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스러운' 학교에 태클을 걸다?

중·고교를 자퇴하고 자신의 꿈을 찾는 두 사람

등록 2006.11.21 18:59수정 2006.11.22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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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를 가기 위해 나서고 있다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를 가기 위해 나서고 있다 ⓒ 이진선

"솔직히 수능 한 가지만 본다고 하면 학교 안 다니는 것이 더 도움이 되요. 하지만 내신을 따기 위해 학교를 다녀야 하죠. 학교에서는 음악, 체육 등 예체능까지 이론이며 실습이며 다해야 합니다. 이런 것 수능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잖아요. 근데 또 거기다 논술까지 잘 해야 합니다. 도대체 우리보고 내신, 수능, 논술까지…. 만능이 되라는 건지."

얼마 전 고등학교를 자퇴한 민혁(가명·17·남)이의 한 숨 섞인 말입니다. 민혁이가 자퇴를 결심한 이유는 학교와 맞지 않아서였습니다. 그게 바로 고등학교 2학년인 올해 여름이었습니다. 하지만 민혁이는 단지 공부가 싫어서 학교를 그만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학교 교육에 대한 회의감이 컸던 거죠.

부모님은 반대하셨지만...

학교를 그만두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역시나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장은 그래도 따야 하지 않겠느냐, 학교에 있으면 분위기에 휩쓸려서라도 공부를 하지 않겠냐'는 것이 민혁이 부모님의 생각이셨습니다.

부모님은 무엇보다 '자퇴'라는 단어를 가장 두려워 하셨습니다. 아마도 '자퇴=문제아'란 사회의 고정관념 때문이었겠지요. 하지만 민혁이는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고, 부모님도 민혁이의 뜻을 이해해 주셨습니다.

학교를 그만 둔 민혁이는 현재 집에서 공부를 하면서 지역 시민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민혁이의 얼굴이 환한 것을 보니, 요즘 자신의 생활에 꽤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민혁이는 대학에 진학해 자신의 관심분야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비싼 대학 등록금을 내고 높은 학점과 졸업장을 받고도 취업을 못해 쩔쩔매는 요즘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민혁이도 혼란스럽다고 고백합니다.


"요즘은 대학이 넓은 학문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오직 취직을 위한 통로라고 말하잖아요. 취업을 하더라도 비정규직이고 또 구조조정으로 쫓겨나고. 과연 대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 지 고민해 봐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학점에만 매달리는 대학생들


a 수능 시험장을 알리는 안내문

수능 시험장을 알리는 안내문 ⓒ 이진선

민혁이와는 다르게 부모님의 권유로 중학교를 자퇴한 현미(가명·21·여). 현미의 부모님은 현미가 중학교 2학년 때 외국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고, 현미도 그것에 동의해 중학교를 자퇴했다고 합니다.

현미의 부모님은 여행을 통해 배우는 경험이 더 큰 교육이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입니다. 부모님을 따라 나선 현미는 이후 1년 동안 여러 나라를 여행했습니다.

현미는 여행을 마친 뒤 복학을 하려했지만 또래 친구들보다 2년이나 늦어 결국 중·고등학교 모두 검정고시를 봤고, 또래 친구들보다 2년 먼저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현재 현미는 대학을 졸업하고 지역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현미의 '대학 진학'이 쉬워보일지 모르겠지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통로가 오로지 '수능'밖에 없어 약간의 애를 먹었습니다. 특히 수능이 끝난 뒤 모대학교에 면접 보러갔을 때 있었던 일은 약간 황당했다고 합니다.

"면접을 보는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시의 제목을 읊어보라고 했어요. 대답을 못하니까 이번엔 청산별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읊어보래요. 결국 면접에서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하고 나왔어요. 왜 그런 걸 물어보는지 당황했죠. 대학에선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거죠? 그걸 다 외워서 대답하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난 단지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려고 대학에 들어가려 했던 건데 나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주지도 안더군요."

결국 현미는 그 대학에서 떨어졌습니다. 이후 다른 대학에 들어갔지만 현미가 생각한 대학과, 현실의 대학은 많이 달랐다고 합니다.

"공부 방식이 정형화되어 있어요. 이게 정말 대학인가 싶었죠. 한 마디로 허무했어요. 학점만 해도 그래요. 출석만 잘 하면 A+나온다느니, 교수랑 친해지면 점수 잘 준다느니 얘기하면서 다들 그런 식으로 학점 관리를 하니…. 공부를 하기 보다는 학점을 좋게 얻기 위해 수업을 고르는 것처럼 보였어요."

무조건 대학에 가야하는 시스템

현미는 무조건 대학을 가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사회 시스템'이 문제라고 이야기합니다.

"보통 대학을 왜 가야 하느냐고 물으면 취직할 때 고졸과 대졸의 연봉이 차이 나지 않냐고 말해요. 사회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만들고 있어요. 무조건 대학을 가야 하는 사회로 말이에요. 직장에서도 대학 나온 사람을 원하고, 그러다 보니 대학 안 가고도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줄어드는 것 같아요. 대학을 벗어나 당당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회가 가로막고 있는 거죠."

그래서 현미는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힘들어했습니다. 남들보다 앞서 직장생활을 한 탓도 있겠지만, 사회 시스템에 적응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지요.

"일하기 전에 의문이 들어서 "왜"냐고 물어보는데 다들 그냥 하라고 말해요. 오히려 그렇게 물어보는 내게 버릇이 없다면서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더라구요. 처음엔 그게 힘들었어요."

사회의 고정된 시스템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충돌을 빚어, 힘들기도 하고 고민이 되기도 한다는 현미와 '자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문제아'로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하다는 민혁이.

하지만 그들은 지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그것으로 인해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회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당당하고 활기차게 자신의 길을 향해 뚜벅 뚜벅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특별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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