 싶다.

"영지의 북쪽에 조성된 수석경(樹石景)의 꾸밈새는 '疏中見密 密中見疏(소중견밀, 밀중견소, 성김 중에서 치밀을 보고, 치밀 중에서 성김을 보다)'와 같은 유동감을 느낄 수 있고, 못의 맑은 물, 바위 등의 정적인 요소와 계천의 물소리·새소리·바람소리 같은 시공에 따라 변하는 동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중원은 4차원적 영성의 장을 이루고 있다."(윤장섭 <한국의 건축>)

a 청평사 회전문, 윤회사상을 담은 문이라 해서 회전문이라 이름 붙였단다. 문이 실제로 돌지는 않는다.

청평사 회전문, 윤회사상을 담은 문이라 해서 회전문이라 이름 붙였단다. 문이 실제로 돌지는 않는다. ⓒ 신병철

이제 청평사가 나타난다.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는 소나무 두그루가 특이한 멋을 풍기고 있다. 경사진 곳에 조성한 계단도 적당하여 정감이 든다. 청평사의 건물은 모두 한국전쟁 때 소실되고 말았다. 지금의 건물들은 지은 지 얼마되지 않았다.

옛날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은 돌계단 돌축대 소맷돌 등 돌로 만든 것들이다. 청평사 돌계단치고 정감 어리지 않은 게 없다. 무엇이 돌계단에 정감을 불어넣고 있을까? 수치로 한번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천왕문에 해당하는 중문이 회전문이다. 절간이 별로 크지 않아서인지 회전문도 조그만하다. 정면 3칸이나 중앙간만 크고 좌우간은 좁다. 측면이 한칸이나 좌우칸을 사천왕을 안치시키기 위해서 둘로 나누기 위해 기둥 2개를 끼워 넣었다.

그 위에는 홍살문을 배치했다. 한간을 두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기둥을 세우니 그 윗부분을 마무리하기 애매하여 홍살문을 설치한 것이 아닐까? 홍살문과 사천왕문이 함께 배치되는 경우는 드물다.

a 청평사 대웅전 마당, 대웅전과 경운루, 관음전, 나한전으로 둘러싸인 마당이 적당하게 커서 아담하고 정감이 든다.

청평사 대웅전 마당, 대웅전과 경운루, 관음전, 나한전으로 둘러싸인 마당이 적당하게 커서 아담하고 정감이 든다. ⓒ 신병철

경운루 누하로 진입하면 대웅전이 나타난다. 대웅전 올라가는 계단도 정감 어린다. 소맷돌의 꽃잎 장식과 태극문양 장식이 특이하다. 포천 회암사지의 태극문양과 비슷하다. 조선 명종때 보우대사가 두 절간에 큰 힘을 뻗쳤다. 그래서 이런 유사한 점이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대웅전 앞마당은 이쁘기 짝이 없다. 아담하다는 표현은 이런데 쓰야 한다. 대웅전 맞은편의 경운루 좌우의 관음전과 나한전 네 건물로 둘러싸인 크지도 좁지도 않은 공간은 우리 인간이 가장 편안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넓이가 아닐까 싶다. 넓으면 공허해지고 좁으면 답답해지는데, 이 대웅전 마당은 모르는 사람이 함께 있어도 그냥 정이 저절로 생길 것 같은 넓이다. 넓은 것만을 좋아하는 자본주의에 중독된 사람들이 꼭 느껴봐야 할 넓이다.

청평사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북원이다. 졸졸 흐르는 물이 조금이라도 아래로 떨어지면 여지없이 폭포를 조성했다. 10개가 넘는 폭포들이 있는 듯 없는 듯 있다고 하나 쉽게 보이지는 않는다. 주변의 가을 경관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극락이 이럴까? 좋은 경치 한가운데 있을 때 무조건 기분이 좋아진다.

폭포 위 제법 널찍한 곳에 건물을 지었나 보다. 주춧돌자리가 남았다. 주위에 있는 널찍한 돌은 좌선하는 돌로 삼았다. 이름도 좌선석(座禪石)이다. 이런 곳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단풍진 가을에 그 자리에 앉으면 그냥 신선이 저절로 되어버릴 것 같다. 문수원 중에서도 북원 청평식암 이곳에 오면 누구나 신선이 된다.

a 북원의 건물터와 좌선석, 자연 한가운데 좌선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건물을 지었다. 자연이 곧 정원이고 도량이었다.

북원의 건물터와 좌선석, 자연 한가운데 좌선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건물을 지었다. 자연이 곧 정원이고 도량이었다. ⓒ 신병철

건물터를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큰 바위가 있다. 그 바위 널찍한 공간에 청평식암이라는 암자를 지었나 보다. 바위에 '淸平息庵'을 새겨넣었다. 지금은 적멸보궁이 생뚱맞게 자리 잡고 있다. 청평사 절간을 복건하면서 신선이 살 것 같은 이 자리에 부처님의 진신을 모신다는 절집을 지었다.

하기사 극락이 이상이고 신선이 또 해탈한 자 부처가 아닐까. 적멸보궁 앞자리보다 윗자리가 더 좋다. 이런 곳에서 어찌 음악이 없을쏜가? 신선의 소리는 어떨까? 피리 산조 진양조로 신선의 소리를 대신해본다.

a 청평식암의 피리산조. 자연 속에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진양의 느린 장단에 맞춘 산조가 어울릴까?

청평식암의 피리산조. 자연 속에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진양의 느린 장단에 맞춘 산조가 어울릴까? ⓒ 신병철

이곳에서 북원은 더 위로 전개되겠지만, 당시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내친김에 오봉산꼭대기에 도전해 본다. 중원과 남원에서 수련하다 점차 신선이 되어가면 북원으로 올라오나 보다.

이상을 추구하고 새 세상 열기를 갈구하는 귀족이 결국 갈 수 있는 곳은 이상 세상이고 그곳은 바로 오봉산 꼭대기이고 하늘이다. 거사불교를 닦은 이자현은 벼슬자리를 끝내 마다하고 이곳에서 1125년에 해탈해버렸나 보다.

오봉산 꼭대기 에루화 돌배나무는
가지 가지 꺽어도 에루화 모양만 나누나

오봉산 갈매에다 에루화 국사당 짓고
님생겨 지라고 에루화 정성을 다하네

오봉산 제일봉에 백학이 춤추고
당풍진 숲속엔 새울음도 처량타


a 오봉산 꼭대기 소나무

오봉산 꼭대기 소나무 ⓒ 신병철

사람냄새 물씬 나는 오봉산타령의 노랫말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신선의 심정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결국 신선이 다름 아닌 우리의 평범한 존재라고 노래는 강변하고 있다. 노래 속의 오봉산이 설마 이곳의 오봉산일까마는 오봉산타령의 노랫말은 까무라치도록 멋진 경치 속에 좌선하고 있는 거사의 경지를 담아내고 있다.

멀리 소양호가 보인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을 테지만. 산꼭대기의 시원한 바람은 마냥 싱그럽다. 소나무가 옆에서 함께 시원해하고 있다. 소양호의 바람인가 아님 오봉산의 정기가 뿜는 바람인가. 아니다. 극락과 선계에 다녀온 우리 마음이 불어내는 포용의 바람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11월 첫주말에 청평사를 다녀왔습니다. 문수원은 그냥 이상세계 신선계였습니다. 앞으로 매년 11월 첫주에는 무조건 청평사로 갈 겁니다.

덧붙이는 글 11월 첫주말에 청평사를 다녀왔습니다. 문수원은 그냥 이상세계 신선계였습니다. 앞으로 매년 11월 첫주에는 무조건 청평사로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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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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