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HDB 아파트 단지. 지속적인 품질 향상으로 민간아파트와의 격차를 많이 줄였다.이봉렬
싱가포르의 한 중소기업 구매담당자인 로잘린(32)은 한국인 동료가 한국 아파트값 폭등 때문에 한숨짓는 모습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로잘린은 6년 전 결혼하면서 침실이 3개고 거실, 주방 그리고 다용도실이 딸린 30평대 아파트(싱가포르 규격 5-Room Type)를 현금 500만원만 내고 샀기 때문에 집 문제로 고민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30평대 아파트를 살 수 있었던 건 싱가포르 주택개발청(HDB: Housing Development Board)이 주도하는 독특한 주택정책 덕분이다.
로잘린이 구입한 HDB아파트의 분양가는 대략 1억2천만원 정도였다. 이는 민간업체가 분양하는 아파트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다. HDB는 연기금을 활용해 토지를 개발하고, 아파트 단지 전체가 아닌 건물만 개별 분양하기 때문에 이처럼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토지는 공공소유, 건물만 '반값 분양'
집값이 낮을 뿐 아니라 HDB가 운영하는 각종 지원제도를 잘 활용하면 집을 살 때 목돈이 필요없다. 실제로 로잘린은 집값의 80%를 주택개발청을 통해 30년 장기 대출로 해결했다. 금리는 2%대로 크게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다.
나머지 16%는 로잘린이 가입한 연기금(CPF)을 통해 충당했다. CPF란 10달러 이상 월급을 받는 모든 싱가포르 노동자들이 월급의 31%를 의무적으로 저축하게 만든 연기금 제도로, 그 절반은 회사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로잘린은 회사에서 일부 지원을 받아 집을 산 셈이다.
게다가 로잘린은 집을 살 때 3천만원 정도 할인 혜택까지 받았다. 부모가 거주하는 HDB 아파트와 가까운 HDB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집값을 할인해 주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에게는 30%를 추가로 할인해 주는 제도도 있지만 회사에 다니는 로잘린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로잘린이 이처럼 저렴하게 HDB 아파트를 사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월 평균 소득이 400만원 이하이어야 하며, 가족이 1명 이상 있어야 한다.(독신자는 35세 이상이 되어야 자격이 주어지고 집 크기에도 제한을 받는다.)
대신 개인이 파산을 해도 은행에서 HDB 아파트만큼은 가져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보호해 준다. 이같은 조건을 보면 HDB 아파트의 공급이 실수요자인 서민층의 주거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