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만난 멜로 <90일 사랑할 시간>

감독, 작가, 연기자 삼박자 갖춰... 진부함을 설렘으로 바꿔

등록 2006.11.16 12:18수정 2006.11.1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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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윤지석으로 분한 강지환과 고미연으로 분한 김하늘

윤지석으로 분한 강지환과 고미연으로 분한 김하늘 ⓒ iMBC

진부한 드라마는 시청자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욕을 들으면서도 시청률 싸움에서는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예로 얼마 전 종영한 KBS드라마 <구름계단>은 상투적인 내용과 전개로 인해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았다. 반면 KBS드라마 <소문난 칠공주>는 방송 초기부터 끊임없이 비판을 받으면서도 30∼40%대의 시청률을 달리고 있다.

이같이 극단적으로 나뉜 것은 극중의 연기자와 작가가 어떻게 그려내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번 주 MBC <여우야 뭐하니> 후속작인 <90일, 사랑할 시간>이 방영됐다.

이 드라마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진부한 드라마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열쇠였다. 시청률과 작품성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지는 못하더라도 KBS <황진이>와 SBS <연인> 싸움에서 밀리지는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90일, 사랑할 시간>은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주 내용인 최루성 멜로이다. 사람들이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드라마를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드라마를 기획한 자체가 용감하다. 그렇게 밖에는 할 말이 없을 듯싶다.

그런데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슬픈 이유는 두 남녀가 사촌지간이란다. 같은 할머니를 두었지만 서로 모르고 성장해 고등학생이 되어 만난 현지석(강지환 분)과 고민연(김하늘 분). 그리고 중반이 흘러서는 헤어진 두 사람이 시한부 인생에 걸린 남자가 찾아와 사랑을 나누고 죽음을 맞이한다.

어쩜 저리도 진부한 설정을 딱딱 넣어놨는지 의심할 정도로 드라마에서 단골소재가 되었던 것들을 조합해냈다. 그나마 믿는 것은 SBS <피아노>에서 사람의 감정을 잘 살려낸 오종록 감독과 멜로의 여왕이라 할만큼 청순 대명사인(물론 최근에는 엽기적인 캐릭터를 많이 했지만 과거에는 최루성 멜로의 주인공이었다) 김하늘 밖에는 없다.


<90일, 사랑할 시간>의 매력은 김하늘과 강지환의 연기력

a 개구쟁이 고교생을 훌륭히 소화해낸 강지환

개구쟁이 고교생을 훌륭히 소화해낸 강지환 ⓒ iMBC

그런데 첫 방송 후 진부한 드라마 한 편이 다시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역시 오종록 감독의 감성은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는 듯싶다. 우선 이 드라마의 매력을 꼽자면 역시 김하늘과 강지환의 연기력이다.


사실 믿을 사람인 김하늘이 <피아노>와 <해피투게더>에서처럼 비슷한 연기를 한다면 이 드라마도 크게 가능성은 없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김하늘이 연기한 고미연은 고등학생부터 유부녀까지 연기를 해내야 한다. 어느 정도 스팩트럼이 넓어 제법 나이가 든 김하늘이 무난히 소화해 낼 여지가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김하늘은 이러한 우려를 씻어낸 듯 보인다. 풋풋한 여고생 역을 무난하게 소화해냈다.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더 배역 안에서 자유롭게 대사를 하고, 표정을 연기했다. 처음에는 윤지석의 눈길을 모른 체 하더니 조금씩 호감을 가지고, 사랑으로 변하는 순간을 멜로의 달인답게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제는 코믹한 이미지가 제법 쌓여 멜로와 멀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전작 SBS<유리화>에서 보여줬던 것보다 연기가 한발 나아갔다. 또한 윤지석과의 풋풋한 첫사랑의 만남과 설렘, 떨림을 흔들리는 눈동자에 담아낼 줄 아는 내공까지도 쌓인 듯싶다.

그리고 기대 이상의 개구쟁이 고등학생 연기를 한 강지환은 주목할 만하다. 처음 이성에게 설레지만 고백을 하지 못한 채 친구에게 대신 꽃을 전하게 하고, 비오는 날 우산을 씌워주기 위해 친구에게 자전거를 맡기는 모습 등 그녀 주위를 맴맴 도는 모습은 영락없는 고교생의 모습 그 자체였다.

또한 친구들과 야한 비디오를 보거나 야한 장면을 훔쳐보거나, 간간이 비속어가 터져 나오면서 함께 뒹구는 모습은 분명 고교생 특유의 모습인데, 이를 28살 성인이 연기한 것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리고 극적인 장면에서 감정을 폭발하는 신에서 발성이나 표정이 조금은 서툴렀던 것을 생각해 볼 때 ‘일취월장’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물론 아직은 완성형이 아니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더욱더 낳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와 함께 윤지석의 친구들로 나온 배우들의 감초연기는 일품이었다. 잔잔한 드라마에서 간간이 웃음을 줬으니,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 셈이다.

감독의 빼어난 영상미와 음악 그리고, 작가의 힘

a 사촌지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두 사람

사촌지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두 사람 ⓒ iMBC

오종록 감독의 빼어난 영상미와 음악도 잊을 수 없다. 아름다운 제주도 풍광을 비추며 윤지석과 고민연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는 바닷가 배경을 앞두고 조심스럽게 손을 잡는 신에서 감독 특유의 영상미를 재확인 할 수 있었다. 또한 음악도 첫사랑의 향수를 자극시킬만한 곡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진부한 드라마를 아름다운 드라마로 탈바꿈시킨 것은 바로 작가의 힘이 컸다. 분명 이 드라마는 진부한 늪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를 박해영 작가 본인도 스스로 알고 있는 듯, 내용 전개가 다소 빠르게 진행되었다.

첫 회에서 인물의 성격들을 보여주며 앞으로의 내용 전개를 암시하는 정도인데, <90일 사랑할 시간>은 캐릭터 설명과 함께 이들의 첫 만남과 헤어짐을 담아냈다. 즉, 빠른 전개를 통해 지루함을 다소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일상적인 언어와 감정들을 조합해낸 탁월한 솜씨는 칭찬할 만하다. 사실 첫사랑의 아련함이야 있겠지만 평생을 두고 사랑하는 이는 없다. 물론 마음 한편에 묻어두고 사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윤지석과 고미연의 첫사랑이 질긴 이유에 대해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표현해냈다.

“사랑은 마라톤이야!”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사랑하고 있었어.”

이처럼 일상의 언어들을 저렇게 감상적으로 바꾸어 놓은 대목이 이 드라마의 최고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방송 내내 윤지석과 고미연의 사랑을 일상적인 언어들이며, 서투른 고교생들의 고백도 보통 우리들이 흔히 쓰는 말들이다. 어떠한 미사어구보다 직설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게다가 늘어질 만한 부분에서 리듬 조절이 탁월했다. 짧고 명료하면서 직설적인 어법을 사용했다는 점과 자연스럽게 유머스러운 대사가 터져 나온다는 점이 그러하다. 물론 아직은 판단하기 힘들다.

첫사랑 향수를 불러일으킬 멜로의 방향은?

이 드라마가 그저 폐인드라마로 구사시(방송 전부터 90일 사랑할 시간을 줄여 만들어 놓았다)폐인이 양산되고 말지, 욕을 먹으면서도 시청률에서 선전할지는 말이다. 물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면야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의 선택은 작가의 몫이다. 작품을 그대로 유지하며 폐인드라마로 남을지, 부인을 버리고 첫사랑에게 남은 생을 마치고 싶다는 설정처럼 자극적이고 비상식적인 드라마로 만들어 시청률을 올릴지는 작가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해야겠다.

이러한 모든 것을 뒤로하고 첫 방송 후 분명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아련한 첫사랑의 향수를 잠시나마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거나, 사극드라마 열풍으로 지쳤던 차에 아름다운 멜로 한편을 봐서 가슴이 쿵쾅쿵쾅 뛸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도 송고함

덧붙이는 글 데일리안에도 송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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