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에 나누어 주려고 딴 풋고추배만호
하지만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자 고추는 병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심해진 고추밭에 콩을 심었습니다. 병이 든 고추는 더 자라지 않았고, 콩은 그 틈을 타서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8월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자 콩은 넝쿨을 이루며 고추밭을 온통 덮었습니다. 울타리를 타고 올라간 호박은 울타리가 보이지 않도록 자랐고요. 무성하게 자라는 작물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제가 고추밭에 들어가는 것을 호되게 나무랐습니다. 공부해야 할 아들이 밭에서 일을 하는 것 때문에 화가 난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공들여 키운 고추가지를 철없는 아들이 부러뜨리기 때문입니다. 겨우 고추가지 몇 개를 부러뜨린다고 아들을 고추밭에 못 들어오게 하셨다는 것이 그때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고추를 심고, 호박을 심으면서 그런 어머니의 마음이 조금씩 이해가 됩니다. 씨앗을 심어 열매를 맺게 하는 과정을 자식 키우듯이 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손을 거친 모든 것들은 자식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키운 곡식들은 잘 자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농사 짓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농사 그까짓 거 별 거 아니네’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제 사랑은 어머니의 그것과 다른지 고추는 자꾸 병이 들어갔습니다. 고추와는 달리 병에 잘 걸리지 않는 콩은 무성해져 갔습니다. 그렇게 가을이 되자 고추밭은 없어지고 콩밭이 생겨났습니다.
수확의 기쁨을 나누다
지난 월요일(6일)에 일터 사람들이 콩을 땄습니다. 밥에 넣어 먹으면 맛있다는 말에 모두들 제게 콩을 팔 생각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콩을 사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그냥 주었을 텐데, 팔 생각이 없냐고 묻는 말에 마음이 변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가격을 정했습니다. 콩을 따 가는 조건으로 1kg에 3000원에 팔겠다고. 그리고 1000원은 공금으로 환원하겠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