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삶이 호미곶에서 꽃 피어라

[동해안 여행기⑤] 감포항에서 호미곶까지

등록 2006.11.16 16:58수정 2006.11.1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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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대를 뒤로 하고 계속 31번 국도로 북진하면 나정해수욕장, 전촌해수욕장을 거쳐 감포항에 닿고, 감포항을 거쳐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구룡포항에 도달한다. 구룡포에 도달하기 전에 자그마한 해수욕장 옆을 지나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풍경이 있다.

소나무가 마치 머리칼처럼 서 있는 바위섬이 백사장 옆에 좌정해 있다. 일부러 차를 멈추고 길옆 구멍가게 문을 밀고 들어가서 물었다. 저게 무슨 바위섬이냐고- 그러나 이름이 없단다. 신창해수욕장 모서리에 이름없는 바위섬이 예쁜 수석을 모래받침 위에 올려놓은 듯한 자태에 지나는 길손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a 장기면의 신창해수욕장 백사장 옆의 수석같은 바위섬

장기면의 신창해수욕장 백사장 옆의 수석같은 바위섬 ⓒ 김영명


구룡포항은 해산물 집산항으로 해안을 따라 늘어선 횟집에서 갓 잡아온 싱싱한 횟거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또 구룡포 일대가 과메기 생산지로 유명하다. 과메기는 꽁치와 청어같은 등 푸른 생선을 동절기에 자연 건조시켜 만든 것으로, 예전에는 청어가 주 원료이었으나 1960년대 이후 청어가 잡히지 않자 꽁치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소천소지>에 실린 과메기에 얽힌 설화를 보면, '동해안 지방의 선비가 겨울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다가 민가는 보이지 않고 배는 고픈 참에, 마침 해변 가 언덕 위에 생선이 나뭇가지에 눈(目)이 꿰인체 얼 말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찢어 먹었더니 너무나 맛이 좋았단다. 그 후 과거를 보고 내려온 선비는 겨울철에는 청어나 꽁치 등 눈(目)을 관통할 수 있는 생선에 눈을 꿰어 얼 말려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과메기의 어원이 관목(貫目)인데 이 관목이 관매기-과메기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a 과매기 건조장-통채로 말리는 것과 세로로 갈라서 말리는 것 두 가지

과매기 건조장-통채로 말리는 것과 세로로 갈라서 말리는 것 두 가지 ⓒ 김영명


과메기의 전통적인 가공방법은 사리나무 같은 가는 나무로 꽁치의 눈을 꿰뚫은 다음, 처마 밑이나 부엌의 봉창 부근에서 연기에 그을리면서 말리는 과정에서, 밤 동안 얼었다가 아침 밥하는 불에 녹고, 이렇게 얼고 녹는 것이 반복되고 또 부엌연기에 의한 훈연효과도 곁들이는 것이 옛날식 전통방법이다.

그러나 요즘은 짚으로 꽁치를 양편으로 묶어서 별도로 설치한 대형 건조덕장에 일렬로 걸어놓아 말린다. 최근에 들어서는 일손부족으로 생선의 배를 가르는 수작업 등은 기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건조기간은 대게 14일~16일 정도 걸린다. 가장 좋은 건조조건은 최저온도 -10'c , 최고온도 10'c , 풍속 10m/sec, 습도 30 ∼ 40%에서 건조기간 10∼12일 정도면 꽁치의 수분이 35∼40%정도 되므로 먹기에 가장 알맞은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 외 해산물로 전복, 해삼, 성게, 돌미역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특히 구룡포 전복은 자연산 전복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고 맛이 좋기로 이름나 있다.

a 성화대 앞에 새 천년의 불씨가 영원히 타고 있다.

성화대 앞에 새 천년의 불씨가 영원히 타고 있다. ⓒ 김영명


구룡포항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가면 포항시내로 들어가지만 925번 지방도로를 타고 해안선을 따라 북진하면 호미곶 마을로 들어선다. 호미곶 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는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에 속한다.


호미곶은 말 그대로 호랑이 꼬리라는 뜻으로 한반도를 호랑이로 묘사했던 조선 중기 풍수지리학자 남사고(南師古)의 ‘동해산수비록’에서 백두산은 코로, 호미곶은 꼬리로 비유한데서 나온다. 원래는 이곳을 말갈기 같다고 하여 장기곶이라고 불렀는데(일제시대에는 토끼꼬리로 불려지기도 했다) 2001년 12월 24일부로 호미곶이 공식명칭이 되었다.

새천년(2000년)을 맞아 한민족 해맞이 축전 행사의 일환으로 조성된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는 기념조형물로 ‘성화대’ ‘상생의 손’ ‘천년의 눈동자’ ‘연오랑과 세오녀’ ‘밀레니엄 조형시계’ 등이 설치되어 있다. 2000년의 새 시대를 맞아 세워진 ‘상생의 손’이 의미하는 것을 간추려보면,

a '상생의 손'- 왼 손은 육지에 오른 손은 바다에

'상생의 손'- 왼 손은 육지에 오른 손은 바다에 ⓒ 김영명


지난 천년이 극단주의와 양극화시대이며 갈등과 배제(한 손의 시대)의 시대라면 새 천년은 시간과 공간, 자유와 평등, 개인과 공공, 문명과 자연이 화해하고 상보하며 함께 사는 상생(두 손의 시대)이라는 새천년의 기념정신을 상징한다. 오른 손은 여성과 논리를 중시하고 환원적이며 서구적인 패러다임을 상징하고, 왼 손은 감성과 직관, 상호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적 패러다임을 표상한다.

동쪽바다 위에 돌출된 오른 손은 손가락을 넓고 강하게 펼침으로써 햇살의 이미지를 양식적인 방법으로 상징화하였으며, 왼 손은 공공조각의 기능을 살려 관객이 만지고 느낄 수 있는 환경조형물의 역할도 동시에 고려한다. 오른 손(바다)의 만질 수 없는 정신성과 왼 손(광장)의 만질 수 있는 물질성의 대비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 새천년을 지켜갈 어떤 강한 이미지를 표출한다.


성화대에는 새천년의 불씨를 보관하고 있는데, 변산반도에서 채화한 20세기 마지막 불씨, 독도에서 채화한 즈믄해의 불씨, 영일만 호미곶에서 채화한 새천년 시작의 불씨 등을 합쳐 영원의 불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

a 삼국유사 설화에 나오는 '연오랑과 세오녀 상'

삼국유사 설화에 나오는 '연오랑과 세오녀 상' ⓒ 김영명


연오랑과 세오녀의 조각상은 삼국유사의 옛 설화(이 설화가 일본의 건국신화와 관련이 있다고 함)를 상징적으로 형상화 시켰는데, 바닥 조형물은 영일만과 동해의 물결(파도)을 상징하고, 조각상의 좌대는 두 사람을 일본에 싣고 간 바위, 원형의 둥근 조형물은 이 땅을 밝게 비춰주는 해와 달, 원형 조형물 중앙의 검은 부문은 일본에 전파한 선진 문물인 비단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모든 조형물은 인간이 홀로가 아닌 더불어 살아야할 강한 메시지를 주고 있지만, 해안에서 불어오는 세찬 해풍에 청동으로 옷 입혀진 상생의 손이 진초록으로 녹 쓸어 가듯,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이렇게 각박해서야- 다름을 못 견디고,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옹졸함이 우리들을 슬프게 한다.

정말이지 자본주의도, 세계화도, 무한경쟁도 다 좋다. 그러나 성장만이 전부가 아니잖는가. 함께 사는 삶이 무너진다면 짐승이 사는 정글의 세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상생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이 호미곶이 앞으로 화합과 상생의 세계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a 등대 박물관과 호미곶 등대의 전경

등대 박물관과 호미곶 등대의 전경 ⓒ 김영명


해맞이 광장 주변에 풍력발전기 1기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고 있고 또 그 앞쪽에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같은 호미곶등대(높이26.4m)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등대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박물관은 한국 등대의 발달사와 각종 해운자료 등 소장품 320종 3000 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서쪽 호미등을 마주 바라보고 있는 호미등유래비(虎尾嶝由來碑)가 세워져 있는데, 그 비문(碑文)은 아래와 같다.

大甫(대보)는 옛날부터 自然景觀(자연경관)이 수려하여 六堂 崔南善先生(육당 최남선선생)의 朝鮮常識地理(조선상식지리)편에 大韓十景中(대한십경중)의 하나로 기록하고 있으며, 朝鮮明宗朝 風水地理學者 格庵南師古山水秘錄(조선 명종조 풍수지리학자 격암 남사고 산수비록)에서도 이곳을 虎尾嶝(호미등)이라하여 범꼬리라 부른다.

a 호미곶 지도

호미곶 지도 ⓒ 김영명


해맞이 광장이 있는 대보리는 대천과 보천을 합해서 지은 행정명이다. 봉화봉에서 흘러내린 벌내(보천)가 구만리와 경계를 이룬다. 구만리는 호미곶 가장 끝머리에 위치한 부락으로 솥발이개, 우물개, 큰개, 까꾸리개 부느리개 등의 자연적 지형의 특징을 나타내는 어촌이 산재해 있다.

구만리라는 이름도 호랑이꼬리 부위 지형이 굽이친 곳이란 뜻,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의미의 그만이란 뜻, 거북이가 많이 서식하던 곳이라 하여 구만(龜滿)이란 뜻, 구릉지가 많다(丘滿)는 의미, 아주 멀고 까마득한 곳이란 뜻 등 다양한 어원을 갖고 있다.

구만2리에 속하는 까구리개(鉤浦)는 이 지역에 풍랑이 심할 때 청어 떼가 뭍으로 밀려나오는 경우가 허다해서 갈고리[까꾸리는 사투리]로 끌어 담았다고 해서 부쳐진 이름이다. 조상들의 정감이 담긴 우리 고유의 지명들이 한자식의 지명으로 개악된 것이 아쉽다.

a 영일호미수회에서 해안에 심은 곰솔

영일호미수회에서 해안에 심은 곰솔 ⓒ 김영명


구만1리 마을에서 912번 도로를 벗어나서 방파제가 있는 포구 쪽으로 들어가면 좁은 해안도로가 나온다. 이 해안도로 양편에는 어린 곰솔(해송)들이 많이 식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영일호미수회’(회장:서상은, 1990년 창립)라는 민간단체가 ’호랑이 꼬리에 털을 심자‘라는 슬로건을 걸고 17년째 나무심기를 계속하고 있는데, 올해에도 곰솔 및 편백나무를 4천여 그루 심었다고 한다.

바람이 센 곳이라서 방풍막까지 설치하여 어린 나무를 보살피고 있지만 활착상태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언젠가는 해안이 울창한 곰솔 숲으로 변모될 날이 올 때 그 때 지금 어린 나무를 심었던 사람들을 후세 사람들이 기억할는지.

이 도로를 따라가면 해안가에 낯선 기념비석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07년 9월에 일본 동경수산강습소 실습선(쾌응환)이 조난당한 곳으로 처음 세운 비석은 해방 후 훼손되었다가 1971년에 일본 유족보존회가 다시 세웠다고 한다.

a 마고할멈의 전설이 담겨있는 다릿돌(교석초)

마고할멈의 전설이 담겨있는 다릿돌(교석초) ⓒ 김영명


이곳은 풍랑도 거셀 뿐만 아니라 암초도 많다. 큰개 마을 앞바다에 다릿돌(矯石礁 교석초)이 있는데, 예전에 마고할멈이 영덕 축산에 사는 영감을 만나기 위해 돌다리를 놓아가다가 약정한 시간인 닭울음소리가 날 때까지 다 놓질 못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작년(2005년)에도 이곳에서 화물선[4천톤급]이 좌초한 일이 있었다.

조난기념비 옆으로 계단을 딛고 내려가면 해안가에 앉아있는 독수리를 닮은 ‘독수리바위’를 발견한다.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해안바위의 형상이 독수리 부리를 닮았다하여 주민들이 붙인 이름이다. 그리고 그 앞 쪽으로 악어형상의 악어바위도 볼 수 있다.

호미곶에서도 땅 끝머리인 이곳에서는 일출은 물론, 석양의 아름다운 노을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한 곳이다. 태양이 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일몰이 아니어서 아쉬운 감은 있지만, 영일만을 감싸고 있는 맞은 편 먼 육지의 아스라한 곡선위로 내려앉는 석양의 모습도 기억에 남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a 까꾸리개 마을 해안에 있는 독수리 바위

까꾸리개 마을 해안에 있는 독수리 바위 ⓒ 김영명


도로도 보수하고 키큰 나무도 심고 해안청소도 하고 바닷가로 내려갈 수 있는 오솔길 정도로만 다듬어도 훌륭한 관광지로 손색이 없겠다. 아서라! 또 개발한답시고 길 넓히고 해안 허물고 건물 세우고 시멘트 바르고 하면 그걸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서 해안선(925번 도로)을 따라 호랑이 꼬리를 한바퀴 돌아 나오는 거리가 16km이다. 도중에 동해면을 거치면서 해안에 서 있는 장군바위, 선바위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여행에 몸이 지쳤으면 약전3거리 못미처 임곡리에 임곡해수탕이 있어 잠시 뜨거운 물에 피로를 풀 수도 있겠다. 다시 발길은 포항 쪽으로 방향을 틀어 포철을 거쳐 동해 쪽으로 돌린다.

덧붙이는 글 | 호미곶 해맞이 광장 주변의 숙박업소에는 민박들이 많다.
사계절민박[3실.054-284-9998],송림촌[콘도형.11동.054-284-6600],해뜨는마을[3실.054-284-1229],해맞이훼밀리하우스[8실,054-284-3338],구만1리직영민박[1실.054-284-5056],해오름민박[7실.054-284-9790],김평도민박[3실.011-534-9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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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민박[3실.054-284-9998],송림촌[콘도형.11동.054-284-6600],해뜨는마을[3실.054-284-1229],해맞이훼밀리하우스[8실,054-284-3338],구만1리직영민박[1실.054-284-5056],해오름민박[7실.054-284-9790],김평도민박[3실.011-534-9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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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어난 해: 1942년. 2. 최종학력: 교육대학원 교육심리 전공[교육학 석사]. 3. 최종이력: 고등학교 교감 명퇴. 4. 현재 하는 일: '온천세상' blog.naver.com/uje3 (온천사이트) 운영. 5. 저서: 1권[노을 속의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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