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맞이하는 북한 노동당원의 편지

<오늘의 북한 소식>에 담긴 따뜻한 동포의 목소리

등록 2006.11.14 08:38수정 2006.11.1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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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집중호우는 남북한 양쪽에 큰 피해를 남겼다. 최근 기온이 떨어지면서 집을 잃은 강원도 수재민들이 다가오는 추위에 고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컨테이너 촌에서 '월동대책의 일환으로 방풍장비 등을 설치하는 보강공사가 한창'이라는 소식을 방송이나 신문에서 접할 수 있었다.

반면 북한은 수재민 보호 대책이 없어 고민이란다. 북한돕기운동을 펼치고 있는 민간단체 '좋은벗들'이 11월 8일 발행한 <오늘의 북한 소식> 45호에 따르면, 겨울이 성큼 다가오면서 수재민들의 생계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어 간부들의 논의만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 소식지에는 비 피해가 컸던 신양과 양덕지구에는 그나마 최우선적으로 식량이 공급되다보니 아직까지 '꽃제비'들이 많지 않으나, 살림집 건설이 늦어지고 지원 식량이 떨어지면 꽃제비와 사망자가 급속히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게재됐다.

북한 수재민들은 현재 밭이나 산기슭, 무너진 집터에 초막이나 비닐박막으로 임시거처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또 밤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땔감과 모포, 옷가지, 겨울을 날 수 있는 비축 식량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고 한다. 수재민들은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생활 조건을 안정시키지 못하면 죽음 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살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고 이 소식지는 전했다.

특히 소식지 끄트머리에는 '한 노동당원이 보내 온 편지'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가슴뭉클한 이 편지의 전문을 옮겨본다.

한국에서 동포들이 보내준 지원물자인 시멘트, 모포, 옷가지, 약품과 식량이 수해지역 수재민들에게 분배되었습니다. 그 지원물자를 받고 물보다 진한 피, 핏줄이 같은 한국의 동포들을 감사히, 뜨겁게 생각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도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우리처럼 혹심한 수해를 입고도 어려운 동족을 살리기 위해 성의껏 보내준 한국동포들의 뜨거운 지원물자가 비록 정치적 제약에 지장을 받기도 했으나, 어쨌든 수재민들에게 전달되었고 동포애의 정을 깊이 느끼게 했습니다.

우리 북조선 정계나 한국의 정계에도 서로의 래왕과 교류, 협조와 지원, 통일을 바라는 좋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싫어하고 방해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 해도 불순한 마음을 가진 정치가들을 제외한 일반 백성들이야 무엇 때문에 원쑤처럼 등지고 멀리하며 살고 싶겠습니까. 민심은 이미 서로를 향해 있습니다.

수해 피해의 그 처참하고 어려운 시기에 한 핏줄을 나눈 한 강토의 형제들이 보내준 지원물자는 북조선 주민들에게 동포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가지게 하였으며 재생의 길로 나가도록 용기를 주었습니다. 지난 시기 다른 나라에서도 지원을 받아봤지만, 그 나라들은 준다는 명목으로 그것도 자기 나라의 리해 관계를 따져가며 생색내는 데 불과했으나, 이번의 지원물자는 아무런 의도도 없이 어려운 동족을 살리려는 뜨거운 민족애의 표현이었기에 주민들과 정계에서도 감사히 기쁘게 받고, 동포에 대한 믿음을 크게 할 수 있었습니다.

살기 어려워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낯 설은 남의 땅에서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다 조국 반역자의 루명을 쓰면서까지도 한국에로의 탈북기도를 한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오직 그곳만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을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살자고 고생하며 한 핏줄을 나눈 형제를 믿고 한국으로 간 백성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당 간부인 우리들도 한국에 쓸리는 민중의 기대와, 백성은 안중에 없이 정치권을 지탱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정계의 어지러운 처사를 분리해보는 눈은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의 지원은 민중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방향으로 나가야만 서로의 기대와 믿음을 지킬 수 있다고 봅니다. 지치고 약해지는 백성들을 멀리한다면 서로의 전망은 암담해질 것입니다. 백성들은 날이 갈수록 시들어가고, 가족과 사회가 날로 파산되어 가는데 정부는 여전히 고립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민심은 천심이며 민심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 했는데, 한국 동포들의 기대에 우리가 보답하고 우리의 믿음을 한국의 동포들이 지켜주어 다가오는 려명의 날을 함께 맞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믿습니다. 분단 50년 동안의 쓰리고 아픈 마음을 마음껏 터놓고 온 겨레가 다 모여서 이 세상을 자랑하며 살아갈 날이 오리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부디 저버리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자갈밭으로 변해버린 철길 옆 밭
자갈밭으로 변해버린 철길 옆 밭(사)좋은벗들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선언으로 한숨 돌렸다고는 하지만 북핵 문제, 위조지폐 문제, 북한인권 문제 등 쉽게 풀리기 어려운 난제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다. 떨어지는 기온처럼 얼어붙어가는 북한에 대한 관심에 온기를 넣기 위해 이 소식지는 '북한 동포는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는 논평을 함께 실었다. 논평의 일부 내용을 함께 옮겨본다.

남북관계는 앞으로도 갠 날과 흐린 날을 수없이 반복할 것이다. 관계가 나빠졌다고 지원을 중단하고, 좋아질 조짐이 나타났다고 금방 지원을 재개하다가는 명분도 잃고 신뢰도 잃게 된다. 북핵 실험의 충격은 남북관계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특히 인도적 지원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이제부터 인도적 지원은 철저히 정치적 사안과 분리해서 실행해야 한다. 뜸들이거나 망설여서도 안 된다. 북한 동포들이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얇은 비닐 천막 안에서 우리가 준 모포 한 장에 의지해 혹한에 떨며 죽어가도록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래서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의 대대적인 인도적 지원을 다시 한 번 간곡히 요청한다. 지금 북한 동포는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


수해 때 교각이 무너지고 상판이 날아가 버린 거흥의 다리
수해 때 교각이 무너지고 상판이 날아가 버린 거흥의 다리(사)좋은벗들
알려진 대로 북한은 1995년 이후 잇따른 심각한 자연재해와 외부적인 요인으로 식량과 의약품 공급이 충분하지 못해 많은 어린이들이 영양실조 상태에 놓여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 오늘 문득 '북녘의 그 아이들이 이 겨울을 어떻게 날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리고 나부터 '인도적 지원'에 대해 깊이 성찰해보아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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