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따라나선 아내 모임인데... 왜 미안한 마음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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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모임에도 안 가면 다시는 오빠모임에 나두 안 갈 거야! 그리고 친구들이 이번에도 오빠 안 오면 다시는,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데 어떻게 할 거야? 축구를 선택하든지, 날 선택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십여년 넘게 내 삶의 일부를 차지해왔던 축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주말의 하루는 축구화 함께 했던 나였기에 축구와 아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청천벽력같은 아내의 말에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아내를 만나고 사귄 이후로 아내의 모임에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나였다. 평일에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별을 보며 퇴근하고, 주말에는 유일한 낙인 축구를 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항상 아내가 모임 얘기를 꺼내면 슬며시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었는데, 아내도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었는지 나에게 최후의 통첩을 보냈다. 사실 아내의 친구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또 모임 자체가 부부동반의 성격인지라 아내만 혼자 보내는 것도 아내의 친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해서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황금 같은 주말 오후 보통 때면 야간경기를 하거나, 아니면 일요일 아침 운동을 위해서 달콤한 휴식을 취할 터였다. 그래서인지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시간을 보내며 따라나선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해서든 나를 데리고 가려고 하는 아내가 얄미운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전과(?) 때문에 차마 싫은 내색을 할 수도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처음으로 참석하는 아내의 모임인데, 모임자리에서 아내와 아내의 친구들에게 실망스런 모습은 보이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외곽순환도로에서 1시간여를 달려 시흥의 아파트단지에 도착했다. 아내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여자들의 모임이라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인지라, 만나는 사람들에게 깍듯한 예우는 지키고 나중에 술 한잔 하면서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그때 차차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고 아내의 친구들 부부와 마주했다.

배고프다고 엄마의 바지를 졸라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새삼 내 나이가 우스워지고, 아내의 나이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아내의 친구들은 벌써 아이들을 하나 둘 낳아 키우고 있고, 아내도 지금 뱃속에 아이가 있다.

▲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모두 아이 엄마가 되어서 아이들 챙기느라 얘기는 많이 나눴는지 모르겠네. ⓒ 노봉훈

아내는 친구 남편들이 있는 자리에 나를 팽개쳐두고 친구들과 그동안 하지 못했던 수다를 떨기 시작하고, 나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서먹함을 잊기 위해 다른 남편들 자리에서 소주잔을 돌린다.

"아유∼ 그동안 바쁘다고 튕기시더니 오늘은 무슨 일 있으시나 봐요?"
"아! 네∼"
"다음부터는 이런 모임에 빠지지 말고 나와요, 알았죠?"

조금은 서먹하지만 반갑게 건네는 첫마디에 소주 한 잔 들이켰다.

"글쎄요, 자주 이런 모임이 와서 서로 친해지고 그래야 하는데…. 제가 그동안 아내를 못 챙겨서요."

한 잔 두 잔 돌아가는 술잔에 서먹함이 없어지고 어느덧 여자들의 수다보다 남자들의 수다가 더 심해진다. 처음 만난 서먹함은 어디 갔는지….

"아유, 형님 소주 한 잔 받으세요."

한 잔 두 잔 술잔이 돌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들을 꺼내며 아내 친구들의 남편이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고향의 선후배처럼 또 다른 정이 쌓이기 시작한다.

▲ 오랜만에 만난 아내들보다 남편들의 모임인양 분위기가 남편들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간다. ⓒ 노봉훈

아빠는 삼겹살에 소주, 엄마는 삼겹살에 음료수와 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 아이들은 어디에 갔을까?

서너살 꼬마들이 식당에 들어오면 이곳저곳 휘젓고 다니는 것은 불변의 법칙인가 보다. 어린 꼬마 아이들은 잠시도 엄마 곁에 있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아빠는 적당히 올라온 취기에 세상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아이들을 안고 친구들과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며, 남편의 흉도 보고, 은연중에 남편자랑도 한다.

오랜만에 나선 모임인지 아내의 얼굴은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리고, 또 나를 이 자리에 얼마만큼 데려오고 싶어했는지 이제는 알 수 있을 거 같다. 처음 나서는 아내의 모임이라 서먹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내의 모임인지 아니면 남편들의 모임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다음에 이런 자리 있으면 또 불러주세요."
"에유, 이 사람아 이제는 자네가 늦게 참석했으니 자리 만들어야지."
"아 그런가요?"

▲ 술은 소주가 최고야! 오랫만에 만난 반가움에 한 잔 두 잔 마시며 시간은 흘러간다. ⓒ 노봉훈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게 벌써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왔다. 비록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그동안 만나고 싶었던 친구들을 만나 다정하게 수다 떠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한결 가볍고 편안해진다.

앞으로 또 모임이 생기면 이제는 아내가 먼저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나서자고 해야 할 거 같다. 내가 출근하고 난 다음 보통의 주부들처럼 집안일하고,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위해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챙겨주는 아내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최근 들어 부쩍 바빠진 회사일 때문에 아내와 대화할 시간도 많이 부족하고, 낯선 곳으로 이사와 혼자 지내는 아내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었는데, 오늘만큼은 행복하다. 그리고 이런 행복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