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인천앞바다에서는 국정원, 해경, 해군 등 관계기관요원 400여명과 경비함 18척, 헬기 3대, 공기부양정 2척, 고속보트 4척 등이 동원된 가운데 대규모 해상훈련인 테러위기대응통합훈련이 실시됐다. 당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참여문제로 정부가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실시된 이날 훈련에는 200여명의 참관인과 수십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훈련 전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봤다.오마이뉴스 권우성
노무현 정부가 심사숙고 끝에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정식 참여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자, 보수 진영에서 이를 강력 비난하고 나섰다. 이들은 정부의 방침을 두고 "북핵 불용은 말뿐이었다"고 비난하는가 하면, PSI 불참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게 되었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한국 정부의 결정에 대해 "존중하지만, 바뀌기를 기대한다"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한미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보수 진영의 이러한 반발은 예견되어 있었으나, 6자회담을 앞둔 중대한 시기에 왜곡과 침소봉대로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한국의 협상력을 '안'으로부터 유실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미 갈등=국제사회 '왕따'?
보수 진영이 의존해온 전형적인 수법은 한미 간의 갈등을 국제사회에서의 왕따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일례로 이들은 이라크 파병 논란이 벌어졌을 때, 한국이 파병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 미국의 주요 맹방이 이라크 파병은 고사하고 침공 자체에 반대했다고 해서 이들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이라크 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는 당사자는 침공의 당사자인 미국과 영국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중간선거 참패에서 알 수 있듯이 이라크 침공의 여파로 미국 국내에서조차 고립되고 있는 실정이다.
PSI 참여 문제도 그렇다. 보수 진영은 PSI 참여가 마치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의무인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나라는 유엔 회원국의 3분의 1 수준인 70여개국에 불과하다. 6자회담 참가국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도 PSI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또한 북한의 핵실험 직후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1718호 결의안에서도 PSI 참가를 의무화한 조항은 없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출입하는 선박과 항공기에 대한 검색 조항을 넣기를 원했으나,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보수진영의 '한국의 PSI 부분 불참=국제사회 왕따' 주장은 근거 없는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 물론 이러한 결정으로 인해 한미관계가 다소 불편해지겠지만, 이를 두고 '국제사회에서의 고립' 운운하는 것은 '미국이 곧 국제사회'라는 자신의 굴절된 세계관을 드러낼 뿐이다.
한미 양국의 북핵 위협 인식 차이
기실 한국의 PSI 부분 불참 방침은 북핵 문제에 대한 한미 양국 사이의 '위협 인식'의 차이를 드러내준다. 실제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이것이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 미국은 북한의 핵무장 그 자체보다는 북한이 핵 기술이나 물질을 테러집단이나 반미성향의 국가들에게 이전하는 것을 더 우려하고 있다. PSI는 바로 이러한 위협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으로서는 북한의 핵무장 그 자체가 중대한 위협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북핵 문제 '해결'이 최고의 전략 목표일 수밖에 없으며, PSI 참여 문제도 이러한 맥락에서 고려할 수밖에 없다.
즉, 정부가 PSI에 정식 참여하지 않기로 한 것은 우발적인 무력 충돌의 발생 우려뿐만 아니라, PSI 정식 참여가 6자회담을 앞두고 협상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되지 않고, 악화된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북핵 문제 해결에 사활적인 이해가 걸리 있고, 이를 위해서는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병행 발전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정부의 이런 결정은 상당한 타당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가 동맹국의 도리를 저버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