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이제 성숙의 길로

창작악단 해외 한국 작곡가들 음악 통해 세계화 코드 조율

등록 2006.11.11 13:56수정 2006.11.1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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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창작악단 3년을 결산하는 제6회 정기연주회가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9일 열렸다

창작악단 3년을 결산하는 제6회 정기연주회가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9일 열렸다 ⓒ 김기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예술감독 곽태규)이 창단 3년을 맞는 제6회 정기연주를 가졌다. 창작악단은 9일 저녁 7시 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세계 속의 겨레음악>이란 표제를 걸고 해외 교포 작곡가들 다섯 명의 위촉곡을 선보였다. 지휘 노부영.

이번 연주에 참가한 교포 작곡가들은 미국(손명화, 김지영), 독일(한아선), 중국(정진석, 우영일) 등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로 창작악단은 한국인이면서 해외 거주라는 특수한 환경을 접하고 있는 교포 작곡가들을 통해서 국악관현악의 음악적 시야를 넓히고자 했다.


중국 거주 작곡가는 중국풍에 한국적 장단이나 선율을 결합하는가 하면, 미국 거주 작곡가는 단지 음악만으로는 그들이 외국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들 정도였다. 독일 거주 한아선 작곡가는 다른 네 명과 달리 현대음악 곡을 보내와서 기준은 다를 지라도 3국의 작곡가들이 서로 다른 색깔의 곡들을 보내온 것만은 분명했다.

첫 번째로 연주된 연변대학 음악학부 정진석 교수가 쓴 ‘전야(田野)’는 중국풍이라기보다는 연변 혹은 북한의 풍년가를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남도의 풍년가가 좀 흥청거리고 가슴에 감기는 맛을 준다면, 북녘의 풍년가인 듯한 ‘전야’는 절제되면서도 억누르지 못할 결실의 기쁨을 살짝살짝 내비치는 수줍은 맛을 주었다.

a 창작악단

창작악단 ⓒ 김기

다음 곡은 독일에서 거주하면서 유럽 등지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는 한아선 작곡가의 ‘관현악을 위한 서시’라는 제목을 단 현대음악이었다. 작곡노트에서 작곡가 스스로 밝혔듯이 서양악기 음색을 기본으로 구상한 탓인지, 작곡가의 의도가 원래 그랬는지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음악을 듣는 재미를 제공하지는 못했다. 현대음악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악기 특성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연주 후에 대두되었다.

잠시 휴식을 가진 후, 창작악단이 조금 전의 침체를 극복한 곡은 북경 중국음악대학 작곡가 우영일 교수의 ‘중국풍 경전(慶典)’이었다. 경전이란 말이 축하의 의미를 담고 있듯이, 이 작품은 중국 북방의 선율을 소재로 명랑하면서도 활달한 느낌을 담아냈다. 중국 본토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전형적인 중국 리듬감이 신선함을 주었고, 국악기 연주를 통해 친숙함을 함께 선사했다.

다음 곡은 '타향살이', '짝사랑', '아빠의 청춘' 등 불후의 대중가요를 작곡한 손목인 선생의 딸이자 다섯 명의 작곡가 중에서 유일하게 국악을 전공한 경력을 갖고 있는 손영화 작곡가의 ‘귀향가’. 어린 시절 국악과 깊이 접한 탓인지 전반적인 느낌이 자연스럽고, 귀향이라는 주제가 그렇듯이 돌아옴의 설렘과 애수가 조심스러운 악상 전개로 표현됐다.


창작악단이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은 미국 교포 김지영 작곡가의 ‘비나리’였다. 서양음악 작곡가임에도 경기도 무악장단을 바탕으로 터벌림, 섭채, 올림채, 발뻐드레 장단으로 흥겨운 신명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가 도살풀이로 제의(祭儀)의 분위기를 살렸다가 다시 흥겨운 굿거리 가락으로 끝을 맺었다. 서양음악 작곡가라면 무악이라도 서양적 해석의 유혹이 있었을 것이고, 자칫 국악장단을 깊이 이해 못하면 어설프게 대입되고 말 수도 있는데 김지영 작곡가의 무악이해는 높아 보였다.

a 창작악단 연주모습

창작악단 연주모습 ⓒ 김기

3년 그리고 여섯 번의 정기연주를 통해 창작악단은 창단 초기의 인센티브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국악관현악단들에 비해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점도 변명이 될 수 없다. 이제부터는 성숙한 직업악단으로서의 완성도 높은 연주와 타 악단과 구별되는 자기 음악성을 확보해야 하는 시기에 돌입했다.


사실 창작악단은 창단부터 논란이 있었다. 비록 소속기관은 다를지라도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이라는 점에서는 국립극장의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있어 중복이 아니냐는 회의론이 만만치 않았다. 창작악단에 반대하는 논리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창작악단은 이미 태어난 만큼 이번 연주로 석 삼의 해를 넘긴 성년악단으로서의 위상을 갖추어야 한다.

여섯 번째 정기연주회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끌어냈다. 다른 때보다 단원들의 연주 집중도는 높아 보였고, 깔끔한 음정과 무난한 조화로 연습의 강도를 감지케 해주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자신감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연주를 마친 후 두 달 동안 다섯 곡 연습에 매달렸던 노부영 지휘자는 큰 숨을 몰아쉬며 소감을 밝혔다.

“피 말리는 시간들이었다. 굉장히 큰 파도를 넘은 기분이다. 그러나 언제나 가장 힘든 건 연주자들이다. 그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a 연주를 마치고 청중에게 인사하는 노부영 지휘자와 창작악단.

연주를 마치고 청중에게 인사하는 노부영 지휘자와 창작악단. ⓒ 김기

국악은 이제 더 이상 단지 전통곡 연주에 머물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 창작국악은 초기단계를 벗어나 새로운 한국음악의 패러다임에 도전하고 있다. 젊은 연주자들은 혼자서 혹은 여럿이 뜻을 모아 다양한 실험에 몰두하고 있고, 많은 국악관현악단들이 전국에서 자기 색깔 찾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 속에서 국립단체인 창작악단에 요구되는 음악적 기대치는 자연 높을 수밖에 없지만 당장의 성과보다는 현재가 미래를 담보할 탄탄한 기반을 다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창작악단의 6회 정기연주는 색깔 찾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창작악단의 창단 일성은 '세계화의 조율'이었다.

창작악단 곽태규 예술감독은 창단연주 때 인터뷰를 통해서 “우리 창작악단은 국악과 양악으로 나누는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합니다. 정악, 민속악 그리고 서양음악까지도 탄력적으로 수용할 것은 모두 껴안을 생각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예술성과 대중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악단을 만들어 보이겠습니다”라고 말했었다. 그 실천의 일단을 이번 연주로 보여준 것이다.

창작악단이 바라보는 국악관현악 세계화의 방법론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아무도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유효한 시도와 고민을 안고 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창작악단이 해외 거주 작곡가들에게 한국악기를 통해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거행한 것은 성과보다는 처음의 약속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성실하다. 그 성실함은 역시 처음 약속한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것의 준수이다.

창작악단이 창단 3년을 맞아 음악적으로도 분명 진일보한 점도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악세계와 음악대중에게 한 약속을 가슴 깊숙이 새기고 있다는 점은 그들이 만들어갈 음악의 미래에 기대와 신뢰를 약속해주고 있다. 약속 준수와 더불어 창작악단이 풀어야 할 숙제는 존재한다. 특히 상임지휘자를 선임하지 않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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