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댑싸리', 우습게 보지 마세요

등록 2006.11.20 13:49수정 2006.11.2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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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안치려고 부엌에 섰는데, 화장실 문을 열고 어머니가 나오셨다. 밤새 앓았는지 얼굴이 푸석푸석하다.


“어디 아프세요?”
“말도 마라. 내가 또 오줌소태가 났지 뭐냐. 약을 먹어도 그 때 뿐이니 원.”

얼핏보면 일흔 넷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피부도 곱고 흰 머리 하나 없이 정정한데, 연세가 연세인지라 어디 아프지 않은 데가 없다. 게다가 요새처럼 갑자기 날이 추워지기라도 하면 곧잘 오줌소태까지 앓곤 한다.

엉거주춤 다리를 끌 듯 걸어서 다시 방으로 들어가시는 어머니의 등이 시렵다. 문득, 오줌소태 자주 앓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적엔 상처가 나도 빨간 ‘아카징키’를 바르는 것 외엔 아파도 별다른 약을 쓸 도리가 없었다. 감기에 걸리면 그저 뜨끈한 아랫목에 등짝이 노랗게 익도록 누워 지지면 되고, 배탈이 나면 바늘로 사지를 열고 사이다 한 모금 꿀꺽하면 그만이던 그때의 오줌소태 치료약은 바로, 싸리나무였던 것이다.

출근하자마자,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내가 다니는 회사 주변의 몇 안 되는 허름한 농가 주위를 서성거렸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은 황량했다. 바람이 불어와 은행나무 가지를 흔들더니, 우수수 냄새 고약한 은행들을 떨궈냈다.

마침 밖을 내다보고 있던 늙은 할머니 한 분이 양은 냄비를 들고 달려 나와 열심히 은행을 주워 담았다. 그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할머니, 혹시 이 근방에 싸리나무 있나요?” 고개를 든 궹한 눈빛의 할머니는 저만치 비키라는 표정일 뿐, 아무 말이 없다. 그저 묵묵히 은행만 주울 뿐.


쌀쌀한 바람 부는 밭 둔덕에 앉아 열심히 김장 배추를 다듬는 중년 부부에게도 물었다.

“혹시, 이 근방에 싸리나무 있나요?”
“싸리낭구가 요새 어딨어. 빗자루 맹그는 거 말하는 거지?”
“네.”
“요새같이 빗자리 흔한 세상에 멀라 낭구를 심어. 글고, 그 씨 얻기도 심들어.”


아무래도 오줌소태와는 거리가 먼 양반인가보다. 그 나무의 효능을 알지 못하는 것을 보니.

체념을 하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어린 시절 내가 본 것과 비슷한 싸리나무를 발견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뿌리째 뽑아 비닐에 담아 들고 오며 길 가는 노인분한테 물으니 그 싸리나무가 아니란다. 허탈하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검색창을 띄워, ‘싸리나무’를 입력하니, 싸리나무 효능에 대한 글들이 주르르 올라왔다. 그래, 맞어. 내가 바르게 알고 있네. 그 나무를 가지째 삶아 국물을 서너 주발 마시고 나면 거짓말처럼 낫더랬지.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배뇨와 방광염에 효능이 있다는 말은 맞는데 올라온 이미지는 내가 기억하는 싸리나무가 아니다.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 건가. 긴가민가 싶어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댑싸리’란다. 때마침 오줌소태 난 친정 엄마를 위해 아버지가 어디선가 수소문해 얻어 놓으신 게 있으니 택배로 부쳐 주신단다.

어른들을 모시고 살 때, 가장 많이 마찰을 많이 빚는 것이 바로 ‘약의 남용’ 부분이다. 순전히 내 고집이기는 하지만, 나는 양약이란 그저 상처 난 부위를 수습하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잠시의 고통을 참지 못해 약을 복용하다 보면 그만큼 약에 대한 내성도 떨어질 뿐더러, 더 자주 질환을 앓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도 웬만해서 병원에 데려 가거나 약을 먹이지 않는 나로서는 식탁 위 한쪽을 늘 차지하고 있는 흰 약봉지가 안타깝다.

연세가 드셔서 고통에 대한 저항력인 떨어진 어머니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약으로만 땜질해서야 되겠는가. 물론 예전처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가 부족하고 환경오염으로 인해 더 많이 질병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럴수록 강인한 내성을 기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위해 집에서 자주 탕약도 달여드리고, 건강원에서 양파즙도 내려드린다. 덕분에 전보다 체력이 많이 좋아지셨다.

양약처럼 바로 낫는 듯한 즉효는 없어도, 다행히 ‘댑싸리’ 달여 드신 어머니는 3일 후에 쾌차하셨다.

덧붙이는 글 | *‘댑싸리’는 명아주과에 속하는 1년생 풀로, 어린 잎은 나물로 쓰고 줄기는 이뇨제로, 열매는 강장제로 쓰인다고 한다. 싸리비를 만들지만 싸리나무는 아니기 때문에 ‘댑싸리’ 혹은 ‘대싸리’ 라고도 한다.

덧붙이는 글 *‘댑싸리’는 명아주과에 속하는 1년생 풀로, 어린 잎은 나물로 쓰고 줄기는 이뇨제로, 열매는 강장제로 쓰인다고 한다. 싸리비를 만들지만 싸리나무는 아니기 때문에 ‘댑싸리’ 혹은 ‘대싸리’ 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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