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축구 장면.하승창
1년간 미국 생활을 계획하면서 처음엔 아이를 데리고 올 생각이 별로 없었다. 아이도 이제 막 들어간 고등학교에서 새로이 사귄 친구들과 정을 붙이기 시작한 참이라 처음엔 관심이 없다고 했다.
주변 사람 중 일부는 아이가 영어를 아예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1학년생을 데리고 미국에서 1년 동안 체류한다는 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별도로 유학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고, 약간의 생활비를 보태면 아이가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얘기도 들었다.
아이가 4년 만에 맛본 해방감
그런데 아이도 무슨 생각에선지 뒤늦게 가겠다고 했다. 집사람도 모자라는 비용을 좀 충당하겠다고 나서서 결국, 함께 오게 되었다. 돌아가면 다시 고1로 편입해야 하지만 밤 10시, 12시까지 자율학습을 하면서 짜증만 늘어가고 있는 아이가 1년 동안 다른 경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결국 데리고 왔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한국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아이 학교도 화이트가 40%, 히스패닉이 20% 이상이고, 블랙은 10% 미만이다. 나머지 30% 가까운 아이들이 아시안이고 그 대다수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아이가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물론 영어를 배우는 데는 그다지 도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이는 처음 한 달 정도, 오후 3시에 끝나는 학교 수업 마치고 나면 집에 와서 숙제하고 남는 많은 시간을 인터넷으로 때웠다. 그런데 친구들이 생기고 학교 풍물패(한국 아이들이 많다 보니 풍물 동아리가 있다)에 들더니 생활이 달라졌다.
풍물 연습을 하거나, 학교 미식축구 시합이 있으면 응원단으로 참석하고, 오후 시간에도 스타벅스나 보더스에 몰려 앉아 숙제를 하거나 수다를 떨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로서는 중학교 입학 이후에 4년 만에 맛보는 해방감이었을 것이다. 주말이면 매번 게임이 있다면서 밤 12시가 넘어서 들어오는 일도 많아졌다. 지난 일요일엔 각 학교의 응원단 경연이 있다면서 펜실베니아까지 가서 월요일 새벽녘에나 돌아왔다.
학교 미식축구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