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장수생'들의 한숨 "오로지 교사되려고..."

[현장]노량진 한 입시학원 "초등교원 임용 축소 발표에 느는 건 걱정 뿐"

등록 2006.11.09 22:39수정 2006.11.1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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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량진 한 학원의 풍경. 수능시험을 일주일 앞둔 수험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노량진 한 학원의 풍경. 수능시험을 일주일 앞둔 수험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 김귀현

오로지 교대에 진학하겠다는 일념하나로 짧게는 1년간, 길게는 2~3년간 공부에만 전념하던 '수능장수생'들에게 커다란 폭풍이 몰아 닥쳤다. 초등교원의 신규임용 폭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교대생들과 함께 거리로 나와 항의라도 하고 싶지만, 이들의 우선 목표는 교대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들은 심란한 마음을 억누르며 새벽 6시부터 그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목숨 걸고' 모의고사를 풀고 또 풀 뿐이다.

고령화된 노량진 "교사되려 직장도 그만두고 수능준비"

조용하다 못해 엄숙하다. 한장 한장 책장이 넘어갈수록 한숨 소리도 더욱 짙어진다. 수능을 일주일 앞둔 지난 9일 노량진의 한 입시학원의 풍경이다.

학생들은 대부분 나이가 있어 보인다. 이들 대부분은 다른 학교를 다니다 또는 회사를 다니다 교대에 가기 위해 다시 수능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이다.

경제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안정된 직업인 교사의 인기도 치솟았다. 사범대에 비해 비교적 교사 임용이 쉬운 교대의 인기도 덩달아 오르게 됐다.

그러면서 교대에 진학하기 위해 다니던 휴학을 하거나 회사를 그만두고 학원가로 몰려드는 이른바 '장수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입시학원에서 이제 재수생이나 삼수생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이다.


노량진 J학원의 '국사반' 김아무개(24)씨는 군대를 전역하고 바로 학원에 등록했다. 적은 나이가 아닌데도 국사반에서는 '막내'로 통한다. 현재 교육과정에서 국사가 필수과목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장수생들은 국사를 전략 과목으로 삼는 국사반에 등록되어 있다. '젊은 친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과목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군입대전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공대를 3학년까지 마쳤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며 "적성에 맞으면서도 안정적인 직업을 찾다가 다시 수능을 봐 교대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군대까지 다녀와서 수능을 보기에는 나이가 많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학원에 와보니 내 나이가 적은 편에 속했다. 나는 여기서 젊은 편"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말대로 대부분 수험생들은 20대 중후반이었다.

노량진의 한 학원 관계자는 "2008년 대입이 대폭 개정되기 때문에 올해 특히 나이 많은 수험생들이 많이 몰렸다"며 "사회생활 하던 사람들도 꽤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 교대나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데 문과는 대부분 교대 준비생이라고 보면 된다"며 "이들은 '이번이 교사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생각으로 정말 무섭게 공부한다"고 귀띔했다.

"임용규모 줄이면 어떡하나" '장수생'들의 한숨

a 한 수험생이 수능 모의고사를 풀고 있다.

한 수험생이 수능 모의고사를 풀고 있다. ⓒ 김귀현

하지만 요즘 들어 노량진 학원가에 한숨 소리가 더 커졌다. 초등교원 임용규모 축소 발표 때문이다.

2년째 교대 입시를 준비하는 유보람(26)씨도 그렇다. 유씨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도 했지만 격무에 시달려 1년 만에 퇴사를 하고 고교 졸업 5년만에 다시 수능책을 집어들었다.

유씨는 "대학 4년 동안 착실히 준비해 대기업에 취업을 했지만 지방 근무에 주말도 없이 일을 했다"며 "교사가 되면 사기업에 비해 자기 시간이 많다는 말에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올해가 벌써 두 번째 도전이다. 그는 "작년에는 교대에 갈 수 있는 점수를 얻지 못해 다시 공부를 하고 있다"며 "말하자면 '재수'인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 유씨는 걱정이 늘었다. 그는 "뉴스를 보면 정말 공부할 의욕이 없어진다"며 "만약 올해 교대에 입학을 한다 해도 졸업 후 임용이 안 되면 공부한 기간 2년에 대학 4년까지 6년을 허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임용축소의 원인이 저출산이라고 들었다. 난 교대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선생님이 될 수만 있다면, 아이를 정말 많이 낳고 싶다"며 "그만큼 절박하다"고 말했다.

노량진의 한 학원에서 만난 이아무개(25)씨도 비슷한 처지였다. 대학을 3학년까지 다니다 휴학한 뒤 교대에 가기 위해 수능을 준비하고 있다. 그 역시 '재수생'이다.

이씨는 "작년에는 언제든 복학을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공부에 집중이 잘 안 돼 올해는 아예 자퇴를 했다"고 말했다.

이씨도 최근 정부 발표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는 "지금 교대생들도 걱정이 많겠지만, 아예 교대 문턱에도 못 가본 우리는 정말 막막하다. 교대만 바라보고 1~2년을 수능 공부만 했는데 수능을 얼마 앞두고 축소 안이 발표 돼서 정말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수능시험일이 다가오자 부쩍 기온이 떨어졌다. 내려간 기온만큼이나 교대를 준비하는 '장수생'들의 마음에도 한기가 불어 닥쳤다. 갑자기 발표된 임용 축소안이 이들의 사기를 꺾었지만, 그래도 이들은 '교사'라는 하나의 꿈을 안고 아침 6시부터 그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책과 사투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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