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경로잔치와 같은 아름다운 동행이 아닐까?

동네 어른 모시고 연 제2회 경로위안잔치... 손녀와 손잡고 춤추는 할아버지

등록 2006.11.15 10:58수정 2006.11.1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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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아이들이 무대 앞 자갈마당에서 '만수무강하세요' 종이피켓을 들고 가요메들리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다. 흥에 겨운 할아버지가 91세 할머니와 지르박을 추고 있다.
중고 아이들이 무대 앞 자갈마당에서 '만수무강하세요' 종이피켓을 들고 가요메들리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다. 흥에 겨운 할아버지가 91세 할머니와 지르박을 추고 있다.최종수
숙제는 끝내지 않으면 더 진도를 나갈 수 없는 복습이다. 인생도 숙제와 같지 않을까. 사랑은 미루어둔 인생의 숙제와 같은 것일 때가 있다.


사람에게도 월동 준비가 필요하다. 첫눈이 내리기 전에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나눌수록 풍요해지고 훈훈해지는 사랑의 잔치가 그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일까. 걱정했던 날씨는 너무도 화창했다. 동네 어른들을 모시고 제2회 경로위안잔치(11월 12일)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일생을 이웃과 세상에 봉헌한 은퇴신부님들도 초대되었다.

머리에 두 손으로 만든 하트, 이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숲이 어디 있을까?
머리에 두 손으로 만든 하트, 이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숲이 어디 있을까?최종수
먼저 미사가 봉헌되었다.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다. 조립식 가건물의 초라한 성당에서 이러한 경로잔치가 열린 것은 무척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은퇴신부님의 강론 말씀에 "사랑합니다"라면서, 사랑의 숲을 이룬 신자들의 답사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어르신들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어 노래를 한 옥타브 높여 미성으로 불렀다.


"여기 당신 모셨사오니 사랑받으소서
우리 맘 우리 사랑 당신께 드리오니 받으옵소서
여기 당신 모셨사오니 행복하옵소서.
정성껏 모두 다 당신께 드리오니 받으옵소서.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민요 메들리를 하고 있는 국악봉사단원들.
민요 메들리를 하고 있는 국악봉사단원들.최종수
뜨거운 박수는 유치부 아이들을 제대 앞으로 초대했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랍니다." 유치부와 1,2학년 아이들의 춤 재롱은 경로잔치의 폭죽처럼 하늘로 올랐다. 앉아서 볼 수 없는 뒤편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일어선 풍경도 하나의 공연이었다.

3일 전부터 소머리 핏물을 빼서 끓이고 고기를 썰어 만든 소머리 국밥에 홍어회 무침, 약밥과 무지개 떡에 여러 나물, 사탕과 과일들. 어찌 막걸리와 소주, 맥주가 빠질 수 있으랴.

점심을 하는 동안 국악공연이 이어졌다. 어깨가 들썩이는 나홀로 사물놀이와 가야금병창, 사랑가와 민요 메들리에 소머리국밥과 막걸리가 술술 넘어갔다.

허리도 굽고 다리도 불편한 할아버지 이마의 깊은 주름 속으로 햇살이 파고든다. 눈이 부신 햇살처럼 할아버지 마음에도 훈훈한 사랑이 충만하게 채워지길 간절히 바라며 막걸리 한 잔 따라 드렸다.

식사를 하고 있는 동네 어르신들과 할아버지.
식사를 하고 있는 동네 어르신들과 할아버지.최종수
우리 성당의 보배, 중고생 아이들의 춤 공연이 이어졌다. '댄싱 아웃', '큐티 허니'에 이어진 '짠짜라'에 맞춘 율동은 자갈마당 무대로 어르신들이 뛰쳐나와 함께 춤을 추게 했다. 비닐하우스 식당 처마 밑에 앉아 있는 어르신들, 강남으로 가려는 제비들을 연상케 한다. 제비보다 즐거운 줄줄이 손뼉을 치고 있다. 얼마나 맛깔스런 풍경인가.

중고생들이 노래방 기계 앞에서 순서에도 없는 노래를 하고 싶다며 졸라댄다. 마지막 장식은 본당신부의 노래 순서를 아이들과 함께 부르기로 했다. '토요일은 밤이 좋아', '남행열차' 두 곡이 무대에 올랐다. 그 신부에 그 아이들처럼 무대는 들썩거렸다. 흥을 참을 수 없는 유치부 두 아이가 무대로 뛰어올라 왔다. 그야말로 멋진 경로위안잔치였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봉사는 언제나 즐겁고 젊게 만든다"는 두 자매님이 미용봉사를 해주셨다. 주방에서 이틀 동안 여러 준비를 한 어머님들, 다른 성당에서 천막과 탁자와 무대까지 빌려오고 밤늦게까지 설치한 빈첸시오회 형제들, 몇십 명의 봉사가 아름다운 잔치를 만들었다.

기적이 따로 있을까? 희생을 통한 사랑의 잔치가 기적이 아닐까!

자기 몸집보다 큰 배추를 안아 보고 있는 아이들 .
자기 몸집보다 큰 배추를 안아 보고 있는 아이들 .최종수
돌아가시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기념수건을 선물로 드렸다. 텃밭에서 노란 속살이 차오르고 있는 배추가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배추밭에 놀러 간 한 아이가 자기 몸집보다 큰 배추를 안아 본다. 덩달아 안아 보는 아이들이 배추밭의 나비처럼 앉았다. 가난의 향기 속에서 살찌는 아이들의 영혼을 보는 것 같다.

의자를 쌓아 차에 올리고 천막을 거두고 무대를 뜯는다. 행사를 진행해 본 사람은 안다. 준비하는 것보다 마무리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그러나 즐거운 잔치의 흥이 남아 있으니 마무리 또한 보람된 일이다.

마무리를 마친 형제들과 막걸리잔을 주고받았다. 행사 준비로 얼마나 긴장했을까. 긴장이 풀리자 몇 잔의 막걸리에 취한 형제님이 유치부 아이와 손잡고 춤추는 할아버지처럼 어깨동무 부축을 받으며 골목길을 걸어간다.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이처럼 인생은 경로잔치와 같은 아름다운 동행이 아닐까?

남행열차의 흥을 못 참겠다고 올라온 유치부 아이들, 그 신부에 그 아이들이 아닐까?
남행열차의 흥을 못 참겠다고 올라온 유치부 아이들, 그 신부에 그 아이들이 아닐까?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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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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