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뭐기에

이제 고3 부모의 고생 '삼매경'이 끝나는 걸까?

등록 2006.11.16 14:28수정 2006.11.1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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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수능대박을 기원하는 선물들.

수능대박을 기원하는 선물들. ⓒ 김재경

"미리미리 수험표와 주민등록증 챙겨 놓고 어서 자라."
"엄마! 나 불안해서 못 자겠어."



수능을 하루 앞둔 고3 딸애는 불안해하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험 잘 보라"는 전화가 계속 걸려오고,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들은 찹쌀떡. 호박엿. 초콜릿을 사오고…. 전쟁터라도 출전하는 분위기다.

약국에 들려 청심환을 사고, 평소 소화가 안 된다는 딸의 점심을 위해 죽을 사들고, 동동걸음을 걸었다. 수험생인 딸애만큼이나 덩달아 바쁜 하루였다.

밤늦게 찹쌀떡을 들고 찾아온 친척이나 이웃들에게 "아이가 자고 있다"고 돌려보내길 수차례 했다. 불안해하는 딸애를 푹 쉬게 하려는 마음에서였다.

자정이 될 때까지 딸애는 "엄마! 나 시험 잘못 보면 어떡해"라며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딸애는 서울에 있는 대학 호텔경영학과를 나와서 호텔리어가 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황금 같은 고2 때 학교폭력에 시달리며 학교를 떠나야했다. 공결 처리하며 전학이라는 극단 조치를 취하기까지 딸애와 우리 가족이 겪은 것은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이었다.

전학을 했지만 적응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계속 자퇴하겠다며 울부짖는 딸애를 지켜보는 고통은 피가 마르고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나날이었다. 그랬던 딸애가 수능을 본다니…. 그저 감개무량할 뿐이다.


불안해하는 딸애에게 청심환을 먹였다. 딸애는 수능을 잘 보라며 들어온 선물더미를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문제를 잘 풀라고 두루마리 휴지와 잘 찍으라고 포크를 친구가 줬다며 휴지와 포크를 내놓는다.

불안해하는 딸애를 꼭 끌어 않고 잠을 청했다. 새벽 4시 자명종이 울린다. 데운 죽을 보온병에 담아 딸애의 점심을 챙기고, 99점 맞으라고 콩나물국을 끓였다.

딸애가 수능을 잘 보길 간절히 갈구하는 마음에서 서둘러 새벽 예배에 참석했다. 날씨가 추우니 따뜻하게 옷 입으라며 딸애를 채근해서 차에 태웠다.

a 선배를 위해 밤까지 새우며 따끈한 음료수를 준비한 후배들.

선배를 위해 밤까지 새우며 따끈한 음료수를 준비한 후배들. ⓒ 김재경

딸애의 시험장소는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경기도 안양에 있는 평촌중학교였다. 하지만, 아파트 정문부터 밀리기 시작한 차량 행렬은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그래도 서둘러 나왔기에 조금은 여유가 있었다. 고사장 입구는 꽹과리와 북, 페트병을 두드리며 선배를 응원하는 후배들의 열기만이 한파를 녹이고 있었다.

a 교가를 부르며 응원하는 후배들.

교가를 부르며 응원하는 후배들. ⓒ 김재경

학교별로 10∼15명의 후배들이 모여 따끈한 차와 음료를 선배에게 건네며, "수능대박"을 외친다. 어제부터 여기서 밤을 새웠다는 흥진고 학생들은 "수리산 높은 기상 정기 받아서…"라는 교가까지 힘차게 부르며 응원 열기를 불태웠다.

교사들은 "실수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며 등을 토닥인다. 입실완료 시간인 오전 8시 10분. 경찰 오토바이를 탄 여고생이 주변의 시선을 받으며 황급히 들어선다.

얼마 전까지 주차장을 이루던 도로는 입실완료와 함께 평소와 다름없이 이내 한산해졌다. 하지만, 인근에 있는 관악정보고등학교 앞에는 여전히 학부형 몇몇이 한파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 있었다.

한 수험생의 어머니는 "아들이 서울의 모 대학교에 다니는데, 평소 실력이 안 나와서 휴학하고 반수했다"며 초조하게 학교 정문 앞을 서성거렸다.

오전 8시를 기해 모든 시험장의 교문이 일제히 닫혔다는데, 굳게 닫힌 교문 안에는 서너 명의 경찰관이 서성거린다.

a 한 어머니가 주민등록증을 경찰에게 전하고 있다.

한 어머니가 주민등록증을 경찰에게 전하고 있다. ⓒ 김재경

군포에 사는 한 수험생이 주민등록증을 챙기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참 후에 다급해진 어머니를 태운 경찰차가 학교에 도착했다. 수험생의 어머니는 주민등록증을 교문 창살 너머로 경찰관에게 전해주고 다시 경찰차에 올랐다.

모든 수험생이 시험을 잘 보길 갈구하는 마음으로 집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그때 경비원이 묵직한 쇼핑백 하나를 건넨다. 그 안에는 또 찹쌀떡과 호박엿이 가득 들어 있었다.

오늘로 고3 수험생을 둔 어머니들의 고생 삼매경이 끝나는 걸까? 그걸 자축하며 아마도 떡 잔치를 벌여야 할 듯하다. 시원함에 이어 허탈감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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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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