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보고 '오빠'라니...장난인 줄 알았어요"

[뉴스게릴라를 찾아서 ⑪] 어머니 위해 치매치료법 개발하는 나관호 기자

등록 2006.11.21 22:37수정 2006.11.21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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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나관호 기자

나관호 기자 ⓒ 한성희

나관호(43·경기 파주시 교하읍) 시민기자를 취재하러 가면서 궁금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올해 7월 12일 쓴 첫 기사 '어머니 머릿속에 지우개가 생겼습니다'를 시작으로 '짧은 글 긴 이야기' 시리즈와 서평 등 불과 4개월 동안 쓴 기사가 모두 65편. 그 중 치매 어머니 기사만 30여 편.


단연 궁금한 것은 나관호 기자의 어머니였다. 기사에서 보았던 곱디고운 모습과 정성을 다해 어머니를 돌보는 나 기자의 일상이 궁금했고 목사라는 직업 또한 호기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 연구소장이기도 하다. 가장 궁금했던 의문도 있지만 나중에 묻기로 하자.

한 식당에서 점심을 나누며 처음 만난 나 기자는 밝은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은, 약간 터프(?)한 차림으로 등장했다. 양복 입고 넥타이를 맨 전형적인 목회자의 모습일거라는 내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어머니... 꼭 모시고 나오려고 했는데..."

젊은 얼굴과 다정다감한 말투지만 패기와 추진력을 엿볼 수 있는 나 기자의 본래 성품을 숨기기는 어려웠다. 볼링과 탁구를 즐기는 스포츠맨이기도 하다.

"목사님이라서 좀 고리타분한 모습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스포티한 패션이네요."
"하하, 그런가요?"


a "안될 일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더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요."

"안될 일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더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요." ⓒ 한성희

파주시 중앙도서관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던 나관호 기자가 유쾌하게 웃었다.

"현재 목회는 하고 있지 않아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신학을 다시 공부해 목회자로 9년을 지냈지만 현재 나관호 기자는 기독교인들의 책을 출간하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을 운영하고 있으며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어머님이 참 고우시던데요. 만나 뵙고 싶었는데 서운하네요."
"꼭 모시고 나오려고 했는데 몸이 편찮으셔서 못 나오셨어요."

나관호 기자를 말할 때 어머니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기도 하고 단 몇 개월 만에 주목받는 시민기자가 된 것도 어머니에게 진솔하면서 보기 드믄 효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본인은 "사실 저는 남에게 자랑할 효자도 아니"라며 "다만 치매라는 병을 가지고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그 병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6개월 시한부 어머니, 한때 임종 준비해

올해 82세, 치매라는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안 것은 2년 전이었다. 새벽에 거실에서 새벽기도를 드리던 나 기자에게 방에서 나온 어머니가 "오빠!"라고 부르기에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고.

증세가 심상찮다는 걸 알고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치매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후 나 기자는 치매노인들에게 별다른 치료요법이 개발돼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손수 연구하고 치료에 나섰다.

a 어머니의 일상

어머니의 일상 ⓒ 나관호

"제 어머니는 그래도 보행이 가능하고 다른 분에 비해 별다른 증세가 나타나지 않아 건강하신 편입니다. 아주 심한 분의 가족들에게는 오히려 미안하지요."

겸손해 하는 나 기자. 그가 개발한 '퍼즐 맞추기'는 뇌 활동이 필요한 치매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여러 번 되풀이해서 가르쳐주는 반복성훈련, 치매환자에게 좋은 12가지 음식 등을 찾아낸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 사랑이었다.

"물론 반복성 훈련 힘들죠. 반복해서 알려드리고 스트레스를 주지 않게 엉뚱한 말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작년 6월 어머니는 관절수술을 받았다. 너무 연로해 뼈가 붙지 않으면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준비해야만 했고, 병원에서 권하는 음식제한을 무시하고 좋아하는 거 다 해 드리고 맛있는 거 다 잡수시게 하는 방법을 택했다.

4형제를 잃고 마지막 남은 나관호 기자 한 명만을 바라고 산 홀어머니. 어머니의 사랑과 아들의 효심이 하늘에 닿았던가. 병든 노모는 기적같이 6개월을 넘기고 지금도 건강하게 살고 계시다.

왜 부인 얘기는 없을까

a 나관호 기자

나관호 기자 ⓒ 한성희

이제 가장 궁금했던 일을 묻기로 하자. 나관호 기자의 기사를 보면서 그동안 가장 궁금했던 일은 부인에 대한 일이었다. 기사를 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그의 기사에는 부인 얘기가 거의 언급돼 있지 않다.

혹시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조심조심 물어봤더니 의외로 활짝 웃으며 시원스레 대답해준다.

"저희 부부가 맞벌이인데요. 제 아내가 꼼꼼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라 자신이 집에서 모시면서 직접 돌보지 못한 데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나 봐요. 그래서 기사로 쓰는 것을 싫어했어요."

동갑내기인 부인과 연애결혼해서 두 자녀를 두어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괜히 엉뚱한 상상을 해서 미안했다. 부인은 현재 한국무용 강사로 대학 강단에 서고 있다. 부인과 나관호 기자는 쉬는 날 번갈아가며 어머니를 돌본다.

"아내 집안이 군인가족이라 그런지 절제가 강했어요. 비누 한쪽에 은박지를 붙여놓고 세 번만 문질러서 쓰는 등 처음엔 저와 충돌이 많았죠. 저는 치약을 가운데 꾹 눌러 쓰는 버릇이 있는데 아내는 왜 밑에서부터 짜면서 돌돌 말아 쓰지 않느냐는 식이었죠."

부부라면 누구나 겪었을 이런 얘기를 들으며 목사라도 별 수 없구나 싶어 웃음이 나온다.

방송국 PD가 꿈이었던 시절

"저는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고2때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어 포기했지요. 그러다가 방송국PD를 하고 싶었는데 어머니 생각에는 못마땅하셨나 봐요. 그래서 건축을 전공했죠."

기사를 쓴 한성희 기자는 누구?

2005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연재 부문 수상자인 한성희 기자는 현재 <파주저널> 편집부 차장을 맡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공릉 숲 이야기'라는 연재기사를 썼고, 그 기사들을 묶어서 최근 '여기자가 파헤친 조선왕릉'을 펴냈다. 2000년 9월 4일 '굿과 어우러진 가을 숲 속 시축제'를 쓴 이후 6년째 꾸준히 글을 써오고 있다.
아르바이트로 대학을 다니면서도 자존심을 지키느라 회수권이 없어도 내색을 않고 종로1가에서 대방동까지(약 10km) 걸어왔던 경험이 여러 차례. 뒤처리를 하느라고 회수권이 없다는 친구에게 마지막 회수권을 넘겨준 뒤에 걸어서 집으로 오던 젊음의 자존심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기독교 잡지에서 편집장을 맡기도 했고 엉뚱하게 코미디물을 쓰는 방송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단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단숨에 인기기자 대열에 오른 글솜씨의 비밀은 여기에 있었다.

지난 9월 그는 5년 간 준비해온 <나는 이길 수밖에 없다>(두란노 출간)는 기독교 관련 책을 펴냈다. 이 제목 역시 어머니가 지어주셨단다. 치매 어머니가 제목을 지어줬다니 무슨 말인가.

"제목을 놓고 마지막까지 고심했는데 지난 5월 어머니가 기도를 하시면서 "나관호 목사는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다! 하고 정해버렸죠, 하하."

a 어머니와 함께 여행중인 나관호 기자.

어머니와 함께 여행중인 나관호 기자. ⓒ 나관호

나 기자의 성격은 낙관적이다. 어떤 일이든 안 된다고 좌절하지 말고 더 좋은 것을 얻는 계기가 될 거라고 믿는다. 그는 어머니에 대해서도 좌절하지 않는다. 갈수록 애정이 깊어가며 가족의 애정도 짙어진다고 말했다. 여동생 부부 역시 어머니에게 지극 정성을 다한다.

"저는 <오마이뉴스>에 뒤늦게 빠져 있는 중이죠. 아버지에게 받았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을 글로 쓰는 것이 제 코드고요. <오마이뉴스>에 대한 주위의 편견을 바로잡아주고 있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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