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5시, 촛불 들고 보신각 앞에서 만나요

[공연 29일째] 종로 거리예술제 "내 노래 다 주고 대추리 들판 찾을 수 있다면..."

등록 2006.11.11 12:07수정 2006.11.1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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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정태춘씨의 노래 공연
가수 정태춘씨의 노래 공연정연경
30일간의 거리예술제 <2006 가을, 들은 운다> 공연은 이제 하루가 남았다. 10일 저녁,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부는지 '미군기지 확장반대'라고 쓰인 깃발이 더욱 세차가 펄럭인다. 공연하러 나온 출연자들도, 관중들도 하나같이 딸기코가 되어 추워진 날씨를 실감했다.

"평택에는 힘이 필요합니다"

거리극, 춤, 노래, 시낭송 등 29일째 공연에는 9팀이나 출연했다. 펜으로, 몸짓으로, 목소리로 각자가 가진 것을 표현한다. 장철기씨 외 2인의 판소리와 거리극으로 무대는 막을 열었다. 무대 밖 인도까지 뛰어나가 행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2인극은 큰 박수를 받았다.

장철기 외 2인의 거리극. 무대를 벗어나 인도에서까지 공연을 해 행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장철기 외 2인의 거리극. 무대를 벗어나 인도에서까지 공연을 해 행인들의 주목을 받았다.정연경
이날 무대 밖으로까지 뛰어나가 사람들을 놀래킨 것은 거리극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낮 12시에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 횡단보도에서 파란 신호등이 켜져있는 동안 주민들의 초상화를 들고 나섰던 문화예술인들이다.

춤패 '들꽃'도 강한 몸짓으로 말한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되어야해. 오늘 우리가 사는 이곳이 더 아름다울 수 있게!"

대추리의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하고 공감을 얻기위해 30일이란 시간을 발벗고 나섰지만 여느때보다 관객은 적었다. 공연에 참가한 출연자들은 "금요일엔 원래 관객이 많은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라고 말을 흐린다.

"아이야 이 길은 쉽게 포기할 수가 없는 길이란다"


농토 뺏기고 농민 내쫓고
우리 땅 미군 주려고 살아 있는가
히트송이 사라지듯 황새울 솔부엉이 사라지게 할 것인가
한국인의 자존감마저 팔아먹을 것인가
-신현림, '우리는 충분히 살아있는가' 중


왼쪽부터 신현림, 송경동, 류외향 시인
왼쪽부터 신현림, 송경동, 류외향 시인정연경
이날 세명의 시인이 대추리에 관한 시를 낭송했다. 신현림 시인은 '우리는 충분히 살아있는가'라는 제목의 시에서 "무슨 일을 하든 충분히 생각하는가/평택 황새울 들판을 그냥 놔둘 순 없는가"라고 소리친다.


류외향 시인은 '2006년 봄, 대추리'란 시로 말한다. "미군의 총칼에 떠밀려운 할머니 허리 굽은 지팡이 소리/갯벌 내음 달게 밴 할아버지 구릿빛 기침 소리/버려진 전장의 모스 부호처럼/파르르파르르 타전되어 오는데" 시가 낭송되는 동안 이삼헌씨는 몸짓으로 함께했다.

두 번째로 보신각 앞을 찾은 이삼헌씨가 류외향 시인의 시낭송에 맞추어 춤공연을 하고있다.
두 번째로 보신각 앞을 찾은 이삼헌씨가 류외향 시인의 시낭송에 맞추어 춤공연을 하고있다.정연경
대추리·도두리를 3년째 찾고 있다는 송경동 시인은 평택에서 한번은 목이 졸리고, 한번은 머리가 깨져 병원 신세를 졌지만 단 한번도 대추리에 관한 시를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50년간 갯벌을 메워 논과 밭으로 만든 대추리·도두리의 주민들의 삶의 무게를 차마 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으로 '황새울 가는 길'이란 대추리 관련 시를 썼다. "아이야 이 길은 쉽게 포기할 수가 없는 길이란다/아이야 이 길은 고난의 길이지만/우리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란다"

"내 노래를 다 주고 대추리·도두리를 찾을 수 있다면..."

시노래모임 <나팔꽃>의 공연. 왼쪽부터 김현성, 홍순관, 이수진씨.
시노래모임 <나팔꽃>의 공연. 왼쪽부터 김현성, 홍순관, 이수진씨.정연경
시노래모임 '나팔꽃'의 가수 홍순관, 김현성, 이수진씨도 '가을 우체국 앞에서', '이등병의 편지', '술 한잔' 등의 노래로 이날 공연을 함께했다. 이들은 "날씨가 추워서 기타치기 어렵다"고 말했지만 뜨거운 목소리로 종로를 녹였다.

거의 매 공연 빠지지 않고 참석한 가수 정태춘·박은옥씨는 이날 공연에도 무대를 지켰다. 노래에 앞서 정태춘씨는 말한다.

거의 매 공연을 함께한 가수 박은옥·정태춘씨
거의 매 공연을 함께한 가수 박은옥·정태춘씨정연경
"내 노래를 다 주고라도, 내 이름을 다 주더라도, 대추리·도두리 들판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간의 나의 노래, 고민, 투쟁이 지금 내게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질 높은 공연을 추운 날씨 때문에 시민들이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쉽다"는 박은옥씨는 마음 속에 담은 말을 풀어내다 눈시울이 빨개졌다.

"집값만 올라도 사람들은 다함께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50년동안 바다를 메꾸어서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내가 만든 땅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나라가 하는일인데 따라야지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인간에 대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11일 공연 마지막 날, 평택 주민들과 함께

'더 실버라이닝'의 랩 공연
'더 실버라이닝'의 랩 공연정연경
비폭력 저항과 평화를 주제로 활동하는 랩팀 '더 실버라이닝'도 이번 공연에 참가했다. "평택은 2번 죽었네. 미군의 기지 확장에. 재앙은 평등하지 않네. 고통도 평등하지 않네"라는 가사가 종로 거리를 울렸다.

이날 사회를 본 시인 류외향씨는 "김지태 이장이 실형선고를 받고 철조망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기운이 빠진 평택에 젊은 친구들의 랩이 활기를 불어 넣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3일 팽성대책위원장인 대추리 이장 김지태씨가 2년 징역의 실형선고를 받았고, 8일부터는 대추리·도두리에 철조망 추가 작업이 진행되었다. 9일에는 국방부 앞에서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평택범대위)가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연 마지막날인 11일에는 평택 주민들도 보신각 앞으로 모인다. 오후 5시부터 시작될 이날 공연은 802회째를 맞이하는 대추리 촛불집회도 함께 한다.

덧붙이는 글 | 정연경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정연경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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