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의 시선, 이순의 깊이

늘빛 서정수 서예전, 23일부터 백악미술관서 열려

등록 2006.11.20 21:09수정 2006.11.2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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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고 일관된 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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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시 <나의 꽃밭으로> ⓒ 서정수

"세상에 결정적 순간을 갖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첫 개인전을 앞둔 작가 늘빛 서정수씨와의 인터뷰 도중 앙리카르티에-브레송이 인용하면서 유명해진 레츠(Retz) 추기경이 한 이 말을 생각했다.

그랬다. 작가에게는 이번 전시회뿐만 아니라 창작의 길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결정적 순간'으로 비쳐졌다.

서예 입문 초기 작가는 방학동에서 신수동으로 정안당 신정희 선생께 공부하기 위하여 시내버스를 네 번씩 갈아타면서 수학하였다. 이후의 학서 과정도 변함없다. 그야 말로 성실하고 일관되게 외길을 간 것이다. 그것은 어떠한 수사를 더하지 않더라도 그 말 자체로 감동이었다.

"이끌어주신 선생님을 잘 따라 간 것뿐"이라고 작가는 말했지만, 성실함과 일관됨, 그것은 어느 학습 방법과도 바꿀 수 없는 왕도(王道)이지 싶다.

작가는 한글로 서예를 시작하여 한문서예, 문인화 공부도 하였다. 이번 전시회에는 한문 작품을 한 점도 출품하지 않았지만, 구당 여원구 선생에게서 한문서체를 연마하면서 필획에 힘을 더하였다. 또한 벽경 송계일 선생으로부터 4년간 문인화를 공부하였다.

한글·문인화 작품 70여 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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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30×25 ⓒ 서정수

이번 전시회에서 작가는 궁체 정자, 흘림, 반흘림, 진흘림 등 한글작품 50여 점과 문인화 작품 19점을 선보인다. 관심을 끄는 점은 한글 작품 못지않게 한글과 어우러짐이 좋은 문인화 작품들이었다. 한글작품은 오랫동안 초대전 및 단체전 등에서 선보여와서 작가의 작품 세계가 많은 사람들의 눈에 익었을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한글 작품들이 맑고 아담한 문인화 화제로 얼마나 아름답게 어울리는가는 작품을 보면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회를 위하여 작가는 2004년부터 작품을 준비해왔으며, 주로 지난여름에 작업을 많이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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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55×45 ⓒ 서정수

종이에 곱게 물을 들이고 그 위에 글씨를 쓴 '마음에 태양을 가져라'에서부터 부채에 연을 그리거나 캔버스에 한 '꽃자리', '오늘'과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다양하게 종이 선택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전체적으로 현란함이나 강렬한 색상이 지배하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넉넉한 여백을 전해준다. 작가의 성품 같아 보인다.

수려 단정한 서풍에 원숙한 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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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40×65 ⓒ 서정수

정안당 신정희 선생은 이번 전시회에 부치는 글에서 "우리가 표방한 궁체 한글의 정수는 운필의 경중이 형평을 이루고 음양이 적당하고 강유가 서로 조화하여 조선조의 규녀규범인 후덕인명, 정일단정, 유한정정의 격언을 상징하는 바, 이는 곧, 서여기인(書如其人), 즉 글씨는 곧 그 사람의 인격으로 보는 서론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서 여사의 필력은 오랜 서력이 말해주듯 수려 단정한 서풍에 원숙한 운필이 곁들인 서 여사의 높은 인간적 품격이 배여 있습니다"라고 작가의 작품세계를 말하였다.

작품 면면을 꼼꼼히 살펴보다보면 자연과 인생에 대한 관조의 시각이 담겨져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순(耳順)의 작가 시선이기도 하지만, 사물의 본질을 깊고 투명하게 바라보는 심상(心相)에서 문구들이 솎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작품집 서문에서 물파스페이스 나석 손병철 관장은 "우리는 늘빛의 서화작품들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발견한다. 지나간 것은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이다. 그녀의 붓의 내력은 30여 년 가까이에 이른다. 서화동행!"이라고 한다.

이제 작가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룬 작품들을 만나볼 차례만 남았다. "즐겁고 재미있고 감동을 받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작가에게 작품을 하는 매순간, 그것이 작가에게 있어서의 '결정적 순간'이자, 이번 전시회는 그것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전시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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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태양을 가져라, 100×65 ⓒ 서정수

덧붙이는 글 | * 늘빛 서정수 씨는 대한민국미술대전, 경기미술대전 초대작가로, 대한민국미술대전, 세종한글서예대전 등의 심사위원과 행주미술대전, 화홍서예대전 등의 운영위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묵향회 초대작가회 부회장, 롯데백화점 문화센타 강사이다. 2004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서화아트페어에 참여하였으며, 서력 30여 년만에 첫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 이 글은 <월간 서예문인화>에도 송고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늘빛 서정수 씨는 대한민국미술대전, 경기미술대전 초대작가로, 대한민국미술대전, 세종한글서예대전 등의 심사위원과 행주미술대전, 화홍서예대전 등의 운영위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묵향회 초대작가회 부회장, 롯데백화점 문화센타 강사이다. 2004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서화아트페어에 참여하였으며, 서력 30여 년만에 첫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 이 글은 <월간 서예문인화>에도 송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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