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촬영 했네벼, 그냥 메주나 쑬껄"

우리집에 미국의 'PBS'라는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 촬영 나왔습니다

등록 2006.11.13 17:07수정 2006.11.15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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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얼마 전 텔레비전 출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미국의 공영방송 'PBS'라는 곳에서입니다. 시민기자의 활동상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망설이고 있는데 때마침 재미 교포인 김진곤씨에게서 안부 메일이 한 통 날아왔습니다. 그녀에게 곧바로 메일을 날렸습니다.

'미국의 PBS라는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 취재 요청이 왔는데 도대체 어떤 방송사냐, 만에 하나 북핵문제나 한미FTA에 관련돼 이용당할 염려가 있지 않겠는가?'

김진곤씨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알게 됐는데, 지난여름 휴가 때 우리 집에 다녀간 사람입니다. 뉴욕에 살고 있는 그녀는 조각가로 활동하면서 <서울신문>사 지사인 <스포츠서울> 뉴욕에서 '김치 김의 그림과 글이 있는 풍경'이란 컬럼을 연재(한 달에 2-4회 정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의 미국 이름은 'kimchi kim'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엘리자벳'이나 '제인'으로 살 수 없기에 스스로 터득한 한국냄새가 풀풀 나는 '김치김'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로부터 답장이 날아왔습니다. 수백 개의 미국 방송사 중에서 자신이 맘에 드는 방송사를 꼽으라면 바로 PBS(미국 교육방송으로 독립적이며 상업적이지 않은 기부로만 꾸려나가는 방송)라는 것입니다. 그 방송사 성격상 '이용당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답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메주를 쑤기 시작한 일요일. 바로 어제 그들이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서양인 프로듀서와 카메라맨, 그리고 리포터로 동행한 '바넷사'라는 중국계 미국인 전문기자와 한국인 통역자가 동행했습니다.

'PBS'에는 세계 각국의 요모조모를 소개하는 'world'라는 다큐멘터리 코너가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세계 인터넷 언론계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오마이뉴스>를 촬영하기로 했는데, 시민기자들 중에 나와 더불어 김혜원 기자와 또 다른 젊은 스포츠 기자의 활동상을 소개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들의 카메라 앞에서 아궁이 불을 지펴 가마솥에서 푹 삶은 메주콩을 절구로 빻는 모습을 보여줬고 재활용품으로 꾸며놓은 우리 집 곳곳을 소개하고 밭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랑방 작업실에서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송고하는 작업을 보여줬습니다. 그들은 다 쓰러져 가는 시골집에서 아주 빠른 인터넷을 통해 즉시 기사를 올릴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밭에서 케일이며 상추를 뜯어와 김치와 된장찌개로 늦은 점심을 하면서 그들의 질문 공세에 답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도시 생활을 접어 두고 적게 벌어 적게 먹고 살아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기사를 쓰고 있다고 했고, 그 외 시민기자로서의 활동과 북핵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물어왔습니다.

그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요약해 보면 대충 이렇습니다.

- 오마이뉴스는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가?"
"그동안 보수 신문들의 횡포에 바른 언론을 추구해 왔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 전문기자에 비해 오마이뉴스 원고료가 턱없이 적지 않은가?
"시민기자들은 대부분 직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고료에 큰 부담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적게 벌어먹고 사는 내 생활 방식과 맞아떨어진다. 많이 벌기 위해 이런저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적게 버는 만큼 뱃속 편한 생활을 하고 하듯이, 적은 원고료 또한 뱃속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오마이뉴스 원고료는 내가 방송 원고를 쓰는 것에 비하면 거의 백 분의 일 수준이지만, 오마이뉴스에는 방송사에서의 글쓰기와는 달리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어서 좋다."

- 전문기자들도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있질 않은가?
"물론 언론사에 소속된 전문기자들 역시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지만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쓰고 싶은 기사를 마음이 내킬 때 쓴다. 쓰고 싶을 때 쓴다. 또 댓글을 통해 독자들의 반응을 직접 접할 수 있어 좋다."

- 시민기자들은 전문기자들에 비해 활동 영역 등의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지 않는가?
"물론 당신들처럼 세계 곳곳에 다니며 폭넓은 취재는 할 수 없지만, 우리 시민기자들은 전문기자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큰 것을 쫓아다니다 보면 작고 소중한 이야기들을 놓칠 수 있다. 시민기자들은 전문기자들에 비해 기사를 작성하는 데 미숙한 면이 많지만, 자신들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다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다. 또 언제 어디서고 원고를 송고할 수 있다. 그래서 시민기자들을 뉴스게릴라라고 한다."

- 북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제 사회는 진실을 저버리고 결과만 놓고 따진다. 미국의 9·11테러가 왜 일어났는지 먼저 그 원인부터 생각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핵무기를 왜 만들게 되었는지 그 원인부터 따져야 한다. 힘이 센 어느 한 부류의 억압 속에서는 결코 국제사회의 평화와 공존은 존재할 수 없다. 나는 일상 속에서 그런 얘기들을 기사로 풀어내기도 한다."

그동안 <인간극장>을 비롯해 종종 방송 출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방송사 사람들은 <오마이뉴스>에서 많은 소재를 찾고 있는 모양입니다. 내세울 것도 없이 세상을 삐딱하게 살아가는 나 같은 시골 촌놈에게 어떻게 섭외가 들어왔겠습니까?

방송에 출연하고 나면 허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공연한 일을 저질렀구나 싶습니다. 어리석고도 어리석게도 후회가 막 급합니다. 정글 속 원주민들이 혼을 빼앗긴다는 이유로 사진 찍기를 거부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카메라 앞에서 주절거리고 나면 기운이 쪽 빠져나갑니다. 맥이 빠집니다.

그동안 거부해 왔던 방송출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에 대해 변명을 하자면, 세상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나름대로 얄팍한 속셈이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카메라에 찍히고 나서 되돌아보면 이 모든 것이 '부질없는 만용'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나는 우리 집 아이들에게 종종 말합니다.

'백 가지, 천 가지 뜻을 알고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실행하지 않는 지식 나부랭이들은 똥 막대기로도 쓸 수 없다. 되려 사람들을 현혹하기 십상이다. 천 가지, 만 가지 지식을 쌓는 것보다, 단 한 가지의 실천이 더 향기로운 것이다.'

말은 그럴 듯하게 하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 스스로 반성합니다. 이번에도 카메라 앞에서 메주 한 덩어리보다도 진실하지 못한 지식 나부랭이들을 지껄여대지는 않았나?

방송은 방송이고, 나는 오늘부터 열흘 내내 생계를 위한 메주와 청국장을 쑤어야 합니다. 아궁이 불 지펴 메주 쑤는 날은 장판이 녹을 정도로 구들장이 절절 끓습니다. 뻐근한 허리 지지는 데는 그만입니다.

우리 네 식구는 절절 끓는 아랫목에 등허리를 붙이고 쪼르륵 누웠습니다. '촌놈'이 카메라 앞에서 똥 폼 잡고 있는 동안 군소리 없이 메주 쑤는 일을 도맡아 한 아내에게 미안해 공연히 한마디 던집니다.

"괜히 촬영 했네벼, 그냥 메주나 쑬껄…."

덧붙이는 글 | '디카'가 고장나서 5년 전에 구입한 캠코더로 찍었더니 사진이 영 좋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디카'가 고장나서 5년 전에 구입한 캠코더로 찍었더니 사진이 영 좋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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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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